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한 “타락한 사회에 통쾌한 일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2.08 10:25:13
  • 조회: 12069

 

“모험이고 뭐고. 나리, 아니 주인님. 이제 그 무거운 쇳조각은 좀 벗으시죠.”(박용수) “진정한 기사는 산초 판사, 갑옷을 벗지 않는 법이다. 언제나 전투적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지.”(한명구)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극단 ‘여행자’ 연습실. 양정웅 연출의 주문에 맞춰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머리에 쓴 ‘돈키호테’ 역의 한명구(50)와 나팔을 손에 든 ‘산초 판사’ 역의 박용수(55)가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한명구는 수시로 소리를 지르고 박용수는 끝없이 조잘대고 폴락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1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돈키호테> 연습 장면. 스페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작 소설인 <돈키호테>를 원작에 가장 가깝게 각색한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한명구와 박용수 모두 <돈키호테> 출연은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이 연극으로 공연된 횟수는 손에 꼽힐 만큼 적다. 그나마 공연한 작품도 뮤지컬 버전 <맨 오브 라만차>를 연극으로 꾸민 것이었다.
“돈키호테형 인간이라고 하면 흔히 엉뚱하고 허황된 인물을 연상하잖아요. 하지만 실제론 돈키호테만큼 순수하고 정의로우며 지적인 사람이 없어요. 돈키호테 역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지요.”(한명구)
“평소 코믹하고 귀여운 남자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바람과 달리 늘 제게 들어오는 역할은 점잖거나 사악한 인물이었어요. 이 작품이 제게는 원풀이가 될 것 같아 응낙했죠(웃음).”(박용수)


빅토리앵의 희곡은 묘한 사각관계에 빠진 네 남녀가 돈키호테 일행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해결점을 찾는 이야기를 주소재로 삼고 있다. 바람둥이인 돈 페르난도, 진실한 사랑을 믿는 카데니오와 그의 연인 루신다, 그리고 돈 페르난도의 아내 도로시아가 등장한다. 돈 페르난도의 장난으로 사랑이 엇갈리면서 비탄에 빠진 이들이 돈키호테의 도움으로 올바른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내용이다. 극 속에서 돈키호테는 엉터리 갑옷을 입고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꿈을 ○○○아 돌진하는 이상주의자인 반면, 산초는 현실주의자이면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주인을 끝까지 섬기는 우직한 인물이다. 산초는 당초 돈을 벌 목적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돈키호테를 따라나서지만 어느덧 고결한 마음을 지닌 돈키호테에게 감동한다.

 
“세르반테스가 왜 이 작품을 썼을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 봤어요. 세르반테스는 17세기초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향해 일침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색을 하면 칼 맞아 죽을 테니, 소설을 통해 역설적으로 올바름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죠. 남들이 볼 때는 돈키호테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돈키호테가 볼 때는 세상이 정신 나간 것이잖아요.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해요. ‘꿈과 낭만과 사랑과 정의를 위해서 우리는 영원히 방랑과 모험의 길을 떠날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사랑을 위해, 열정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위해 떠나자’라고요. 시사하는 바가 큰 말이에요. 수세기가 흘러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겠지요.”(한명구)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흉가에 볕들어라>(1999), <고도를 기다리며>(2002·2003·2004)에 이어 이번까지 다섯번째이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연기 호흡이 척척 맞지만 실제 성격은 판이하다.
“처음엔 후배인데도 한명구씨가 불편했어요. 이 사람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스타일이거든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만큼 같이 연기하는 게 편한 배우도 없어요. 서브텍스트(말 외의 의미, 숨은 이유)가 잘 통하기 때문이죠.”(박용수)
“형은 덩치와 달리 징징대는 성격이에요(웃음).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둘이서 연습 중에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은데 지켜보는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은 재미있대요.”(한명구)


내친김에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용수는 한명구에 대해 “역할이 자기 손아귀에 꽉 쥐어질 때까지 끝장을 보며 몰입하는 지독한 녀석”이라고 말했고, 한명구는 박용수에 대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정직하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도 격조가 느껴진다”고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혼탁한 세상에 정의를 심으려는 돈키호테의 꿈을 연기하는 두 배우에겐 어떤 소망이 있을까.
“배우로서 더 많이 활약하고 싶어요. 명성도 얻고 돈도 벌고 싶죠. 그런 후엔 전 세계의 산을 트레킹하고 싶어요.”(박용수) “연극배우들이 돈 걱정 안하고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꿈이잖아요. 꿈은 꾸되 지금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야죠.”(한명구) 돈키호테 역은 한명구와 이순재가 번갈아 출연한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