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연예] 돌아온 서부영화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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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2.28 17: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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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코미디·공포 등의 장르에는 시간·장소·인물의 제약이 없는 반면, 서부영화에는 19세기 중후반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백인과 북미 원주민이 주로 등장한다. 미국인들에게만 익숙한 설정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문화 콘텐츠가 됐으니, 서부영화는 할리우드가 획득한 보편성과 자신감의 증거인 셈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초창기인 1920~30년대 등장해 50~60년대 절정기를 맞았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변종을 경험한 후 서서히 몰락한 서부영화. 그러나 90년대 <늑대와 춤을> <라스트 모히칸> 등의 성공과 함께 부활의 조짐을 보인 서부영화는 여전히 할리우드 사람들의 구미를 잡아당긴다. 잘 만들어진 2편의 서부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다. 코엔 형제 감독의 <더 브레이브>와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랭고>다.

서부 사나이의 ‘진정한 용기’
옛 남자의 가치 ‘더 브레이브’

14세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무법자 채니(조시 브롤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매티는 잔인하기로 유명한 보안관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에게 추격을 의뢰한다. 여기에 젊은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 뷔프(맷 데이먼)가 합류한다. 3명은 채니의 행방을 찾아 무법지대인 인디언 보호구역 안으로 향한다. 그러나 늙은 데다 술주정도 심한 카그번에게 매티는 차츰 실망한다.


영화는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언 28:1)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원제가 (진정한 용기)인 이 영화는 68년 소설 원작이 나왔고, 이듬해 서부영화의 아이콘인 존 웨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등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진부해 보이기까지 한 가치관에 코엔 형제식의 비틀기가 첨가됐다.


악당은 보잘것없고, 보안관은 고집불통 노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물러서지 않고 다수의 악당과 홀로 대결하는 보안관은 현대 남성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옛 사나이’로 그려진다. 북미 원주민들은 1890년 ‘운디드 니 학살사건’ 이후 보호구역 안으로 사실상 쫓겨났다. 그러나 이와 함께 백인 남성들이 자신들의 개척정신과 남성성을 발현할 수 있는 무대도 사라졌다.


<더 브레이브>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무를 마친 보안관이 여생을 보내는 곳이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유행했던 서부극 서커스단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제 거친 남성성은 돈을 내고 구경할 수 있는 희화화의 대상이 됐다. 영화는 성인이 된 매티가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이 같은 구성은 다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옛 남성성에 거리를 두는 한편, 사라진 옛 가치에 대한 향수를 강조한다.

‘야만’에서 소명을 얻은 천방지축 카멜레온
깨달음의 공간, 애니메이션 ‘랭고’

자동차 뒤편에 실려 있던 관상용 어항이 우연히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의 도로에 떨어진다. 칵테일을 마시며 장난감 물고기와 생활하던 카멜레온 랭고는 졸지에 야생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우연히 무법자 매를 죽인 랭고는 물이 떨어져가는 마을을 구할 영웅으로 추앙된다. 그러나 마을 최고 권력자인 시장, 물을 찾아 헤매는 무법자 무리들은 랭고의 뒤를 노린다.


<랭고>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연 조니 뎁이 랭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랭고>의 배경은 현대 미국이지만, 랭고가 떨어진 곳은 명백히 서부 개척시대의 마을을 연상케 한다. 파충류, 조류가 주인공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옷차림새, 음악, 행동양식 등은 모두 서부영화에서 익숙했던 것들이다.


여기서 모하비 사막은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야만의 공간이다. 고전 서부영화는 전통적으로 ‘문명 대 야만’의 이분법을 핵심 구도로 삼아왔다. 그러나 <랭고> 속 야만의 공간은 생명을 잃을 만큼 위험하지만 아울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에 젖은 도시인들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고귀함, 희생정신, 자아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신화적 공간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속 잭 스패로우 선장을 닮은 ‘허허실실’ 캐릭터 랭고는 광막한 사막에서 ‘서부의 수호신’을 만난 뒤 소명을 깨닫는다. 이 대목은 1960년대 히피 문화가 그렸던 환각 체험처럼 기묘하게 묘사됐다. 마을에서 물은 돈 대신 은행에 맡길 정도로 귀하다. 이 물이 도로 건너편의 도시에서는 골프장에 뿌려진다.
시장은 인간들의 개발 계획을 흉내내 마을을 거대한 공사판으로 만든다. 시장은 의기양양하게 “총잡이의 시대는 가고 사업가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고 랭고는 이에 저항한다. 랭고는 물질보다는 마음의 깨달음을, 물을 독점하기보다는 공유하길 원한다.


가족 관객을 노린 영화답게 <랭고>는 잊혀져 가는 옛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더 브레이브>가 액자식 구성을 통해 노린 옛 가치와의 거리두기가 현실에는 좀 더 가까워 보인다.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서부영화는 보수적인 장르이지만, 이 보수성은 정의·협동·자연과의 조화 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가치 판단을 떠나 인간의 근원적 감수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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