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이름만큼 엉뚱하고 난해하게 단절된 ‘사회의 문’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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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2.21 14:02:35
  • 조회: 12279

 

대체 이 사람을 무어라 규정해야 옳을까. 세계 최고급 명품브랜드 에르메스 재단이 2010년 미술상 수상자로 선택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아티스트. 그러나 그 작가의 이름은 예술가의 아우라와는 거리가 먼 ‘양아치’(40)다.

 

그는 주로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비디오, 컴퓨터, CCTV, 박제된 비둘기, 사진 등 온갖 것들을 오브제로 쓴다. 이로써 ‘미술’이라면 그저 근사한 풍경이나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다고 알고 있는 이들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게다가 프로젝트라 부르는 작품 제목도 <밝은 비둘기 현숙씨> <양아치조합> <전자정부> <미들 코리아> <달콤하고 신 매실이 능히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 등 난해하고, 엉뚱하다. 서울 평창동, 예술에 무한애정을 갖고 있는 후원자가 제공한 작업실에서 만난 양아치씨는 마흔 살 답지 않게 귀여운 외모에 조리 있는 말솜씨, 공손한 태도로 기대(?)를 저버렸다. 그리고 그 어느 정치인보다 더 국민들을 사랑했고, 심리치유자처럼 인생을 관조하며 평화롭게 사는 법에 대한 사고가 깊었다.

 

“저는 미술이라고 해서 시각에 의존하고 조형성으로 평가받는 것에 흥미가 없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삶 속에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잖아요. 그게 혼자만의 체험이건 주변과 나누는 경험이건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듯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또 우리가 ‘그건 이렇다’고 규정하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일까란 물음만으로도 참 많은 이야기와 작품 아이디어가 나와요.”

 

지난 10월에 에르메스 미술재단 수상작은 영상작업인 <밝은 비둘기 현숙씨>다. 비둘기에 ‘빙의’된 현숙씨가 부암동 집에서 도산공원 근처의 에르메스 건물을 오가며 벌어지는 일들을 감시 카메라와 비둘기의 시선 등으로 찍은 것처럼 만든 작품. 자신을 비둘기라고 생각하는 현숙씨가 힘껏 하늘을 날면서 마주치는 무용수, 학생, 미술작가 등 6명의 각기 다른 사람으로 빙의된다. 비둘기 눈의 시점, 감시카메라의 시점은 물론 기타 분산된 여러 개의 시점으로 표현된 영상물은 관람객의 시각을 확장시킨다.

 

‘귀신이 씌었다’고 표현될 만큼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빙의는 대부분 질병으로 인식하고 종종 퇴마사까지 동원하는 게 현실. 하지만 그는 빙의를 광의적으로 해석했다고 했다. “빙의를 병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수시로 바꿔 쓰게 되는 가면, 일종의 ‘페르소나’로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가족이나 회사 상사, 혹은 친구를 대할 때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죠. 한 사람 안에 여러 모습이 있고, 때마다 다른 존재로 변하곤 하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너 혹은 나답게’ 살아야 하는 요구를 받게 되고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습니다. 과연 정체성을 찾는 게 가능하고, 또 옳은 일일까란 의문이 들어요. 그런 의문을 작품으로 풀어가는 거죠.”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미대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외환위기로 귀국했다. 미국에서 컴퓨터와 인터넷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흡수한 후여서 귀국해서는 장비가 없어 PC방을 전전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웹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지만 정작 단절된 사회의 단면들을 작품으로 담고 있다. 2000년 성곡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국내외서 발표한 작품마다 호응을 얻었다. 거대한 미디어를 통해 그가 통찰하고자 한 것은 줄곧 ‘관계’였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미들 코리아>는 작품 속에 남한과 북한 사이의 가상 국가를 세운 것이다. 그 국가는 통일과 화합을 다지는 영토나 이념상의 중간 나라가 아니다. 기존의 국가·정부·경제 등의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만든 나라이다. 국민을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동호회’같은 존재다.

 

“이건 옳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부가 아닌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참여를 독려하고, 비위를 맞춰주려는 동호회 같은 국가를 생각했어요. 회원들이 참여해야 동호회가 운영되잖아요. 저는 이상적인 대통령은 동호회 회장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회원들이 리플을 달면 곧바로 설명하고 시정해주는….”


그는 ‘4대강 사업이 스페인으로 옮겨졌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까’란 의문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가끔 미술관에서 사줄 뿐 개인은 사주거나 소장 엄두도 못내는 작품을 부지런히 만들면서도 그는 매우 행복해보인다. 혹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다.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떠오른 새벽엔 가끔 중얼거리죠. ‘난 천재인가봐’. 그런데 밤에 잠들 때 이렇게 말해요. 아유, 이런 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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