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절벽 아래 파도 울음… 분화구 아래 염소 울음… 언덕 길엔 억새 울음… 제주도 최남단 ‘절울이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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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25 13: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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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레 이야기부터. 제주의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올레가 아닌 곳이 없다. 공항 주변을 제외하곤 제주도를 빙 둘러 해안가 주변은 죄다 올레길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서귀포시 대정읍의 절울이 오름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올레 10코스 최고의 비경이라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에게 ‘제주에서의 삶’에 대한 욕망만 심어놓고 무심히 떠나버린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탔다. 2시간쯤 전에 10코스 시작점인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산방산을 향해 걷던 낯익은 올레꾼의 얼굴이 몇몇 보였다.

절울이 오름은 송악산이라고도 한다. 송악산(松岳山)은 이곳에 해송이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악’과 ‘산’은 사실상 이중 표현의 전형적인 잘못된 예라고 해야겠다. 절울이 오름은 오랜 옛날부터 제주 사람들이 부르던 말인데, 절벽에 파도가 부딪쳐 운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제주의 오름은 물론이고 많은 지명들이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갖고 있다. 바다와 면한 이곳의 남동쪽 사면은 화산쇄설성 퇴적층과 용암으로 이뤄진 해안 절벽이다. 여기에 줄기차게 파도가 달려와 머리를 박고 크허헝, 크허헝, 울부짖는다. 제주답게 바람이 거센 곳이다.

지도에서 보면 절울이 오름은 제주도의 서쪽 끝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남쪽으로 튀어나온 지형 끄트머리에 위치한, ‘최남단 오름’이다. 이곳으로 오르는 입구에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로 향하는 유람선이 뜨는, 마라도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절벽 위에 올라 바라보니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위에 마라도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다. 절울이 오름을 오르는 길은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 손 안 댄 흙길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올레코스 정비사업으로 나무데크가 깔렸다. 오르기는 한결 수월해졌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절벽 위 전망대까지는 10~15분 정도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전망대에 서니 가까이는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 바다 위론 두 개의 섬이 짝을 이룬 형제섬, 멀리 눈 쌓인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이 보이는 걸 보면, 시계가 좋은 날이다.
여기서 왕릉을 닮은 작은 언덕들 사이를 지나 분화구가 있는 정상부에 닿으려면 다시 10~15분가량 더 올라야 한다. 입구부터 넉넉히 3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단 뜻이다. 무릇 오름의 매력은, 정상에 쉽게 닿을 수 있단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상은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름은 애초 제 모습을 숲속에 숨기지 않고 날것으로 드러낸다.

정상부에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지금은 억새가 허리 높이로 자라 있어, 그것들을 헤치고 올라야 했다. 바닥에 닿는 흙이 물렀다. 부스러지기 쉬운 작은 돌들이 굴렀다.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건 이곳의 지질이 붉은 ‘송이층’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송이는 송이버섯이 아니라, ‘스코리아’라는 붉은 화산재 알갱이를 가리킨다. 송이층의 지질은 연약하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훼손된다. 실제로 최근 올레코스에도 포함되고, 관광지가 되면서 이곳 정상부는 몸살을 앓고 있다. 비나 바람에 의한 자연풍화, 말과 염소 방목으로 유실이 우려되고 있던 터였다.

현재 정상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느슨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정상부로 오르는 입구에 있지만, 방문객들은 그 앞에서 멈칫했다가 멈추진 않았다. 아마, 여기가 정상은 아닌 것 같고, ‘정상부’가 어디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실제로 출입을 금지하려면 강력한 강제 기제가 필요하다. 서귀포시는 오는 6월, 현재 진행 중인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휴식년제를 도입해 송악산 출입을 아예 금지하고, 올레코스도 정상부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상부에 굳이 오르지 않아도 절울이 오름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절벽 가운데 15개의 동굴이 어둔 입을 벌리고 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사람이 파놓은 것.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사용할 자폭용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파놓았다고 한다. 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지만, 서글프다.

절울이 오름은 지질학적 가치도 크다. 여느 오름들과 달리 분화구가 두 개인 이중 화산체다. 가장 큰 분화구, 그 안에 또 다른 2차 분화구가 있다. 정상의 거대한 분화구 곁에 섰다. 현실감각과 원근감이 흐려진다. 시야가 트여 있는 오름에선 가까이 보이는 것이 실은 멀리 있고, 멀리 보이는 것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먼지 가까운지 가늠이 안 되는 이상한 경험이다. 분화구 안쪽엔 검은 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염소들이다. 둘레 400m, 깊이 69m, 경사각 70도로 가파른 분화구 안쪽에 위태롭게 붙어서서 풀을 뜯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분화구 주변의 무른 흙은 구르고 흘렀다. 거센 바람에 몸이 흔들리자, 블랙홀처럼 뻥 뚫린 분화구가 두려워졌다.‘저편’에 떨어지면 다시 ‘이편’으로 올라올 수 있을까? 분화구에서 시선을 돌려 바다쪽을 바라본다. 절벽 전망대에서 보이지 않았던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인다. 빈대떡처럼 바다 위에 납작 붙어 있다. 멀리 점처럼 보이던 올레꾼들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다시 점이 되어 모슬포로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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