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비석’ 따라가다 ‘역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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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1.02 13:52:57
  • 조회: 12190

 

'신령한 비이다. 건드리는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이를 글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 마치 투탕카멘의 저주 같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서라벌고교 맞은 편 높은 콘크리트 옹벽 위에는 이처럼 섬뜩한 묘비가 떡하니 서 있다. 지난 2007년 서울시 문화재에서 보물 제1524호로 승격된 '이윤탁 한글영비(靈碑)'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최초의 한글 비석인 '이윤탁한글영비(靈碑)'는 한글로 묘비 훼손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는 데다 한글 묘비 중 유일하게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보물로 승격됐다. 강윤중 기자명문 성주 이씨의 후손인 이문건(1494~1567년)이 아버지 이윤탁의 묘를 이곳으로 옮겨 어머니 묘와 합장하면서 세운 것이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한글 비석이다. 한글로 새겨진 비석들 가운데 유일하게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데다가 중세 국어 및 서체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 전역 곳곳에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담겨있는 비석들이 흩어져 있다.

 

◇ 비석 속에 숨은 이야기 = '이윤탁 한글영비'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글의 내용 때문이다. 묘비 앞 뒷면에는 여느 사대부의 묘비처럼 한자로 묘주명과 일대기 등이 적혀 있는 반면 왼쪽 측면에는 한글로 묘비 훼손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훗날의 위기를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실제 이 묘역은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으로 인해 1999년 원래 자리에서 15m 뒤쪽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장하던 날 문중 어른들이 묘역 앞에서 제를 지내며 조상의 넋을 달랬다. 그 덕분인지 이장 후 묘비에서 예고한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윤탁의 묘는 당초 양주에 있었어요. 그런데 문정왕후의 능 조성 예정부지로 강제수용되면서 아들 이문건이 이전했지요. 묘비의 경계문은 외압에 의해 옮겨진 아버지의 묘를 두번 다시 옮기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며 이문건이 쓴 일종의 방어장치인 셈입니다."(김수정 서울시 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

은평구 구산역 부근 보물 제1462호인 '인조별서유기비'(仁祖別墅遺基碑)는 조선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별서(別墅)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세운 것이다. 인조반정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그 현장을 증명해 주는 사료다.

 

올해 4월 송파구 석촌호수로 옮겨진 '삼전도비'(三田渡碑)는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해 한강변 삼전도에서 항복한 인조의 시련을 담고 있다. 김훈의 역사소설 < 남한산성 > 으로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정작 삼전도비는 비련의 역사만큼이나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국치라 여겨 1895년 매몰됐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지고, 광복 후 1956년 주민들이 또 땅속에 묻었다. 1963년 홍수로 재발견됐고 2007년 비석 훼손 사건을 거쳐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됐다. 몽골어·만주어·한자 등 3개 언어로 새겨진 비석이기도 하다. 이 밖에 서대문구 명지대 뒷동산에 자리한 '양호거사비'(楊鎬去思碑)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한 명나라 장군 양호의 공을 기리고 있다. 은평구 진관동 '금암기적비'(黔巖紀蹟碑)는 조선 정조가 숙종의 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인 영조를 회상하며 세운 석비다.

 

◇ 근대사를 담은 비석들 = 중구 장충단 공원의 '장충단비'는 1900년 고종황제가 을미사변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석의 앞면에 새긴 장충단(奬忠壇)이라는 세 글씨는 순종황제가 썼다. 당시 육군대장 민영환이 비석의 뒷면에 내력과 의미를 새겼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장충단은 문을 닫았고 비석도 뽑혔으나 광복 이후 비석을 되찾아와 신라호텔 자리에 세웠고, 1969년 이후 현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다.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앞에 있는 사적 제171호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는 고종이 왕이 된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아울러 종로2가 일제시대 민족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비석들이 있다. 3·1독립운동 비석판, 3·1운동 독립선언서의 인쇄소로 알려진 보성사 기념비, 3·1정신 찬양비 등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시비도 이곳에 있다.

 

강서구 개화산에는 6·25 개화산 전투 전사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호국충혼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서울시사 편찬위원회 나각순 연구원은 "광화문에 위치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나 탑골공원 내 '대원각사비' 등의 비석은 당대의 역사문화를 알려주는 걸작품"이라며 "서울 도심에서 이 같은 비석을 볼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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