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황병기“국악인생 60년, 창작인생 50년, 언제나 ‘지금’이 가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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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1.29 13: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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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75·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는 1951년 경기중 3년 때 가야금을 배웠다. 작곡을 한 건 62년부터였다. 올해 국악입문 60년, 내년에 창작인생 50년을 맞는 명인을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만났다. 12월4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황병기의 소리여행-가락 그리고 이야기’를 앞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택 2층의 작업실에서 보낸다. 특히 이번 무대는 52명의 젊은 예술인이 각자가 선택한 황병기의 작품을 올리는 헌정공연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최초의 창작가야금독주곡인 ‘숲’을 세계적인 일본의 기타리스트 가즈히토 야마시타와 그의 딸 가나히 야마시타가 연주하고, ‘영목’에 맞춰 22명의 김삼진무용단이 춤사위를 선보인다. ‘미궁’은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춤으로 푼다. 아나운서 이금희와 함께 진행을 맡은 황병기 명인은 마지막에 ‘달하 노피곰’을 연주한다. 소설가 이외수의 그림과 김기상의 액션페인팅 서예작업은 무대미술이 된다.

 

2006년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그의 작업실은 가야금과 장구 외에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포스터와 이번 헌정공연 홍보물로 가득하다. 기자를 만난 황 감독은 “지난 10월2일 초연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작곡 임준희)의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소식부터 전했다. ‘어부사시사’뿐인가. 국립극장에서 5년 동안 그가 만든 공연시리즈는 늘 화제가 됐고 매진을 기록해왔다.

 

‘엄마와 함께 하는 국악보따리’ ‘황병기와 함께 하는 정오의 음악회’ ‘사랑방 음악회-대화가 있는 무대’ ‘뛰다 튀다 타다-테마가 있는 퍼포먼싱 콘서트’ 등 국악 대중화를 위한 무대는 황병기 브랜드가 됐다. 자신이 직접 무대에서 해설하는 ‘스타시스템’도 실천한다. 물론 작곡과 연주만으로 일군 ‘노하우’는 아니다. 지난 9월 한국인 최초로 제21회 후쿠오카 아시아문화대상을 수상한 배경도 국악인생 60년 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음악으로 먹고 살지는 않겠다’는 젊은 날의 다양한 경험축적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서울대 음대강사를 하다 63년 명동극장 지배인이 됐고, 보람영화사와 출판사인 문조사를 설립해 운영한 CEO의 경험이 ‘국가대표 국악인’을 만든 셈이다.

 

기자가 ‘국악인생 60년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묻자 “언제나 ‘지금’이 가장 좋다”고 했다. “후회도 없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건 법학의 이론체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법조인이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요. 법학과 국악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원래 부친의 뒤를 이어 사업가가 되고 싶었지만 저에겐 경영학이나 경제학이 구체적인 학문으로 다가오지 않았죠. 가야금 소리가 좋아 악기를 잡았지만 국악으론 생활이 어려워 다양한 직업을 거쳤어요. 당시 전국에서 팔리는 가야금이 한해 열대 정도였죠. 지금은 한해 1만대 넘게 팔리지만….”

 

그동안 연주된 그의 작품은 40여편. 작품을 연주한 제자는? “제자가 맞느냐 아니냐도 가리기 힘들 만큼 제자가 많습니다. 제자의 제자까지 합하면 셀 수도 없어요.” 그의 첫 제자는 1959년 서울대 강사시절 가르친 국악과 1기 이재숙 전 서울대 교수와 2기 김정자 전 서울대 교수다. 국내 최초의 가야금박사인 제자 이지영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히 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여제자들을 키운 그는 온화한 성품과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여제자들과 너무 친하게 지낸다’는 흑색소문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논어>에 나오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란 구절을 떠올립니다. 소문 때문에 집사람(소설가 한말숙)이 화낼 때도 있었지요.” 55년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5년 연상의 한말숙씨와 만나 62년 결혼한 황 감독은 2남2녀를 두었다. 큰 아들 준묵씨는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이고 둘째 아들 원묵씨는 미국 텍사스대 A&M대 생명공학과 교수다. 황 감독은 99년 대장암 수술 당시 아내의 입맞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입원실에서 바라본 병원 시계탑을 소재로 가야금곡 ‘시계탑’을 작곡했다. ‘시계탑’은 영감을 얻어 짧은 시간에 작곡했지만 대개는 무엇을 작곡할지 마음잡는데 2년 걸리고, 곡을 쓰는데 2주일쯤 소요된다.

 

“다시 논어 이야기할게요. 재미있어요. 논어 구절인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흥어시 입어예 성어악)’은 ‘시에서 감흥받고, 예를 알아 인격을 갖추고, 음악으로 완성한다’는 말입니다. 음악이 인간의 완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방편이라는 겁니다.” 인본주의적인 그의 작품은 언제나 화제를 모았다. 2002년엔 ‘75년 작품인 미궁을 세번 들으면 자살한다’는 소문이 언론에도 보도됐는데, 그덕에 ‘미궁’은 미궁으로 끝나지 않고 황병기를 알리는 대중적 코드가 됐다. 74년 유럽 초연된 ‘침향무’도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다. 신라인으로부터 춤곡을 위촉받았다고 상상하고 작곡했는데 이젠 중·고교 국악콩쿠르 지정곡이 될 만큼 국악의 클래식이 됐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와 법정스님도 ‘침향무’ 마니아였다. 74년 1집 ‘침향무’를 시작으로 5개의 앨범을 냈다.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의 선구자인 그에겐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그는 홀로 있기를 즐긴다. 하루 한갑 피우는 담배도 홀로 있는 시간의 여유를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시간만큼은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공초월의 여유로 남는다. “논어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의문형으로 끝나는 구절이 있지요. ‘때때로’ 익히지, ‘줄곧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에요. 여유있잖아요. 그리고 단정짓지 않은 채 의문형의 여운을 주니 좋지요. 요즘 사람들은 ‘남이 나를 몰라준다’고 고민하지, ‘내가 남을 몰라주는’ 건 걱정하지 않아요. 여유가 없어요.” 헌정무대에서 건넬 화두의 하나도 ‘여유’가 담긴 음악과 삶이다. 서울예술기획 주최. (02)548-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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