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가을·겨울 ‘서퍼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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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08 13: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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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기사문해수욕장은 여름에 한갓지다. 바로 곁의 하조대해수욕장과는 대조적이다. 누가 그랬다. “양양 기사문은 가을·겨울에 붐비더라”고. 실연한 청춘도, 도덕을 피해 숨은 커플도, 고독한 예술가도 아닌 바에야 쌀쌀한 해수욕장에 웬 사람인가 싶었다. 그곳엔, 서핑에 미친 청년들이 있었다. 기사문해수욕장에서 작은 서핑숍을 하고 있는 이형주씨(27)는 “서핑을 하려면 우리의 삶을 파도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대구 청년 이동형씨(27)는 서핑이 좋아 아예 양양에 눌러 앉았다.

 

그는 “사람들이 위험한 운동이라고들 한다. 왜냐하면, 인생을 놓게 된다”면서 웃었다. 이날 처음으로 서핑 강습을 받은 서울에서 온 이규림씨(30)는 “자꾸 내동댕이쳐지다가 파도와 싸우지 말자고 생각하자 파도가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마침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몇몇 서퍼들이 바다에 나가 있었다. 해경이 다가왔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됐어요.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나오라고 하세요.” 풍랑주의보는 서퍼들에게 비보가 아니다.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친다. 양양의 해안은 서핑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일단 파도가 깨끗하다. 먼 해안에서부터 일자로 고르게 밀려오다가 한쪽부터 차례로 예쁘게 깨진다. ‘파도가 깨끗하다’는 게 어떤 건지는 파도를 조금만 바라보고 있어도 안다. 불규칙하게 이쪽 저쪽에서 말려버리는 파도와 다르다.

 

깨끗한 파도는 바람의 영향이 크다. 양양은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분다. 그렇게 맞바람이 쳐야 파도가 깔끔하다. 동해는 해안 자체가 북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겨울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는 기류를 그대로 받을 수 있다. 또 근처에 섬들이 많지 않아 먼 곳에서 오는 파도가 갈라지지도 않는다. 양양이 갖지 못한 건 ‘날씨’뿐이다.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 포인트들이 이런 여건을 갖고 있어요. 단지 이곳은 그렇게 파도가 좋을 때 날씨가 추운 것뿐이죠. 요즘은 방한 슈트가 나오고 해서 겨울 서핑도 가능한 거예요.”


이형주씨 얘기다. 서핑 하면 누구나 작렬하는 태양과 그을린 근육질의 몸을 상상한다. 이들은 슈트를 입고 찬 바람 부는 계절에 파도 위에 선다. 눈을 맞으면서 하는 서핑은 겨울 서핑의 백미다. 지난해부터 ‘한국에서도 서핑 할 만하다더라’ ‘겨울 서핑이 괜찮다더라’ 소문이 나면서 이곳에 모이는 서퍼들이 늘고 있다. 부산, 제주와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포인트이지만 가을·겨울이 시즌이라는 것이 차이다. 양양을 서핑 포인트로 ‘발견’한 사람은 이형주씨다. 고향이 양양이라는 이씨는 필리핀에서 골프 강사를 했다. 골프로 생활을 하면서도 서핑에 푹 빠져있던 그는 2007년 추석 때 한국에 나와 우연히 서핑을 하러 이곳 해안에 들렀다. 11월까지 머무르면서 날이 추워질수록 좋은 파도가 치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서핑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걸 재미없게 만들었어요. 그 전에 골프 강사로 돈도 잘 벌었어요. 그러다 2007년에 뇌종양 선고를 받고, 돈이란 게 중요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항상 진심으로 웃을 수 없다고 느껴질까, 마음이 불편했고요. 삶이 몇 달밖에 안 남았다면 하고 싶은 게 뭘까 자문해봤어요. 단번에 머릿속에 떠오른 게 서핑이었습니다.”수술을 받고부터 골프를 접고 연구를 시작했다. 2008년 5월 ‘서프엑스’라는 서핑 동호회 첫 모임을 갖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서핑숍도 열게 됐다. 서핑숍으로 생활은 어렵다. 지금은 지난 7월 결혼한 아내와 함께 근처 고등학교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

 

