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30년 화업 도록에 담아낸 작가 구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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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25 13: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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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화 고집하는 이유요? 과정서 얻는 느낌이 좋아요”

영하 16도의 칼바람에도 작가 구자현(56)의 가슴은 뜨거웠다. 그날 저녁 작가는 서울 청담동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열린 ‘화업 30년’ 기념도록 출판회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마음만 달아올랐다. 기념식에서도 “찬 바람을 뚫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마디가 전부였다. 작가가 자비로 제작하는 도록의 관행을 깨고 조은숙 갤러리대표가 그의 첫 도록(1000부)을 만들어주었다. 자랑스러운 시간 앞에서 그는 30년 동안 걸어온 고단한 풍경들을 떠올렸다.

대구 출생인 구자현은 섬유회사를 운영하는 부친의 권유로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했다. 대구 갑부집 아들은 1980년 2월 대학 졸업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두달 뒤 일본 오사카예술대로 유학을 떠났다. 홍대와 자매학교인 오사카예술대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는 귀국 후 다시 일본 유학에 도전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한국 사회가) 별로 재미없는 데다 일본에서 자란 두 자녀의 교육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일본 유학에서는 세계적인 목판작가 구로사키 아키라의 권유로 일본 대학 중 유일하게 판화학부가 있는 교토대를 택했다. 교토대 졸업 후 대학원 진학 과정도 고달팠다. 유학 비자를 위해 한·일 양국을 두번씩 오갔다. 재수 끝에 후쿠오카 규슈대학원 서양화전공 합격. 대학원에서 판화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시 일본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대학원 재수를 위해 두번씩 비자를 받아야 했던 구자현이 합격하자 “구(구가현)상 만세”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8년 동안 판화에 몰두했다.

“당시 국내에는 판화에 대한 책이나 도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전문적으로 판화 공부를 하기에는 일본이 세계 최고였죠. 지금도 일본은 세계적인 판화 왕국입니다.”

1995년 서울국제판화미술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구자현은 이 땅의 독보적인 판화작가였다. 그의 손길로 감수한 작가만 100명이 넘었다.
“판화를 고집하는 이유요? 과정에서 얻는 느낌이 좋아요. 저는 ‘노력’을 즐깁니다. 어떤 그림이 되느냐 하는 결과보다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작가의 존재 이유죠.”
그는 시간과 노력을 추구하는 ‘비경제적인’ 작가다. 화단에서 ‘까칠한 남자’로 통하는 이유도 묵묵히 작품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의 경우 판화가 값싼 그림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며 “판화의 미학적 기능과 작품성은 사라지고 손쉽게 복제할 수 있는 인쇄물의 개념으로 인식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는 2월11일까지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은 작가가 30년 동안 이어온 판화와 황금·백금 배경의 템페라 대표작들이 나왔다. 서울에선 9년 만의 개인전인데, 특히 구(球)를 소재로 한 작업은 동양의 윤회사상과 선(禪)사상을 내포하면서 외국 화단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템페라는 계란이나 아교질 등의 용매에 색채가루인 안료를 배합한 물감으로 그려낸 작품.

구자현이 작업한 황금·백금 배경의 템페라는 모노크롬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손빨래한 삼베를 붙여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생석회를 열두번 덧칠한 후 표면을 칼로 다듬고 그라인더로 갈아 흰 바탕을 완성한다. 지루한 노동의 반복이다. 게다가 2m가 넘는 대형 작품이어서 노동의 가치는 증폭된다. “모든 그림엔 노력과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게 힘들다면 예술이 되겠습니까?”

과정의 철학은 삶의 성찰로 이어져왔다. 지난해 제작한 대형 목판화(210×150.5㎝)는 1년반의 기간이 소요됐다. 그동안 스크린 판화에 10년, 석판화에 20년의 노력을 쏟았다. ‘돈 안되는’ 판화만 제작했다. 그래도 과정이 중요하고 보람있다. 그는 판화를 공방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제작한다. 세계적으로도 작가가 제작하는 예는 거의 없다.

“일본 북해도산 상피나무 판을 구해 지난 3년간 목판화 작업으로 10점의 연작을 완성했어요. 조각도로 나무를 판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인쇄하는 겁니다. 나무를 깎을 때 조각도의 저항감이 말할 수 없이 강하죠. 대형작업이어서 한 20년 망설이다 했는데 이젠 기운이 달려 못합니다. 하하”. 그동안 사용한 종이값만 수억원.

“흰종이는 잘 팔리는데 판화로 만들면 팔리지 않습니다. 350여점의 원판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중 99%가 팔리지 않은 작품입니다. 사실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의 99%가 돈 안되는 일을 하죠. 그래도 버티는 제 자신과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동안 매년 해외 개인전을 해왔고 공간 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2002), 삿포로 국제현대판화비엔날레 스폰서상(1998),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매입상(1994) 등을 수상했다.

판화 부흥을 위한 책 <판화>(1989·미진사)를 썼고 번역서 <서양판화사 개론>(1994·API) <현대판화의 기초지식>(2002·시공사)도 펴냈다.
“그림은 장식용이 아닙니다. 위로받고 소통하는 대상이죠. 예술품이 공산품과 다른 건 그 때문입니다.” 오는 27일부터 파리 이브갤러리 개인전이 시작되고, 3월 10~14일 독일 칼 스루에 아트페어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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