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목장길 따라 막걸리 한잔… 이런 곳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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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1.10 14: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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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 그곳의 풍광은 균질하지 않다. 도시도 농촌도 아니다. 사람의 손길은 법으로 막혀 있지만, 개발에 대한 욕망은 움틀거린다. 대부분이 ‘방치된’ 날것에 가깝다. 비닐하우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가옥, 공사장, 무지막지하게 큰 간판의 음식점, 낡은 주말농장…. 훼손할 수 없는 자연 곁에 이런 것들이 규칙없이 흩어져 있다. 도시 중심에 사는 이들은 이곳에서 이물감을 느낄 것이다. 동시에 현실적이란 생각도 할 것이다. 서울의 외곽을 걸어본다.


원당은 1910년 이(里)에서 면으로, 79년 면에서 읍으로, 92년 고양군이 시가 되면서 동으로 ‘승격’된 곳이다. 이름만 동이지 사실 옛 농촌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지하철을 타고 원당역에 내려 원당경주마목장까지 걸었다. 경주마목장은 지역 주민들의 소풍지다.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다. 서삼릉에 들러 삼송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각 포인트에서 머문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걸은 시간만 3시간30분가량 됐다.


1. 원당역 ~ 배다리 술박물관
원당역은 3호선 위 끝쪽에 있다. 구파발까지가 서울이고 지축부터 경기도다. 지축 다음역이 삼송, 그 다음이 원당이다. 6번 출구로 나와 섰더니 앞으로 곧게 뻗은 도로변에 은행잎이 한가득이다. 길 위엔 백발의 어르신 한 명뿐이다. 배다리 술박물관 이정표가 눈에 띄지 않기에 길을 물었다. “나도 배다리 가는데, 막걸리나 한잔 하려고. 친구 만나기로 했지. 아가씨도 막걸리 맛 보려고?” 그는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순전히 맛좋은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서다. 5분가량 그와 함께 걸어 배다리 술박물관에 도착했다. 1층에 노천 카페를 겸한 커다란 식당이 있다. 배다리 술도가에서 주조하는 막걸리, 청주, 증류소주 등을 간단한 안주와 함께 판다.


2층에 전시장이 있다. 썰렁하기 짝이 없는데, 인내심을 갖고 보면 꽤 흥미롭다. 배다리 술도가에서 1915년부터 소장해온 술 제조와 관련한 각종 전통 도구, 제조과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건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묘사하는 대목. 66년 박 전 대통령이 삼송리의 ‘실비옥’이란 주막에서 배다리 쌀막걸리를 처음 맛본 후, 서거 때까지 14년간 ‘대통령 전용 막걸리’를 별도로 빚어 납품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레이밴 선글라스를 낀 박 전 대통령이 북어포, 풋고추, 된장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모형이 있다. ‘청와대에 납품하던 막걸리’라는 수사는 요즘도 통하는 모양이다.


2. 배다리 술박물관 ~ 원당경주마목장
박물관에서 나와 정문으로 나가지 말고 바로 왼쪽 샛길로 빠진다. 좌우로 작은 텃밭과 ‘임대’한다는 비닐하우스 농장들이 늘어서 있다. 곧 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접어든다. 작은 산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서울 외곽은 이렇게 걷는 게 묘미다. 도시도 농촌도 아닌 난잡한 한적함이 있다. 숲길을 지나면 마을이다. 마을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 사이로 쓰레기들이 뒹굴었다. 깻단을 털고 있는 아낙들을 보면서 마을 안쪽 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턴 현대식 양옥집들이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대문집, 자동차 도색을 해주는 카센터, 수확이 끝난 논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불균질하다. 원당경주마목장 쪽으로 가려면 골프장(한양컨트리클럽)이 자리하고 있는 산을 빙 둘러가야 한다. ‘한우마을’이란 식당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이 길을 찾기가 다소 어렵다. 오른쪽에 골프장을 두고 걷는 길임을 염두에 두자.

 
그렇게 방향을 잡고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1시간30분 정도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오른편으론 울타리 너머 ‘나이스샷’과 박수소리 속에 골프를 치는 이들이 보인다. 가을색으로 물든 골프장은 지극히 정리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왼편으론 논밭, 비닐하우스다. 개발에서 밀린 땅이 몇 채의 집과 함께 생기없이 늘어서 있다. 서울 근교의 골프장이란 대개 이런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숲길이 끝나면 다소 넓은 자동차길이 나온다. 찻길을 따라 걷는 이 구간에서 지치기 쉽다. 중간에 보리밥집, 고깃집 등 먹거리촌이 있으니 들러도 좋겠다. 중간 크기의 낚시터(대천낚시터)도 있다. 피로한 초로의 사내들이 초점없는 눈을 하고 줄줄이 앉아 있었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지나 허브랜드가 보이면 다 온 거다. 허브랜드에는 시들시들한 허브 화분들이 그 지역의 땅처럼 힘없이 늘어서 있다. 그래도 허브차는 피로를 풀기에 좋다. 허브랜드에서 왼쪽으로 경주마목장 간판이 보인다.

 
3. 원당경주마목장, 서삼릉 ~ 삼송역
허브랜드에서 경주마목장에 이르는 가로수길부터는 관광지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한아름이 넘는 굵은 은사시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곧게 뻗어 있다. 여름엔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는데, 이날은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했다. 가로수길 끝에 서니 양쪽으로 벌써 푸른 초원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왼편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젖소개량사업소, 오른편이 경주마목장이다. 이 모두 과거엔 서삼릉이었다. 60년대 정권이 왕릉 땅을 마사회, 축협, 골프장, 농협대학 등으로 넘기면서 지금의 모양새가 됐다. 왕릉 훼손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삼릉은 2009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원당경주마목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은행잎 이불이었다. 일단 이곳에 들어서면 넓고 푸른 초지에 놀란다. 그 위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 보리라고 상상치 않았던 이국적인 풍광이다. 경주마목장은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경주마교육원을 개방한 것이다. 경주마교육원 앞마당에선 기수들이 경주마를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끈에 묶인 잘 빠진 경주마들이 하릴없이 일정한 원주를 빙빙 돌았다. 이곳엔 교회 친목모임, 유치원 어린이들, 대학생 커플, 유모차 끌고 나온 젊은 부부 등 가을을 즐기는 이들이 가득했다.


바로 옆에 붙은 서삼릉은 대조적으로 인적이 드물었다. 나오는 길에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면서 “아부지, 봐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요”라고 말하는 중년의 여성을 만났을 뿐이다. 무료인 경주마목장과 달리 1000원의 입장료가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서삼릉엔 인종-인성왕후 박씨의 능인 효릉,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철종-철인왕후 안동김씨의 능인 예릉이 있다. 여기 묻힌 이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했다. 인종이 30세, 철종이 32세, 장경왕후가 25세에 죽었다. 각각 세 살과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의소세손과 문효세자의 묘소도 있다. 그런데도 능은 엄청나게 거대하다.

 

왕릉 봉분이 만드는 둥그런 그늘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음이 서늘하다. 소나무, 오리나무, 전나무, 단풍나무 아래 고즈넉한 길을 뒤로 하고 삼송역으로 향한다. 허브랜드 근처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매일 그 버스를 이용한다는 주민 정모씨(67)는 버스 기사와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양편으로 은행나무가 우거져, 마을버스로 지나는 길 중엔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길이다. 멀리 북한산 능선 근처에서 아파트 공사장 크레인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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