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4년만에 두번째 소설집 ‘큰 늑대 파랑’ 펴낸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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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20 14: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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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고 보잘것 없어도 살아가는 데 드는 힘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

 

윤이형(35)의 소설은 매혹적이다. 그가 펼쳐보이는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작가 자신의 고뇌를 읽어내는 것 또한 즐겁다. 장르적 요소를 도입해 글을 쓰는 젊은 작가들 가운데, 윤이형은 SF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좀비가 출몰하고, 다른 자아를 통합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튜닝 시스템’이 등장하며, 자아와 분리체 간에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 유치하지 않은 것은 정교한 이야기 설정과 작가의 진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가 4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큰 늑대 파랑>(창비)을 펴냈다.

 

표제작 ‘큰 늑대 파랑’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파랑은 1996년 대학 동창인 사라, 정윤희, 재혁, 아영이 컴퓨터 마우스로 그린 늑대다. 파랑은 좀비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컴퓨터 화면 밖으로 탈출해 부모들을 찾아나선다. 좀비들의 출몰, 전투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파랑의 모습 등 장르서사와 게임서사를 접목시킨 이야기의 핵심에는 꿈과 희망을 잃은 세대의 방황과 상실감이 있다.

 

주인공들은 대학시절 시위대에 동참했다가 시위가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위대 학생 중 한 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접한다. 이념과 집단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중요했던 그들은 성장해서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가 꿈이었지만 돈벌이를 위해 10년간 잡문만 써야 했던 사라, 잡지사를 전전하며 원하지 않는 글을 쓰는 정희, 기업 이미지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앞세워 광고를 찍는 재혁, 선을 보며 부모의 욕망에 따라 사는 아영은 사회에 타협하고 투항한 세대들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재미있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138쪽) 같은 세대에 대한 윤이형의 고민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엿보인다. 글을 자동으로 고쳐주는 노트북이 등장하는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에서 작가 지망생 이비는 “정신을 차려보니 가진 건 환상인지 화상인지 모를 징그러운 꿈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세상에서 반쯤 튕겨나간 채 서른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95학번인데, 동세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면 ‘어디서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연대라는 것을 경험해본 일이 드물고 각개전투로 현실을 헤쳐나가면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20~30대를 보내면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감이 희미해져 버린 세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그런 상황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비관적이고 음울한 세계관을 보여줬던 첫 소설집과 달리 <큰 늑대 파랑>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전망을 찾으려는 주인공들의 노력들이 보인다.


윤이형 버전의 <엄마를 부탁해>로 읽히는 ‘맘’에는 국가의 비밀 프로젝트인 시간이동의 실험대상이 돼 어디론가 사라진 엄마의 행적을 추적하는 딸 소현이 등장한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엄마의 과거를 찾던 소현은 불현듯 엄마가 과거가 아닌 미래로 이동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른다.


“소현 자신이 자꾸만 잘못을 저질러도 그게 부끄럽고 끔찍해 죽지는 않는 것처럼, 인류가 끝없이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소현은 믿었다. 회한에 젖어 이미 지나간 과거를 뒤적이기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310쪽)

 

작가는 “어두운 것들을 가리고 억지로 긍정적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솔직하고 비관적인 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내 글이 읽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며 “비록 조그맣고 보잘것없더라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타인과 나누는 것에 대해 점점 더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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