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색다른 ‘겨울 사막’한번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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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2.09 1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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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막부터 찾았다. 차를 달려 도착한, '한국의 사막'이라던 신두리 해안 사구는 초라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 탓일까. 모래는 한참 젖어 있고, 언덕은 생각만큼 광활하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전 이곳을 찾았다는 김모씨(34)는 "모양이 조금 달라졌네요. 그 때는 이쪽 언덕이 훨씬 높아서 올라가기조차 힘들었고, 저쪽에도 이것보다 높은 언덕이 생겨나 있었는데" 했다. 자고 일어나면 지형이 변하는 것이 사막이라고 했던가. 주변으로 아까시나무니 곰솔이니 하는 풀들이 모래 지형을 점점 조 여들고 있는 형세인데, 그래도 사막은 사막이지 싶다. 비가 온 뒤라 신두사구의 모래가 한껏 물을 머금어 단단해졌다. 그런데도 모래바람은 엄청났다. 누군가 타고 버려둔 모래 썰매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충남 태안 신두리 해안은 '겨울 바다'의 진수다. 일단, 무척 춥다. 이날도 새벽비가 내렸는데, 눈이 아니라 비인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가 낮은 탓이다. 신두리 해안은 겨울 내내 바다에서 뭍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해안이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겨울의 북서계절풍을 정직하게 받아들인다. 해안을 걸으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다. 왱, 왱, 바람 소리에 볼과 귀가 아리다. 그런데도 물빠진 갯벌 위엔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겨울 바다를 보러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삭풍을 맞으며 조개를 줍거나 사진을 찍었다. 일단의 무리는 심지어 해안에서 말을 타고 있었다. 하나같이 준마다. "개인 소유 말이에요. 여기서 타려고. 차에다 싣고 왔죠." 부유한 이들의 취미생활쯤이리라. 그만큼 겨울의 신두 해안은 삭풍을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곱디고운 모래의 백사장은 말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드넓고, 서해 중 드물게 물이 맑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20분 정도 걸었을까, 오른쪽 안면 근육이 서걱댔다. 펜션과 가게가 늘어선 길쪽으로 올라섰다. 건물 앞에 서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요하다. 바람이 잦아들었나? 마음을 놓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 건물 사이사이마다 다시 칼바람이 몰아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평화와 전쟁이 반복되는 식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깨달았다. 이곳은 바람 방향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건물 앞에만 있으면 다른 방향에서 공격해오는 복병은 없다. 바다를 등진 건물 앞엔 휘파람 불며 굴 까는 아주머니가 앉아 있다. 건물만 넘어가면 칼바람에 비명지르는 아이들로 뒤엉킨 해변이 있다.


이렇게 쉴 줄도 모르고 불어대는 바람이 사실, 신두 해안의 보물이다. 이 정직한 바람은 겨우내 바닷가 모래를 뭍으로 날린다. 이곳 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500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밟고 있는 모래가 실은, 1만5000년 동안이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지구를 지켰다는 뜻. 바람이 실어다준 모래는 억겁의 세월을 거쳐 언덕을 이뤘다. 사구는 그렇게 겨울 동안 성장하고, 여름에 폭풍이나 해일로 모래가 소실될 것을 대비한다. 모래산은 그냥 아름다우려고 서 있는 게 아니다.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바람으로부터 농토를 보호하고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다. 식수원인 지하수를 저장한다.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사구 뒤쪽엔 모래 위에 고인 호수, 두웅 습지가 있다. 갯방풍, 갯매꽃, 해당화, 통보리 사초와 표범장지뱀, 금개구리 등 희귀생물들이 이곳에 산다. 신두 사구는 2001년엔 천연기념물로, 이듬해엔 습지보호지역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사구와 해변을 돌아보고 근처 가게에 들렀다. 입과 코와 귀 속이 온통 모래 알갱이로 까끌댔다. '사막'이라 듣고 온 것이 무색했던 터라 "저쪽에 있는 모래언덕 있잖아요. 사구가 그게 다 인가요?" 물었다. 무지하기 짝이 없는 질문. 가겟집 아주머니는 "갔다왔어? 다 돌아보려면 두 시간도 더 걸리는데? 그 뒤쪽 숲으로 뒤덮여있는 곳도 다 사구여" 한다. 10년 전 이곳에 펜션을 지으면서 들어왔다는 이정훈씨(57·가명)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전 한밤중이었거든요? 여기 딱 도착했는데,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은하수가 덮여 있었어요. 너무 황홀한 거야. 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여기가. 그 때는 군인 초소만 하나 있고 이 일대가 온통 다 모래밭이었죠. 소나무 뿌리, 아까시 나무 뿌리, 모래뿐이었어. 원주민들이 여기 안 사는 이유가 모래바람 때문이야. 그래서 전부 저쪽 산 너머에 살았다고. 지금은 한 달에 몇 번 은하수 보기도 힘들고 많이 변했지요."

