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나이지리아전 ‘버럭’ 사실은 의도한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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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08 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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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장은 전쟁에서 두 번 울었다. 오직 승리를 위해 자신들을 기꺼이 희생한 자식 같은 ‘병사’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한국축구사에 길이 남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선수들을 친딸처럼 아끼는 쉰 살 감독,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른 21명 어린 딸들이 눈물과 인내로 만들어낸 성과다.

 
최덕주 감독은 대나무처럼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가진 지도자다. 최 감독이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입구에 심어진 대나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만난 최덕주 감독은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최 감독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경기는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이다. “경기 전 10분만 무실점으로 버티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고 그토록 강조했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한국은 전반 초반 3분 동안 2골을 내줬다. 결국 최 감독은 하프타임에 화를 버럭 냈다. 라커룸에서 아이스박스를 냅다 걷어찬 것이다. 그러고는 “뛰기 싫은 사람 나와. 이렇게 하려면 지는 게 낫다”고 소리쳤다. 마냥 웃으며 좋게만 보였던 최 감독의 불호령. 선수들은 다시 각오를 다졌고, 결국 연장전 끝에 6-5로 역전승했다. 최 감독은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했지만 선수들의 투혼이 가져온 승리에 울고 말았다.

 

최 감독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또 울었다. 수비수 신담영(동부고)은 후반 무릎을 다쳐 절룩이면서 90분을 뛰었다. 연장전을 앞둔 짧은 휴식 시간, 최 감독은 “져도 좋다. 네가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쉬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담영은 “제가 못 뛰면 10명이 뛰어야 해요. 친구들을 고생시킬 수 없어요”라고 의지를 보였다. 최 감독은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샀고 선수들은 오직 ‘우리’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모습으로 보답했다.

 

최 감독은 대나무 같은 지도자다. 어린 선수들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입을 열기보다는 귀를 세웠고 야단을 치기에 앞서 미소로 말했다. 작은 것에 큰 감동을 받고 정과 사랑에 배고파하는 소녀들의 마음을 산 비결이었다. “모든 선수가 오직 승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뛸 때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 처음에는 여민지(함안대산고)를 시기하는 선수도 많았다. 자신의 출전만 고집하는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 감독 아래서 이기주의는 용납될 수 없었다. 마음을 바꾼 선수는 남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는 떠났다. 최 감독은 “기술은 뛰어난데 인성이 부족하거나 너무 이기적이라서 내보낸 선수들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선수를 선발할 때 정신력과 희생정신을 최우선 덕목으로 꼽았다. 최 감독은 이를 “최고 부품(선수)이 아니라고 해도 윤활유(팀워크)만 좋으면 엔진은 잘 돌아갈 수 있다”고 표현했다. 팀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된 선수들에게 감독은 크게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사생활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저렇게 풀어줘서는 좋은 성적이 안 난다”는 말도 들려왔지만 최 감독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자유를 얻은 선수들은 책임을 다했다. 시켜서 하는 훈련과 자발적으로 하는 훈련은 천양지차다. 감독은 자기 뜻을 전달하기 앞서 선수들의 뜻을 물었고 선수들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다. 경기장 밖에서 리모컨으로 선수를 조종할 필요가 없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했다. 일본전 3-3 동점골이 된 이소담(현대정과고)의 중거리 슈팅,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장슬기(충남인터넷고)의 대포알 슈팅 모두 그렇게 나왔다. “승패는 내가 책임진다. 너희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라”는 감독의 말에 소녀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진 결과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겸손을, 지도자들에게 자율을 요구했다. 최 감독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면서 “월드컵 우승에 안주해 초심을 잃고 우쭐거리면 영광은 과거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15년 넘게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한 자신이 대표팀을 이끄는 데 대해 불만을 품었던 국내 지도자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최 감독은 “아직도 선수들을 때리고 강압적으로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면서 “이제는 선수들을 풀어줘야만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성적도 잘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최덕주 감독

△생년월일=1960년 1월3일
△출신=경남 통영 △학력=충렬초-동래중-동래고-중앙대
△선수 경력=한일은행-포항제철-프라이부르크(독일·86년)-마쓰시타전기(일본·87~90년)
△K리그 성적=27경기 7골 2어시스트
△지도자 경력=일본 고교·대학·실업 등(90~2002년)
△해외연수=브라질 팔메이라스(2007년)
△대표팀 지도자 경력=12~15세 여자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2007년~현재), 16세 이하 여자대표팀(2009년~현재)
△주요 성적=2009년 16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대회 우승,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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