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알프스 풍경화가 된 ‘길 위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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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21 1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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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는 늙었다. 지형은 아직 팔팔한 장년이지만, 풍기는 기운은 아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가는 곳마다 머리 희끗한 노년층이다. 알프스는, 스위스 융프라우 지역은 그런 곳이다. 세월을 품은 자의 고요함이 있다. 도무지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도, 몸을 급격히 움직이고 싶지도 않다. 세계가 한없이 거대한데 오히려 발밑에 서걱대는 흙이나 풀소리, 눈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산맥과 협곡과 호수를 돌아 돌아, ‘아참, 사람은 원래 작았지’라고 되뇐다. 융프라우 지역을 걸었다.

 

융프라우 하면 누구나 설원이 펼쳐진 고봉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백미로 꼽는 것은 하이킹이다. 이 지역엔 만년설이 덮인 융프라우, 아이거, 뮌히 등 3000m 이상의 고봉들 아래로 넓은 고원지대와 협곡, 분지, 빙하지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주변에 76개의 하이킹 코스가 있다. 난이도 높은 산악 하이킹도 있지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도 많다. 그 중 쉽고 경관이 좋다는 코스를 골라 걸었다. 길 위엔 노년층은 물론 어린아이부터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 유모차, 산악자전거, 강아지들이 섞여 있었다.

 
아름다운 걸로 치면, 휘르스트에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다녀오는 코스(휘르스트-바흐알프 호수 - 휘르스트/1시간40분)가 제일이라 했다. 이곳의 아름다움이란, 액자에 걸린 그림에 가깝다. 휘르스트는 해발 2168m 지역. 융프라우 지역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린델발트(1034m)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30분가량 올라야 한다. 오전 9시 그린델발트역에 내렸다. 마을 옆 계곡 주변으로 물안개가 자욱했다. 날이 어둑하고 쌀쌀했다. 외투를 껴입었는데도 콧물이 나왔다. 케이블카 안, 침묵의 파노라마를 지나 휘르스트에 도착했다. 여기는 더 높은데 오히려 해가 비친다. 10분 정도 걸어오르니 땀이 났다. 스위스는 매일 사계절이 공존한다는 말이 맞긴 하다.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해 각 고산지대 포인트마다 웹캠을 설치해놨다. 24시간 융프라우 관광 웹사이트(www.jungfrau.ch)에서 확인 가능하다. 미리 날씨를 가늠하고 오르라는 소리다.

 

조금 높은 언덕에 잠시 섰다. 아직 얼마 걷지 않았는데 바흐알프 호수까지 굽이굽이 이어진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길 끝에 사람이 있긴 한데 잘 안 보인다. 평탄하지만 길고 멀다. 근처에서 숨을 돌리던 백발의 프랑스 여성 도미니크는 “죽기 전에 꼭 와보고 싶었어요”했다. 오던 길을 돌아봤다. 뒤로 3000m 이상의 설봉 일곱개가 늠름하다. 아래로는 푸른 초지와 깊은 계곡 사이로 그린델발트 등 산자락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가장 스위스다운 경치다.


1시간가량 걷다보니 어느새 시야에 들어왔던 그 길 끝에 와 있다. 느린 걸음으로도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코너를 돌았다. 거짓말처럼 바흐알프 호수가 나타났다. 도미니크가 “죽기 전에” 운운한 것이 그제야 조금 이해됐다. 바흐알프 호수는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있다. 하늘과 산이 호수에 비치는 바람에 좌우, 상하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산에서 내려온 빙하수와 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손을 담갔는데 아주 차가웠다. 1901년엔 2m 정도 둑을 높였다. 이후 100년 넘게 근방 지역에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같은 길을 돌아오지만 보는 방향이 달라 지루하지 않다. 휘르스트 역에 도착해선 잠시 생동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휘르스트 플라이어, 패러글라이딩 등의 레포츠 탑승장이 있다. 휘르스트 플라이어는 안전장치를 한 채 줄에 매달려 슈렉펠트(1955m)까지 800m 구간을 시속 80㎞로 날아가는 레포츠. 올라올 때 케이블카로 왔던 길의 3분의 1을 맨몸으로 내려간다고 보면 된다. 플라이어 탑승장 바로 곁에선 패러글라이딩이 한창이었다. 날이 좋은 봄·가을이 시즌이다. 패러글라이더들은 점이 되어 압도적 자연 사이사이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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