그의 서핑 예찬은 끝이 없다.“일단 서핑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인공적인 경기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핑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바다가, 자연이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언제 (좋은) 파도가 ‘올’ 지 모르는 것, 이게 사람을 답답하고 안달나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 서핑이라는 스포츠, 아니 서핑이라는 ‘존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 같아요.” 필리핀에서 이형주씨와 함께 서핑을 하던 이동형씨는 지난 4월 이곳에 왔다. 아예 기사문해수욕장 근처에 월세방을 얻어 살고 있다. “원래 피부가 하얗다”는 말이 무색하게 얼굴이 새까맣다. 서핑으로 만났다는 여자친구 역시 시골처녀처럼 그을었다. 이들은 함께 나란히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 위에 섰다. 10월, 작은 어촌 마을에서 보리라고 상상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파도 타는 재미’ 배워볼까

서핑은 어렵다. 보드를 이용하는 스포츠, 물에서 하는 스포츠의 끝 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게 서퍼들의 전언이다. 이날 처음으로 서핑을 배운 이규림씨(30)는 다이버 자격증이 있을 정도로 물과 친하다. 그런데도 “파도가 무섭다”고 했다. 동시에 “파도와 친해져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게 미묘한 재미를 준다”고 말했다. 강습이 시작되자 강사는 각종 주의사항부터 알렸다.


“항상 멀리 건물을 보고 내 위치를 체크해야 해요. 조류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갈 수 있습니다.” “보드는 파도가 오는 쪽에 두면 위험해요. 항상 옆이나 뒤에 둬야 합니다.” “떨어질 때는 엉덩이부터 빠진다고 생각하고 빠져야 합니다. 물에서 나올 때는 보드에 부딪힐 수 있으니까 항상 머리를 감싸고 나와야 하고요.”일단 보드 위에 엎드려서 패들링(노젓기) 하는 것부터. 파도가 있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 손으로 힘차게 물을 저어야 한다.

 
파도가 흐르는 방향으로 보드의 방향을 바꾼 후 말타는 것처럼 그 위에 올라타서 탈 만한 파도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파도가 오면, 패들링을 해서 물결을 타고, 파도가 나를 밀어주는 느낌이 날 때 재빨리 중심을 잡아 보드 위에 서는 거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이씨는 “뭍에서도 엎드렸다가 재빨리 일어서는 게 안됐는데 바다에서는 당연히 더 어려웠다”고 했다. 1시간쯤 지났을 때 이 모든 것이 조금 익숙해질 듯했다면서.


이씨는 이날 1시간 동안 딱 한 번, 보드 위에 잠깐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그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계속해서 내쳐지고 뒹굴리면서 바다로부터 거부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쭈그리고라도 제대로 한번 파도를 까 도도한 남자가 한번 나에게 마음을 보여준 듯했어요. 다이빙은 다른 세상에 내가 초대받은 느낌이라면 이건 하늘과 물의 접점에서 동등하게 자연과 교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계속 하러 올 것 같아요.”


길잡이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탄다. 대관령터널을 지나 속초·주문진 방향으로 달리다 현남IC로 진출한다. 양양 방향으로 10㎞ 정도 달리다 보면 38선휴게소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서 우회전하면 기사문항이다.

*대중교통의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하조대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 하조대에 내려서 온 길과 반대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기사문해수욕장이 나온다. 혹은 강남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양양행 고속버스를 타고 양양읍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양양읍내로 조금만 걸어가면 양양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온다. 여기서 하조대행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하조대에서 하차한 후 같은 방식으로 걸어 내려오면 된다.
*기사문해수욕장에 위치한 38마린리조트(033-671-0380)에서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동호인들과 서퍼들이 많이 찾는다. 서핑 강습 1시간당 2만원. 서핑보드와 슈트 대여는 하루에 각 3만원, 5000원.
*2005년 불탔던 낙산사(033-672-2447)가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낙산사에서 낙산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으름을 팔고 있다. 표면을 말려서 얼핏 보면 버섯이나 키위처럼 보이는데 껍질 안에 커다란 애벌레처럼 생긴 과육이 들어 있다. 먹으면 솜사탕처럼 녹는다. 바나나 맛이다.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씨앗들은 꿀꺽 삼키면 된다. 1개에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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