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10여 년 시 작업의 완결편 ‘제국’ 펴낸 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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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20 1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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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나라가 되려면 타자의 고통까지도 내 것으로 감각해야”

   

급속도로 다문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지형도를 다시 만든다면, 그 목록의 가장 윗부분에 적힐 이름은 아마도 하종오 시인(57)일 것이다. 그는 이주노동자, 결혼이민 여성 등의 현실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데 가장 앞장서온 작가로 꼽힐 만하다. 2004년 출간한 시집 <반대쪽 천국>부터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 <입국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우리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이들의 현실을 일관성있게 끌어안아 왔다.

   

그런 그가 10년 가까이 지속해온 작업을 일단락 짓는 시집 <제국>(문학동네)을 펴냈다. 부제는 ‘諸國 또는 帝國’이다. ‘모든 사람들의 나라’ 또는 ‘황제의 나라’를 뜻한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이번 시집의 스케일은 가히 전 지구적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 시집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아시아인들의 현실을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한국으로 온 세계인, 세계 속으로 나간 한국인들의 삶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그 삶들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연관을 맺는지를 조망한다. “한국 자본이 외국으로 나가서 외국 노동자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생존하는가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강대국들이 한국으로 진출했듯, 우리도 이제 강대국의 외피를 걸친 채 약소국가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諸國과 帝國이 뒤섞여 있는 현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시를 써보고 싶었던 것이죠.” 하 시인은 간결한 어조로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담담하게 형상화한다. 연민이나 분노 같은 자신의 감정을 성마르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문학적 의도나 세계관의 반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봐야겠다”는 태도가 시집 전편에서 느껴진다. “베트남 전 참전했던 사나이가/ 베트남에 신발공장을 세웠지만/ 사업이 잘되어 봉급을 많이 주자/ 베트남인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되었고/ 사나이는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전력을 숨기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만든 신발들을 사나이가 한국으로 가져가든 말든/ 베트남인들은 봉급을 받기 위해 말없이 말없이 일했다”(‘제국의 공장-봉급’) 그가 그려내는 세계의 모습은 자본과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국(帝國)의 모습이다.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역사적 과오도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중요치 않다. 한국 자본이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아시아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현실 속에서, 베트남 사람들도 그들에게 ‘큰 돈’이 되는 봉급을 위해 묵묵히 일할 뿐이다.

 

그렇다면 제국(諸國)의 길은 요원한 것일까. 시인은 ‘모든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시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과 나의 ‘연관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내 시집들이 나오기까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에서 나무들이 베어졌으니/ 지구도 살아남으려고/ 스스로 지진을 만들어냈을 터/ 내 시집들도 묻혀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이런 시를 쓰고 있다.”(‘지구의 사건’) 이를테면 시인은 아이티 지진 소식을 들으며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 인류의 과오에 자신의 책임을 보탠다. 그렇게 그는 전 지구적 사유 속에서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감각한다. “세계의 시민들에게 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帝國은 부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 <제국>을 읽는 것은, 일상에 묻혀 둔감해진 우리의 오감에 타자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벼리는 것이다.

 

한국의 축산농장에서 일하는 한족 청년과 티베트 청년들은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으로 진압한다는 뉴스에 잠시 서먹해지지만 “한국에선 모두 불법체류자 된 지 오래여서/ 각자 조용하게 불빛 아래 식탁에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각자 조용하게 어둠 속 축산농장으로 흩어”(‘국경 너머 국경’)지는 현실에서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마저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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