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정선아 “철없이 앞만 보고 달린 8년, 작품 통해 나를 돌아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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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2.08 13: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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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닝으로 만든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메이크업이 도드라지는 뮤지컬 배우 정선아(26). 지난달 29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대화를 할수록 당찬 느낌을 줬다. 여배우 특유의 ‘내숭’은 그와 거리가 멀다.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싸가지’ 없는 여배우로 꼽혔을 정도. 하지만 그것이 솔직하고 의협심 강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만큼 정 많고 눈물 많은 여자도 없다는 걸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무엇보다 끼와 실력으로 무대를 열정적으로 꽉 채우는 그의 모습은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는 19살 때 <렌트>의 ‘미미’ 역으로 데뷔한 이래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드림걸즈>의 ‘디나’,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등 주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비중 큰 인물을 연기했다. 이번엔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다>(14일부터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암네리스’로 변신한다. 2005년 초연 오디션 때는 너무 어린 나이가 걸림돌이 돼 탈락했지만 이번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낙점된 것이어서 기쁨도 두 배다.

 
“초연 때는 아이다 역에 지원했는데 막상 공연을 본 후엔 암네리스의 당당하면서 화려한 면모에 매혹됐어요.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의상만 18벌이고 메이크업도 9번이나 바뀌죠. 전 중학생 시절부터 화장하고 다닐 만큼 겉멋 든 아이였어요. 마스카라를 칠하고 컬러렌즈까지 했죠. 예쁜 옷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요. 그러니 암네리스에 빠질 만하죠(웃음).”

 

팝의 거장 엘튼 존과 작사가 팀 라이스 콤비로 탄생한 뮤지컬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그리고 이 두 여인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장군 라다메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와 정혼한 사이지만 라다메스가 노예로 끌려온 아이다와 사랑에 빠진 것을 뒤늦게 깨닫고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정선아는 세련되고 도도한 모습 이면에 지니고 있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으로서의 괴로움을 ‘I Know The Truth(나는 진실을 알아)’라는 고음의 노래 속에 절절하게 뿜어낸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로 산 8년 동안 전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거침이 없었죠. 철이 안들었던 것 같아요. 꼭 진실을 알기 전의 암네리스처럼요. 하지만 최근 1년간 여러 이유로 심적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암네리스가 시련을 극복한 후 의젓한 이집트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연기하면서 저 역시 한층 더 진일보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그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꿈꾼 것은 중학생 때부터다. 건설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내기도 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함께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본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했다. 화려한 의상과 노래, 춤을 추는 배우들을 보며 황홀경을 느꼈다. ‘나는 꼭 뮤지컬 배우가 될 거야’라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인터넷, 책 등을 뒤지며 뮤지컬에 대한 정보 확보에 나섰다. 고2 때는 뮤지컬 연출가 배해일이 만든 서울뮤지컬아카데미에 다녔다. 또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과도 그 즈음 인연을 맺었다. 수능시험 직후 데뷔작 <렌트> 오디션에 응시해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정선아에게 비정기적으로 개인 교습을 해준 박칼린의 제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뮤지컬이 어제도 오늘도 자신에게 ‘전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돌 스타 기용 등 스타마케팅에만 급급하는 작금의 뮤지컬계에 짙은 회의도 느낀다고 했다. “TV스타를 우대하느라 정작 뮤지컬 배우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에 박탈감과 자괴감이 느껴지죠. 연습실에 제일 일찍 나오고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서 고생하는 배우들은 앙상블(합창이나 군무를 하는 배우)들이에요. 또 주역배우 못잖게 앙상블의 수준이 높아야 공연이 빛나죠. 하지만 싼값에 그들을 기용하려다 보니 앙상블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제작자들이 스타마케팅에 쓰는 비용을 줄여서 뮤지컬에 대한 열정으로 헌신하는 앙상블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좋겠어요.”

 

그의 인생계획이 담긴 오래된 노트에는 ‘40대엔 연기보다는 실력 있는 후배 양성에 매진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컬트레이너 혹은 예술감독이 되거나 뮤지컬아카데미를 설립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30대 중반쯤 외국 유학도 고려하고 있다. “제가 뮤지컬 배우로 이만큼 클 수 있었던 데는 저의 미래를 믿고 이끌어주신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뮤지컬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드릴 겁니다.”

 

그는 올해 <모차르트>로 뮤지컬계 양대 시상식인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드에서 인기스타상을 휩쓸었다. 뮤지컬 제작자들은 그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여배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기력과 가창력 그리고 스타성을 두루 갖췄다는 얘기다. 그가 만들어내는 암네리스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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