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두 분의 좋은 스승,연기에 대한 오기, 오늘의 날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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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1.12 10: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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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는 ‘웃기는 남자’다.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비장의 카드로 꺼내놨던 ‘손병호 게임’이 인터넷 인기검색어에 오를 정도다. 또 현대무용에서 발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였던 ‘볼링춤’으로 시청자의 배꼽을 빼놓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굳어졌던 이미지가 ‘깨방정 손병호’로 바뀐 게 불과 서너 달 사이다.


“기왕 나갔으면 잘해야죠. 처음 출연했던 <야심만만>에서 아주 수모를 당했어요. 다음부터 준비를 철저히 했죠. 두번째로 나간 게 <상상플러스>였는데, 거기서 좀 풀렸습니다. 킹콩춤도 추고 꼭짓점 댄스도 추고…. <해피투게더> 나갈 때는 또 다른 걸 준비했죠. 그게 바로 손가락 게임이었어요. 방송 나간 후에 아예 ‘손병호 게임’이 됐더군요. 저야 행운이죠.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으니까.” 그렇게 대한민국을 웃기면서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손병호(48)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일인극 <아이스크림 라디오>다. 대학로에서 만난 손병호는 진지했다. 말은 아주 빨랐지만, ‘깨방정 손병호’가 아닌 ‘연극쟁이 손병호’로 어느새 돌아와 지난 25년을 돌이켰다.“8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안민수 선생한테 연기를 배웠어요. 제 연기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스승이시죠. 안 선생이 이끌던 동랑레퍼토리의 마지막 작품이 <리어왕>이었는데, 그때 출연진 가운데 제가 가장 막내였어요. 많은 걸 배웠죠. 안 선생이 말씀하시는 걸 노트에 적느라고 정말 바빴죠.”


“뭘 배웠느냐?”고 묻자, 손병호는 코밑과 턱에 멋들어지게 수염을 길렀던 연출가 안민수(70) 흉내를 냈다. 역시 그는 배우였다. 그는 스승의 혀 짧은 발음까지 흉내내며 이런 대사를 읊었다. “얘 병호야, 시시한 역은 없어. 시시한 배우가 있을 뿐이야. 너 지금 뭐하는 거니? 항상 왜냐고 물어야지. 네가 그 장면에서 왜 발광하는지, 조용히 걸어가는지, 자꾸 물으란 말이야.” 그게 배우로서의 첫발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마치고 제일기획에서 외주 제작하던 TV문학관 연출부로 입사했다. “집안이 폭삭 망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 때문”이었다. 한데 첫 드라마였던 <눈보라>를 끝내자마자 자꾸 눈앞에 연극판이 어른거렸다. 그래서 입단한 극단 현대극장. 그곳에서 2년을 보냈다. <레미제라블> <에비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뮤지컬들이 당시 현대극장의 주요 레퍼토리였고, 김철리가 연출했던 <당통의 죽음> 같은 연극도 있었다. 당시 현대극장은 ‘잘 나가던’ 극단이었다. 당연히 다른 극단들에 비해 먹고사는 것도 풍요로웠다.


“하지만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극단이 ‘목화’였어요. 86년에 오태석 선생이 연출한 <태>를 봤거든요. 충격이었죠. 제가 하고 싶었던 게 거기 다 있었어요. 다음해에 <부자유친>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죠. 연극의 리얼리티는 현실의 리얼리티와 다르잖아요. 관객들에게 ‘아, 저 사람은 연극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면서, 또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드러내야 하잖아요.” 29살에 ‘그토록 원하던’ 목화에 들어갔다. 빗자루 들고 걸레를 빨아야 하는 신입 시절이 다시 시작됐다.

 

손병호는 “그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작 괴로웠던 건 “오 선생의 눈에 들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배우였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저를 완전히 본체만체하셨어요. ‘너 이름이 뭐냐’고 물어서 ‘손병홉니다’라고 대답하면, 며칠 있다 또 물으시는 거예요. <비닐하우스>라는 연극을 할 때는 ‘너 어디서 연극 배웠느냐’며 엄청 구박을 받았죠. 그러다 결국 무대에서 내려와 음향을 맡았어요. <불의 나라> 할 때는 팸플릿을 아무리 훑어도 제 이름 석자가 아예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때가 제일 아팠어요. 배우가 되긴 틀렸나보다, 목소리도 탁하고 연기도 안되고…. 극단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서 꺼이꺼이 울었죠.”


그래도 손병호는 연출가 오태석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오기를 키웠다”고 했다. 그는 “어린 마음에, 오 선생한테 복수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오 선생이 ‘야, 병호야’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줄 때가 오면, 그때 미련 없이 ‘목화’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연극 명장’으로 불렸던 오태석의 연극에서 첫 배역을 맡은 건 92년 <춘풍의 처>. 그리고 이듬해에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서 취객 역할로 분하면서 ‘손병호’라는 세 글자를 드디어 대학로에 알렸다.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고, 술 취한 연기로는 손병호를 따를 배우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손병호는 마침내 오태석의 연극 <태>의 주연으로 무대에 섰다.


“일본 홋카이도 공연을 마치고 처음으로 대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심하게 들이받았어요. 그때 제가 선생님한테 쏟아부었던 말들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지금도 죄송한 건 ‘선생이면 선생답게 행동하세요’라고 했던 말이죠. 하지만 오 선생은 정말 존경할 만한 예술가입니다. 자신의 창작에 그만큼 몰입하는 예술가는 흔치 않거든요.” 이후 활동 반경은 영화로 확대됐다. 98년 송일곤의 단편 <소풍>이 출발점. 그 영화가 이듬해 칸 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니 “나는 데뷔작부터 세계적 배우로 뜬 것”이라고 손병호는 농을 던졌다. 그러나 본인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영화는 “최민식과 함께했던 <파이란>”이라고 답했다.


이번 공연은 2005년 <클로저> 이후 5년 만의 연극무대 복귀작. 손병호는 “좋은 스승과 선배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면서 “배우 이호재 선생의 <약장수>를 보면서 1인극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이젠 나도 한번 해볼 만한 나이가 된 것 아니냐”고 했다. 공연은 25일부터 28일까지. 평촌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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