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자연 앞에서 느낀 울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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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1.01.13 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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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야 산다.’ 사진작가 권부문씨(56)는 이 시대 이 땅이 품고 있는 풍경들을 가슴에 담아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듬어온 그의 작품들은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이 붓으로 옮겼던 자연과 다름없다. 문인화의 정신을 추구해온 그의 사진은 바라보는 대상에 어떠한 더함도 덜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빛의 조율사 권부문은 사람이 그리울 때 카메라를 안고 산과 바다로 간다. 사람을 탐하지 않고 사람이 그리워하는 풍경을 취한다.
12일부터 2월27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권부문 개인전 ‘산수와 낙산’은 동시대인과 소통하기 위한 치열함의 소산이다. 2005년부터 작업해온 낙산 바다의 눈오는 풍경 연작, 지난해 카메라에 담은 바다 신작과 산수 신작이 관람객과 만난다. 눈쌓인 강원도 산과 눈보라치는 바다를 담았다. 눈나무는 가슴을 덥혀주고, 바다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별빛같고 불꽃같다. 특히 이번에 새로 시작한 ‘산수’ 시리즈는 진경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풍경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보는 이의 마음상태와 해석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요.” 이번 전시에서 홍천의 설산을 촬영한 ‘무제’와 설악의 설경을 담은 ‘무제’는 각각 507×237㎝이고, 가장 작은 것이 120×120㎝의 크기다. 가로 5m 사진은 갤러리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입구를 뜯은 후에야 벽에 걸렸다. 전시 때마다 콜렉터들이 작품 크기를 줄자로 재며 자신의 집에 맞는지 고민하는 모습은 그의 전시에서만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대상 앞에서 느꼈던 울림이나 호흡이 관람객 앞에서도 재현돼야 하므로 크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돈벌이를 위해 수요자들이 원하는 크기의 사진을 만들고 싶진 않다”는 것.


카메라는 자동카메라를 비롯해 12대. 촬영시 15㎏이 넘는 카메라 가방과 트라이포드까지 챙겨야 한다. 특히 겨울산은 갑자기 어두워져 촬영이 힘들고 하산시 눈에 덮인 산길을 조심해야 한다. 현재 오른 발목을 치료 중이고 무릎도 아프다. 오른쪽은 그의 약점이다. 오른손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치아마저 오른쪽 어금니를 꽉 무는 바람에 치과치료를 받았을 정도다. 기를 쓰고 사진을 찍다 얻은 직업병이다. “필름과 달리 디지털 작업은 집중의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저에겐 그 순간도 희열입니다. 장비구입 등 경제적인 어려움도 과유불급이라 생각하고요.”


처음부터 사진을 택한 건 아니었다. 대구 영남고교 재학시 미술반 반장이었는데, 교사들이 학생들의 그림을 과하게 수정하자 미대를 포기하고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첫 개인전을 한 시기는 1975년 3월 사진학과 3학년 때. 서울 신문회관과 대구 대백갤러리에서 ‘포토 포엠’전을 가졌다. “뜨거운 피를 어찌할 수 없어 시대의 궁금증을 80여점의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당시 고발사진이나 살롱사진이 유행했는데 저는 도시 풍경을 주제로 시커먼 흑백사진을 찍었어요. 사진계에선 ‘이게 사진이냐’며 저를 욕하고, 영상연구회 등 영화계와 젊은 미술가들은 극찬했죠.” 이듬해 동아일보에 ‘사진계의 이단아’로 인터뷰가 게재될 만큼 그의 작업은 파격이었다. 권부문의 집에서도 사진작업을 반대했다. 첫 전시가 마지막 전시로 끝나길 바랐다. 권부문도 내심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카메라를 팔아 대관료를 치렀다. 그런데 권부문의 부친에게 전화를 해 아들의 작업에 대해 혹평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아버지는 아들의 작업이 궁금해졌고, 결국 아들에게 사진을 권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76년 4월 군입대 전까지 1년간 안동 수몰지구와 하회마을을 기록한 사진촬영은 그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었다. “지역의 기록자로서 시대적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촬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4학점 중 20학점이 ‘빵꾸’났죠. 여름과 겨울방학 수업으로 학점을 받았어요. 당시 안동의 사라짐과 남음의 관계를 기록한 사진작업이 저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사회적 풍경에 관심많았던 그는 의미를 지우는 작업, 즉 보이는 자체를 중시한다. ‘무작정의 열정보다 냉정하고 명징한 사고를 담은 현대미술을 하자’는 생각은 97년 파리 살페트리에르 성당에서 구름을 주제로 한 대규모 개인전에서 빛을 발한다. ‘르 피가로’에 “이 사진은 그 앞에 서지 않으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림처럼 현장에서 봐야만 알 수 있는 사진”이라는 호평이 실렸다. 이후 일본, 스페인, 미국 등에서 개인전이 이어지고 99년에는 미국 사진전문출판사 나즈라엘리 프레스에서 첫 사진도록이 나왔다.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그는 2001년부터 속초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다. “35년 동안 걸었더니 이제야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언덕에 올라오니 겹겹이 넘어야 할 산이 보여요. 그전까진 7부, 8부 능선에서 헤맸는데 이제 스타트라인에 다시 섰습니다. 촬영장비를 들기 위해 몸무게도 10㎏ 뺐어요. 마지막 작업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된 거죠. 욕심은 많습니다.” 지난 1일 개설한 www.boomoon.net 자랑도 잊지 않는다. 오는 10월 ‘산수’ 작업으로 요코하마에서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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