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세계여행 뒤 느리게 살고 싶어 게스트하우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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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18 15:15:02
  • 조회: 11974

 

여행기간 1년 이상, 여행국 20개국 이상, 느리게 사는 삶….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들을 설명하는 말은 대체로 이랬다. 현실과 삶으로서의 게스트하우스는 어떤 것일까. 이들은 여행자들 틈에 치이면서 매일 매일 여행욕을 불태우거나, 이곳이 한국이나 서울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다. ‘낭만적인 직업’만은 아니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 ‘블루 게스트하우스’ 이제운(37)
“뮌헨에 묵었던 곳서 아이디어… 10년 연구 끝에 이룬 꿈 행복”

“나는 10년 동안 게스트하우스만 연구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갖게 된 것이 정말 행복하다. 지난해 방 3개에서 시작했는데, 매출이 올해 5배로 뛰었다. 아이폰으로 예약이 많이 들어오는 등 기술적으로 손쉬워진 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한류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엔 영국 맨체스터 근처 소도시에서 청년 4명이 여행을 왔다. ‘뽀삐뽀삐’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더라. 난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는데 틀어줬다. 그랬더니 여기서 넷이 안무에 맞춰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또 한 번은 헝가리인인데 그냥 한 달을 멍하게 있더라. 그래서 ‘왜 왔느냐’고 했더니 슈퍼주니어 예성의 팬이라고 했다. 홍대에 예성의 어머니가 하는 식당이 있다고…. 거기에 만날 밥 먹으러 가는 거였다. 결국 어떻게 연결이 돼서 슈퍼주니어 콘서트에도 갔다왔다. 다녀와서 울고불고 이제 한이 없다고 하더라. 하하.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 20대 초·중반엔 회사에 다녔고 30대 초반까지는 외국인들 대상으로 인터넷 여행 정보 벤처사업을 하다 말아먹었다. 20대의 대부분은 여행이었다. 약 4년반 동안 50개국을 여행했다. 원래 이 자리에 장기 임대 원룸 장사를 하다 지난해에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했다.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다. 이름처럼 모든 것을 파랗게 하는 콘셉트인데 이건 독일 뮌헨 여행 중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화장실부터 파이프까지 온통 다 투명인 곳이었다. 나는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집은 각 방에 화장실과 세면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고, 도어록으로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게 만들었다. 물론 원하면 내려와서 함께 즐길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DJ를 불러 파티를 한다. 지난 추석에는 나물 무치고 송편 만들어 놓고 다 함께 한국영화를 보면서 놀기도 했다.”

 

■ ‘백패커스 인사이드’ 유민용(29)
“또 찾아온 외국인들 보면 낯설면서도 보람 느껴요”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그만두고 1년 정도 여행을 다녔다. 윗사람들을 봐도 미래의 내가 저런 모습이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행할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아프리카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한 캠핑 여행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한국에 돌아와 캠핑투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한국은 아직 그런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첫걸음으로 지난해 6월 친누나랑 아는 형이랑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공사까지 직접 해서 애착이 많은 곳이다. 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다. 서로 여행 얘기 하다보면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옆에 배낭을 가리키며) 그래서 언제든 떠날 준비로 짐을 풀지 않고 있다. 항상 손님의 입장에서 여행만 다녔는데, 가끔 나와의 인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이들을 보면 낯설면서 보람도 느낀다. 지난해에는 덴마크에 입양된 한국인이 우리집에 묵었다. 나중에 또 다른 입양인인 친구를 데리고 왔다. 친부모를 찾으러 온 거였다.

다행히 잘 만나서 여기 그 친부모님까지 오셔서 내가 통역을 해줬던 일도 있다. 외국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투어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 그렇게까진 못한다. 짜여진 건 아니고, 내가 스키장 갈 때 원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데리고 가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그냥 용돈 벌이 정도로 생각하고 쉽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안하는 게 낫다고 말하고 싶다. 이게 얼핏 보면 낭만적이고 쉬워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나도 아직 얼마 안됐다. 여기서 얻는 잔재미들을 잃고 싶지 않다. 길게 보고 꾸준히 하려고 한다.”

 

■ ‘리앤노 게스트하우스’ 이승용(39)
“낭만적인 직업 같지만 최소 생계 유지 쉽잖아”

“아내와 함께 2006년 문을 열었다. 나는 개인 사업을 했고, 아내는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4년쯤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라오스에서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돌아오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하하. 한국에 돌아왔는데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 특히 네팔, 캄보디아, 버마 등 아시아국들을 다니면서 천천히 사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느리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이걸 시작했다. 2006년만 해도 게스트하우스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인생 망칠 일 있느냐며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 4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그때는 중국, 일본 가는 친구들이 많았고 한국은 그 중간에 끼인 ‘틈새시장’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만을 목적으로 오는 친구들이 꽤 생겼다. 지난해 둘째 낳으면서 2호점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 하나에 애 한 명 하는 식이다. 하하하. 지난해부터 게스트하우스 붐이 일었다.

자유롭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느린 삶도 좋지만 최소한 생계는 유지해야 하지 않겠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게 내집이라서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지만, 월세로 하는 분들이 태반이다. 홍대 주변 월세가 장난이 아니다. 방 몇 개 장사해서 낭패보기 쉽다. 1년이 채 안돼 문 닫은 곳이 꽤 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나는 아침 시간을 제일 중요시한다. 매니저가 아침 식사 준비해서 다 같이 모여서 서로 소개하고 스케줄도 잡아 주고, 여건이 되면 다른 팀에 합류시켜 주기도 한다. 파키스탄의 ‘훈자’라는 마을을 다녀왔는데, 그곳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스트하우스는 몇 곳이 있지만 그 마을에 식당은 단 하나다. 밤만 되면 모든 여행자들이 그 식당에 모이는 거다. 정전이 흔하니까 거기서 촛불 켜고 밥먹고 어울리는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퍼스널 터치(개인적 교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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