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무용을 관객에게 돌려줄 절호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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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17 1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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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은 머리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무용을 보며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선 안됩니다. 관객이 먼저 마음을 열어주신다면, 그 후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반드시 ‘아, 이게 예술이구나’ ‘현대무용이 이토록 아름답구나’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할 겁니다.” 이토록 넘치는 자신감이라니…. 한국무용계의 50년 숙원사업이었던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해 8월 출범한 후 무용인들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는 대망의 창단 공연을 앞둔 수장. 홍승엽 초대 예술감독(49)은 스트레스에 찌들기는커녕 자신감이 넘쳤다.

 

창단 공연 <블랙박스>를 연습하는 서울 양재동 한전아츠풀 연습실에선 격한 연습으로 근육통에 시달리는 단원들의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다치거나 독감에 걸린 단원들은 구석에 앉거나 모로 누워 연습 모습을 구경하면서도 눈빛만은 뜨거웠다. 홍 감독의 안무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무용수들이 춤추기 힘들어하고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최상의 무대를 위해 단원들에게 가혹하게 연습을 시키면서도 홍 감독은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기량과 체격조건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춤 스타일을 갖고 있는 무용수 23명을 오디션으로 선발했죠. 앞으로도 정규 단원을 두지 않고 프로젝트마다 선발하는 비상근 단원 체제를 유지할 겁니다. 프로젝트마다 춤꾼이 달라져야 현대무용 고유의 탄력성과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희대 섬유공학과를 다니던 공학도에서 무용가로 변신한 그의 별명은 ‘재야의 고수’. 당시엔 몹시 희귀한 남성 현대무용수로서 민간인 최초 전문무용단인 ‘댄스시어터 온’을 17년간 이끌어왔다.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을 만큼 실력을 갖춘 최고의 안무가였지만,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거부하는 등 반골기질이 농후했다. 그가 ‘국립’이란 제도권의 모자를 기꺼이 쓴 이유는 무얼까.

 

“제 철학은 ‘무용을 관객에게 돌려주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무용계는 일반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무용인끼리만 지지고 볶아왔다는 비난을 들을 만해요. 그들만의 리그, 무용인들만의 축제에서 벗어나 무용의 대중화를 실천할 좋은 기회라고 여겨 기꺼이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원로 무용인을 비롯, 발레나 한국무용까지 각자의 시선으로 우리 공연을 주목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일반 관객이 더 오시게 하는 게 제 관심사입니다.”

 

이번 공연은 700석 규모 공연장을 좌석 등급 구분 없이 1만원으로 책정, 티켓 판매 10일 만에 절반이 넘게 팔리는 이변(?)을 낳았다. 사무국 측에서는 “너무 저렴하다.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홍 감독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기본 골격이 ‘저렴한 가격, 양질의 공연’이어서 앞으로도 최대 2만원 정도로 유지할 예정이다.

 

현대무용은 솔직히 일반인들에겐 어렵다. 이번 <블랙박스>도 <데자뷔> <달 보는 개> <아큐> 등 제목도 난해한 홍 감독의 기존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새롭게 창작한 것이다. 연습장면을 보니 찰흙으로 만들긴 했지만 똥이 부처로 변신하는 등 철학적인 내용이 많다. 홍 감독은 “안무가의 철학을 분석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열면 절로 춤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소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분석하는 건 무용 평론가의 몫이고 관객은 그저 무용수의 춤과 무대, 음악이 만들어내는 그 순간에 몰입하면 됩니다. 사실 그동안 철학이 빈곤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안무자가 선보인 작품들이 더 더욱 관객과 춤을 멀게한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제 마음의 창고죠. 긴 세월 동안 창고에서 창조되고 변화된 이미지 조각들이 블랙박스 안에서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거죠. 때론 공격적이지만 유머와 위 트 안에 철학을 녹여 그저 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국민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무용’을 첫 미션으로 잡은 홍 감독은 29~3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는 창단 공연이 끝나면 전국 순회공연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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