김씨 말에 따르면 10년 전엔 펜션도 가게도 하나 없었다. 말하자면, 바다 빼고 그 일대 전부가 사실은 사구라는 이야기다. 김씨는 말을 이었다. "환경단체랑 정부랑 사구 땅의 소유주가 만날 쌈질 하다가 결국 절반 정도만 보전하기로 하고, 나머지 절반은 펜션 짓고 개발한 거예요. 근데 보전만 하면 뭐하나, 관리를 제대로 해야지. 외지에서 날아온 외래종 잡풀만 자라고 모래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 콘크리트 밑이 모두 1만년된 모래다. 펜션들이 늘어선 길이 끝나는 모래길부턴 참억새밭이 펼쳐졌다. 휑하니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는 그곳에서야 종다리인지 딱새인지 노란빛의 작은 새가 날아올랐다. 해질녘의 신두리 해수욕장. 청년들은 강풍을 맞으며 삼각대에 사진기를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더니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물 빠진 백사장은 드넓고, 바닷물은 푸른 기운을 내뿜는다.


길잡이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산IC로 빠져 태안 방면으로 30~40분 진행하다보면 신두리 해수욕장 표지판이 보인다. 주소는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문의는 041-675-1466
*신두리 해수욕장과 신두사구와 두웅습지는 모두 지척에 있다. 신두리 해수욕장 입구로 들어가 길 양 옆으로 늘어선 펜션들이 끝나는 지점부터 오른쪽으로 사구가 펼쳐진다. 따로 '신두 사구'라는 표지판은 없다. 두웅습지는 신두리 해수욕장 입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두웅습지' 간판이 붙어 있다.
*신두리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이 많다. 자작나무(041-675-9995), 추억 만들기(041-674-5939), 하늘과 바다사이(041-675-1988) 등. 주말 기준 12만원선부터다. 조금 저렴한 모텔 숙소를 찾는다면, 차로 25~30분 걸려 태안읍내로 나와야 한다. 주말엔 모텔들이 대부분 성업 중이라 간판의 불이 켜진 곳을 찾기 힘들다.

*태안은 꽃게장과 낙지탕이 별미다. 토담집(041-674-4561)의 꽃게장은 벌집을 넣어 비린 맛을 없앴다고 한다. 과연 싱싱하고 맛있다. 꽃게장 1인 기준 2만1000원, 우럭젓국 9000원. 꽃게장은 워낙 유명해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택배로 하려면 ㎏당 6만원. 태안지방의 낙지탕은 주로 초가지붕에 열리는 '박'의 속을 쑹덩쑹덩 썰어넣고 수제비를 넣어 함께 끓여먹던 것으로 '박속밀국낙지탕'이라 부른다. 원풍식당(041-672-5057)의 박속밀국낙지탕 1만2000원.
*신두리 해안 사구 일대는 2013년까지 생태관광지로 조성될 계획이다. 생태 관찰로, 일몰 조망 전망대, 자전거 도로 등을 개설할 계획. 생태해설사를 육성하고, 모래찜질·습지와 사구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외래식물종을 제거하는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밖에 인천 옹진군 대청도의 옥죽동·사탄동,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우이도 등에 규모가 큰 사구 지형이 있다. 공히 훼손이 심각해 보전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우이도 사구의 경우 2015년까지 훼손 방지를 위해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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