• [레져/여행] 인적이 그리운 15㎞ 5시간 트래킹, 경기 김포 철책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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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3.10 14: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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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너머 노을은 아름다웠다… 닿을 수 없기는 매한가진데

5시간 동안 철책선을 옆에 두고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곳곳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 지역은 유실지뢰 및 폭발물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철책 전방 출입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아래 사항을….’ 철책선 너머 풍경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염천강과 강화도가 내다보이고 억새와 오리떼가 섞여든다. 그러나 풍경과 나 사이,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차갑고 날카로운 철책.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무엇보다 시골의 밤은 가차없다. 낙조는 순간이고, 이후에는 어마어마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경기도 김포 철책선길을 걸었다.


택한 코스는 문수산성 남문부터 김포CC, 덕포진을 지나 대명항까지 가는 길. 약 15㎞, 4~5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목표는 덕포진에서의 낙조였다. 이만큼 청명하고 아름다운 일몰 풍경을 만드는 곳이 없다고들 했다. 시작부터 삐걱댔다. 신촌에서 출발하는 강화행 직행버스로 마송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성동검문소에 내렸다. 오후 2시. 이곳은 휑한 국도변이다. 명색이 김포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는 ‘DMZ 트래킹 코스’인데,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사람들도 잘 모른다. “철책선길? 그런 게 있어요?” 일단 도로 가를 거슬러 올라, 통진휴게소까지 갔다. 차들이 속도를 내는 길이다. 휴게소에 못 미쳐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서 다리를 건너 포내천 뚝방길을 따라 죽 걷다 보면 산길이 나온다. 거기부턴 코스를 뜻하는 리본이 곳곳에 묶여 있어 한결 수월하다. 하천에는 왜가리가 날아오르고 낚시꾼들이 한가로이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인적이 그렇게 그리워질 줄 그땐 몰랐다


계속 걸으면 김포 시사이드 골프장 입구가 나온다. 길을 묻자 골프장 경비원은 고급 세단에 거수경례를 하다 말고 “거기까지 걸어가려고? 취미 한번 다양하네” 한다. 입구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오르막길을 올랐다. 벌써 40분이 흘렀다. 숨이 턱에 찬다. 시원한 갯내가 난다 싶더니 곧 잘 차려진 골프장 너머로 염하강이 펼쳐진다. 염하강은 사실 바다다. ‘강화해협’이라고도 부른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에 남북방향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모양새가 꼭 강 같아서 ‘염하강’이라고들 한다.


골프장을 왼쪽에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철책선이 나타났다. 그때부턴 철책선을 오른쪽에 두고 끝도 없이 걷는 지난한 여정이다. 중간에 문명으로 탈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화장실도 음식점도 없다. 왼쪽으론 수확이 끝난 쓸쓸한 빈 논과 마을, 야산과 묘지, 오른쪽으론 물 빠진 갯벌과 억새밭이 펼쳐진 바다와 그 너머 강화도. 마냥 걷는 수밖에 없다.


이곳은 ‘DMZ 트래킹’이라고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놓았지만, 사실 DMZ(비무장지대)와 별 관련이 없다. 1960년대 말 김신조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후 간첩 방지용으로 만들어진 철책이다.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냉전의 유물, 흉물에 가깝다. 차가운 금속 재질의 철책, 그곳을 넘어선 안된다는 무언의 규율이 사람을 긴장시킨다. 초소와 벙커, 중간 중간 총구를 내놓기 위한 구멍, 총을 든 무표정한 군인…. 그 총구가 나를 향할 수도 있단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어느새 2시간 반이 흘렀다. 철책선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20대 젊은 여성. “덕포진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물으니, “2시간 정도. 문수산성까지는요?”라는 되물음이 돌아온다. 딱 중간쯤인 듯싶다. 길 위에서, 사람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부터 철책선 곁으로 걸을 수 없는 구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구간에선 어쩔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헤쳐가야 한다. 마을에 펼쳐진 논밭 사잇길을 둘러 둘러 가는 길도 나온다. 해는 벌써 조금씩 기울고 있다. 물 빠진 하늘색 아래로 공동묘지가 스산하다. 영롱한 산새소리마저 다소 두렵게 느껴진다. 산 중턱에서 덕포진 쪽을 바라보니 선홍빛 노을이 머리 꼭대기만 살짝 비쳤다.


3시간 내내 쉬지도 않고 바삐 걸었지만 낙조는 물 건너 갔다. 낙조는커녕 산속에서 해가 저무는데, 뛰는 수밖에 없다. 무릎이 삐거덕댄다. 해지는 속도가 빨라지니, 이 길이 맞을까 초조감이 극에 달했다. 리본만 믿어 보기로 한다. 그렇게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멀리 산길 아래로 철책선이 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떻게든 덕포진까지는 가야겠단 생각에 또다시 지긋지긋한 철책선을 따라 걷는다.


날은 이미 어둑하다. 시멘트로 된 길엔 바닥에 파란색 화살표로 코스를 표시해놓았다. 어느 지점까지 몇 ㎞, 몇 시간이 남았는지도 함께 써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없으니 어디쯤 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철책선 너머 물 빠진 갯가에 오리떼가 점처럼 움직였다. 여기가 덕포진인가? 어둑한 하늘과 어울려 동양화 같다. 한참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깜깜했다. 갑작스러운 밤이다. 가로등 하나 없다. 멀리 초소 안에 총을 든 군인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마을로 뛰어내려갔다.


“아주머니, 여기가 어디에요? 덕포진 가려면 멀었어요?” “여기 신안리. 덕포진? 거길 걸어가겠다고?” “여기서 버스 타는 데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저 위로 한참 걸어가야는데… 거기도 버스는 없어. 나가는 차가 있어 잡아 타면 모를까.” 마을엔 사람은커녕 불켜진 집 하나가 없다. 적막 속에 논밭 사이를 헤맸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같은 글자가 머릿속을 지날 때쯤, 저 멀리 불빛 하나가 구원처럼 반짝인다. 불빛을 향해 질주했다. 걷고 뛰기를 5시간째다. 무작정 새시 문을 두드렸다.


“저기 제가 길을 잃어서 그런데요, 콜택시 번호 좀….” 문이 열리니 간판도 없는 가겟집이다. 여전히 <추격자>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추운데 여그 잠깐 들와 있어. 덕포진 갈람 저 산을 넘어야 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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