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비구니 학승들의 하루, 장엄한 ‘아침 예불’로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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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12 15: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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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의 운문사는 말갛다. 천년 세월이 녹아든 비로전 마루도, 운문사의 뿌리인 작압전도, 500여살의 ‘처진 소나무’(반송)도 청정하다. 당우들 사이의 꽃나무들도 유난스레 정갈하다. 무엇보다 한국 비구니승단을 이끌어 갈 운문승가대 학인 스님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다.

 
지난 5일 새벽 3시, 어둠 짙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호거산 운문사’에 목탁소리가 울린다. 운문사를 둘러싼 운문산(호거산)과 가지산·비슬산이 부스스 깨어나고, 전향각에서 잠든 객도 눈을 뜬다. 원광국사가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내리고, 일연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천년고찰의 하루가 시작됐다. 새하얗게 문창호지를 다시 바르는 운문사의 10월, 가을날 하루가 열렸다.

 

어느덧 대웅보전엔 아는 이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운문사 아침예불’이 봉행된다. 200여 비구니스님들이 하나로 입을 모은 예불은 어느 사찰에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장엄함이 있다.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성스럽고, 심신을 정화시키는 듯하다. 운문사는 이 아침 예불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할 생각이란다.운문사는 최대 비구니사찰이다. 신도회도 없는, 절집 자체가 교육도량으로 한국 비구니승단의 인재 산실이자 비구니 교육의 총본산이다. 1958년 문을 연 운문승가대학 출신 1700여명의 비구니스님들은 문화·포교·복지 등 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운문승가대는 국내 5개 비구니강원 중 학풍이 가장 엄하다. 출가해 행자생활을 한 예비승려인 사미니계 소지자들이 입학, 4년 동안 공동생활을 하며 졸업 때 비구니계를 받는다. 강의는 불교학개론·사미니율의(1학년) 등 기본 교육에서 시작해 능엄경·기신론·금강경·원각경·화엄경 등으로 이어진다. 경전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인 ‘내전’ 외에도 영어·컴퓨터·피아노·서예·요가·꽃꽂이 등 ‘외전’도 선택, 공부해야 한다. 승방 마다에 걸려있는 ‘立志發願’(입지발원·원대하고 확고한 뜻을 세움) ‘精進不退’(정진불퇴·끊임없는 노력) ‘流通敎海’(유통교해·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함)의 학훈은 그 학풍을 보여준다.

 

교육 내용의 충실함에 더해 강사들은 국내외 박사학위 소지자들로 그 수준이 불교계 안팎에서 이름이 높다. 서광스님(미국 서운사 주지)은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운문승가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학문과 노동을 함께 한다는 것. 학인들은 오전 3시 기상해 밤 9시 잠에 들 때까지 약 7시간의 공부 외에 매일 울력을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는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 청규를 철저히 지켜 농사일까지도 직접 하는 것이다. 은광 교무스님은 “사시사철 울력으로 ‘운문농과대학’이란 별칭도 있다”고 웃은 뒤 “남들 하는 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 정진하는 게 우리 학인스님들”이라고 말했다.

 
한국 비구니승단은 세계 불교에서도 독보적인 활동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스님의 약 절반(2009년말 현재 비구니 5602명·비구 5731명)이 여성이지만 종단내 비구니스님의 위상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양성평등 측면에서 천주교·개신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열린 종교란 평가이지만 아직 조계종 중앙종회(국회) 비구니 의석은 10석으로 제한된다. 비구니는 종정이 될 수 없으며, 주요 사찰인 교구본사 주지도 단 1명이 없다. 비구니스님들 또한 교학부문으로 몰려 선(禪) 수행 측면에선 부실한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운문사에 더 눈길이 쏠린다. 불법을 배우고 전하는, 불교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 학인 스님들이 그곳에 있으니까. 법정스님은 생전에 “세월의 자취를 간직한 ‘세분’이 계셔서 (운문사로) 발길을 이끈다”고 썼다. 400여살 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비로전 부처님’이다. 하지만 운문사엔 귀한 또 ‘한 분’이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진리를 찾아 운문사의 청풍요(1·2학년 숙소이자 교실)를 경전 읽는 소리로 가득 채우는 젊은 스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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