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스튜어디스, 그녀들만 아는 특별한 여행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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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2.31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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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디스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또 오면 되니까요.” 이들의 여행은 한 번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단발성 여행이 아니다. 통장으로 치면 예금이 아닌 적금통장에 가깝다. 이들은 여행을 차곡차곡 모은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다음 비행 때 다시 오면 되니까. 그렇게 작은 여행들이 모이는 동안, 교집합과 합집합이 일어난다. 갔던 곳을 또 가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승무원들만 찾는 공통의 ‘핫 플레이스’가 생겨난다.

평소 스튜어디스에게 무엇이 궁금했나? 모두 사치스러운 명품족일까. 다들 예쁜 걸까. 돈을 잘 벌까. 외국어는 유창하겠지. 이들의 대답은 이렇다. “재테크에 관심 많은 똑순이가 많고” “편한 인상과 바른 자세의 사람이 많으며” “월급쟁이 월급 받고 살고” “기내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와 일본어 조금 할 줄 안다.” 자, 이제 다 접고 여행 정보에 대해 물을 일이다. 이들은 가장 많은 해외여행 경험과 비행 경험을 가진, 괜찮은 여행 가이드다.

 

승무원은 어떻게 여행을 할까. 대한항공 10년차 승무원 원나영씨의 작년 12월 13~15일 파리 비행 일정을 들여다보자. 인천-파리 KE901편으로 파리 현지시간 오후 5시50분쯤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한다. 손님이 다 내린 후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린다. 공항 밖에 나오면 대한항공이 계약한 파리 시내 호텔의 픽업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걸 타고 호텔에 도착하면 오후 7시 반쯤. 호텔에 들어가 일단 단잠을 청한다. “첫 번째 식사 서비스하고, 두 번째 식사 준비하기 전에 손님들 주무실 때 돌아가면서 벙크(간이침실)에서 잠을 자기도 해요. 그래도 10시간 이상 거의 눈을 못 붙여서 무척 피곤해요. 도착해선 무조건 휴식입니다.”

이튿날 오전 6시 반쯤 일어나 다른 동료들과 호텔 조식을 먹는다. 돌아오는 비행은 그 다음날인 15일 오후 8시30분. 14일 하루는 온전한 자유시간인 셈이다. 이렇게 현지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는 비행을 ‘레이오버(layover)’, 바로 돌아오는 건 ‘퀵턴(quick turn)’이라 부른다. 현지에서 2박을 하는 정도가 가장 긴 레이오버다. 원씨는 14일 오전 10시 호텔에서 시내로 나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동료들과 함께일 때도 있지만 주로 혼자 다닌다.

 

“일단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요. 거기서 누텔라 초코크림을 발라 바나나를 얹은 크레페를 사 먹으면서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사크레쾨르 성당 앞에서 생목으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거리의 가수를 만났어요. 반해서, 직접 구워서 매직으로 제목을 갈겨쓴 CD를 10유로나 주고 구입했습니다. 하하. 그 다음 샹젤리제 거리로 가서 12월에만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을 구경했어요. 지난번 파리에 왔을 때 눈독만 들였던 핫 와인을 드디어 마셔봤어요. 친구들에게 보낼 수공예 크리스마스카드도 구입하고요.” 원씨는 지난 11월29일에도 파리에 왔었다. 그때는 추운 날씨를 예상하지 못해, 노트르담 성당 앞 카페에 앉아 시간만 때우다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집에서부터 양모 내의, 어그부츠, 두꺼운 후드티, 스웨터, 파카를 준비해 갔죠. 그래서 하루 종일 화려한 겨울의 파리 시내를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다음날인 15일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은 오후 8시30분이다. 이렇게 오후 비행이 있는 날은 보통 하루 종일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다. 아시아나항공의 9년차 승무원 이명주씨는 이렇게 말한다. “비행 가서 여행 일정을 짤 때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다음 비행 전 휴식시간의 확보예요.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고 승무원이란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죠. 이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에 지장을 주는 무리한 여행은 금물이에요. 그래서 한 번에 한두 곳씩만 일정을 짜요.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승무원들은 일종의 네트워크다. 여행 정보가 이들 사이를 돌고 돈다. 승무원이 돼 처음에 가는 현지 음식점은 보통 “원래 다니던” 곳이다. 승무원들이 대대로 드나들던 곳들. 미국 LA의 ‘남대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종가집’, 태국 방콕의 ‘맨하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족발집 ‘짜이스’ 같은 곳이다. 이 음식점들은 대개 비행과 서비스에 지친 승무원들에게 ‘한국 음식’(이거나 비슷한 음식)과 자상한 서비스로 힘을 준다. 참기름을 뿌린 김치를 내주거나, “안뇽하세요.” 서툰 한국말을 건네거나, 한국식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주는 특별 서비스까지 해준다. 원나영씨는 “비행 일정에 LA가 나오면 머릿속에선 자동으로 ‘남대문’ 차돌박이가 떠올라요. 처음에는 거기까지 가서 한식을 왜 먹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고되니까 한식이 당기더라고요”라고 했다. 물론 이들에겐 ‘숨은’ 맛집과 마사지숍 정보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들은 내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 곳에서 서로의 비행 일정을 맞교환하기도 하고, 현지 음식점이나 여행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10년차 스튜어디스 원나영씨는 대학시절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유럽 배낭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돼 승무원 시험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인생의 절반을 하늘에서 혹은 바다 건너에서 보내는, 준여행인이 되어 있다. LA가 차돌박이로 이들을 유혹할지언정, 그곳까지 가는 비행은 최악의 비행이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 사이에선 생을 심판한다는 옥황상제가 “에이 고얀 것. 무슨 죄를 이렇게 많이 지었어?” 하고 건네는 것이 ‘202 엘에이 LAX’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시아나의 19년차 승무원 정진희씨는 “LA는 한국분이 많아서 사시사철 만석입니다. 한국분들이 외국항공에선 안 그런데 국내항공을 타면 요구하는 게 많아요. 낮 비행이고 비행시간도 길죠.” 대한항공 원나영씨는 “LA를 거쳐 상파울루로 가는 비행이 최악이라고들 해요. ‘아, 나 쌍파 나왔어’ 하면서(웃음). 인천-LA-상파울루-LA-인천 비행인데 장거리 4번을 연달아 뛰어야 하는 데다 올 땐 두 번 다 밤을 새우는 비행이라서 많이 힘들어요.”

 

그렇다면 선호하는 비행지는 어디일까? 아시아나 정진희씨는 “ ‘132 후쿠오카’편은 아침 일찍 출근해 1~2시간 비행 후 점심시간 조금 지나면 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은 주로 퀵턴해 바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일정이다. 그중 일본에서 낮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비행 스케줄이 있으니, KE 001/002편이다. 인천에서 LA로 갈 때 경유하는 나리타에서 승무원 교대가 이뤄져 만 하루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원나영씨의 말이다. “나리타에서 일단 호텔에 짐을 풀고 나면 달려가는 라멘집이 있어요. 오래된 곳인데, 부자가 끊임없이 라면을 삶고 교자를 굽고 있어요. 들어가면 여러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앉아 라면 그릇에 코를 박고 있죠. 그곳의 라면에는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위로가 담겨 있어요. 제가 십년간 수백번 같은 하늘길을 날아다니는 동안 그들도 수천 수만 그릇의 라면을 끓였겠지, 묵묵히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또 저의 다음 비행을 생각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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