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이름만큼 정겨운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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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14 15: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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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을 기차가 아닌 다른 탈것으로 여행한다는 것엔 깊은 모순이 있다. 기차역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존재 이유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다. 간이역은 그런 곳이다. 효용가치를 떠나 존재 자체가 불안으로 흔들린다. 하루에 두 차례만 지나는 기차, 자취를 감춘 역무원, 뻥 뚫린 역사 안, 과거 영욕의 흔적과 폐허…. 산을 뚫고 실개천을 따라 두메를 흐르는 정선선에 올랐다. 강원 정선군을 지나는 정선선은 유독 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정선선은 민둥산역부터 구절리역(민둥산~별어곡~선평~정선~나전~아우라지~구절리)까지 연결한다. 이 중 역무원이 지키지 않는 간이역은 별어곡, 선평, 나전역이다. 기차는 하루 두 번 왕복한다. 구절리역은 아예 기차가 닿지 않는다. 대신 폐철로 위로 잘 알려진 ‘레일 바이크’라는 관광용 철길 자전거가 달린다.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선평역에 내린 것은 오전 8시46분. 전날 밤기차를 타고 청량리에서 출발해 동해역을 거쳐 10시간여를 달려 오는 길이다. 열차 직원이 “여기서 내리시게요? 아무것도 없는데?” 한다. 오로지 혼자 내렸다. 기차는 산을 헤치고 떠나갔다. 하루 두 번 지나는 기차 중 첫번째 기차를 보냈으니, 이제 바쁘게 다른 간이역들을 돌아보려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두 번째로 지나는 기차를 잡아탈 기회는 이제 한 번 남았다. 오직 한 번 남은 다음 하행선 기차는 11시54분. 3시간여가 남아있다. 까마귀 두 마리가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날았다. 들리는 건 멀리서 낯선 이를 보고 짖어대는 개 울음소리다.


1967년 영업을 시작한 선평역은 2005년 무인화됐다. 건물은 낡았지만 아름답다. 근대 소규모 역사의 전형적 건축 형태다. 다만 영화의 시기를 지난 역사는 쓸쓸하다. 텅 빈 역사엔 문짝과 창문도 떨어지고 없다. 뻥 뚫린 자리가 바닥에 사각의 빛을 드리웠다. 흰 벽엔 덩그러니 오래된 열차 시간표가 붙어 있다. 정선역 쪽으로 철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아우라지로 들어간 기차가 다시 나오려면 아직 2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2시간 동안은 철길 위에 기차가 없단 뜻이다(후에 알았지만 철도 안전법상 철로 위를 걷는 것은 위법이다. 걸리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철길 위엔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누군가 걸어간 발자국이 있다. 발자국을 따라 좁은 설산 사이를 30분쯤 걸었을까, 시야가 트였다. 철교 양쪽으로 흐르는 넓은 실개천이 보였다. 동강의 지류인 동남천이다. 얼어붙은 날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10분가량 더 걷자 산을 통과하는 기차 굴이 나왔다. 그 앞에서 발자국은 끊겼다. 굴 안은 완전한 암흑. 조금 배회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선평역으로 되돌아온다.


정선선이 구절리까지 완전히 개통된 것은 74년. 석탄 등 일대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깊은 산속 탄광들을 연결하던 역사는 모두 자동차로 닿기 힘든 오지에 있었다. 덕분에 역사들은 여전히 비경 속에 있다. 선평역의 경우 여전히 차보다 기차로 가는 게 더 편하다. 당시 정선 일대에는 10여개의 광산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0~90년대 들어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광산이 모두 폐쇄되고 철도 역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예전엔 여기에 ‘꼬마 열차’가 다녔다. 정선선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이 ‘꼬마 열차’를 그리워한다. 철도 이용객이 줄면서 적자가 계속되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꼬마 열차’는 2007년까지 운행한 객차형 통근열차다. 오래된 새마을호를 두 량만 남겨 작은 열차로 만들어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후 관광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2008년부터는 꼬마 열차가 폐지되고 7량짜리 ‘어른 열차’, 무궁화호가 다니고 있다. 이게 태백선을 따라 제천역까지 연장 운행되고 있다. 특히 정선장이 서는 2·7일에는 하루 한 번 청량리까지 연결된다.

 

한데나 다름없는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마을로 내려가 국도변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 시간에 한 번 지난다는 버스는 언제 올지 몰랐다. 다음 목적지는 정선역. 그곳에서 일단 허기를 채워야 했다. 버스는 기다리던 곳과 다른 방향에서 왔지만 건너편의 승객이 달려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정선은 마침 7일장이었다. 구제역의 여파로 작은 규모로 열려 있었다. 시장통에는 정선 지역의 고유 음식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 국수, 수수부꾸미 등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곤드레밥을 시켜놓고 열차 시간표를 들여다본다. “니 초등학교 때 그거 기억나네? 버들강아지를 이렇게 튀겨가지고 도시락 반찬으로 싸왔었자네.” “니가 올해 몇이네? 칠십하나? 아이쿠.” “아이구 춥다 야, 우리 생기고 나선 63년도가 제일 추웠지. 영하 32도에 칼바람이 불었잖니.” 뒷자리에선 백발의 사내 둘이 소주 한 병 앞에 놓고 옛날 이야기를 한다. 허기를 채우고 정선역으로 향한다.


정선역에서 마지막 하행선인 낮 12시5분 기차를 잡아타고 아우라지까지 간다. 아우라지역을 끝으로 기차는 방향을 바꿔 상행한다. 원래 종착역은 구절리역이지만 구절리~아우라지 구간이 폐선되면서 아우라지가 끝이 됐다. 이제 아우라지에서 나오는 서울 가는 기차는 오후 5시30분 출발하는 막차가 남았다. 아우라지에서 버스를 타고 구절리로, 구절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아우라지로 돌아와, 아우라지에서 또다시 버스를 타고 별어곡역과 나전역으로 향한다. 억새전시관으로 변한 별어곡역 뒤론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고, 나전역의 외관은 성신여대 미대생들이 그려넣었다는 도깨비가 장악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손톱 모양 달이 떴다. 아무도 없는 나전역에서 청량리로 향하는 오후 5시38분 막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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