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소설 ‘복어’ 낸 조경란 “죽음의 뿌리에 대해 처절하게 질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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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10.05 12: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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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처절하고 깊게 죽음과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등단한 지 15년이 될 무렵 이제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되었는지, 죽음이 무엇인지, 예술가가 자신을 딛고 일어서 자신을 믿는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지독하게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소설가 조경란(40·사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로부터 멀리 떠나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출발점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이 확보되며 그 거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불혹을 넘긴 나이와 등단 후 15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조경란이 12번째 책으로 장편소설 <복어>(문학동네)를 펴냈다. 죽음과 삶, 예술과 삶, 사랑과 치유, 그러니까 삶과 관련된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조경란 특유의 감각적 언어로 다채롭게 풀어낸다.

 

총 67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조각가인 한 여자와 건축가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여자와 남자는 가족의 죽음을 트라우마처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그러나 여자는 죽음을, 남자는 삶을 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등을 붙이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샴 쌍둥이와 같다. 여자의 할머니는 온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복어국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로 자살과 죽음은 집안의 내력이 돼버렸다. 여자 역시 죽음 충동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닌다. 자신의 전시회가 성공으로 끝나고, 일본 도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머물게 된 그녀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려던 여자는 할머니의 환영을 보고 자살을 유보한다. 그녀는 할머니를, 복어를 ‘알기’ 위해 어시장을 찾아간다. 남자의 형은 5층에서 몸을 던졌다.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와 그를 극진히 간호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남자는 우연히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얼굴에서 형의 모습을 발견하고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여자를 삶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한다.

 

여자는 복어에 관한 책을 읽고 어시장에서 복어에 대해 배운다. 그런 복어는 예술가인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면서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오브제와 같다. 죽으려고 하는 여자와 살리려고 하는 남자. 그 사이에 치명적인 독을 가진 복어라는 오브제가 나오고, 복어를 매개로 두 사람이 만나고, 또 여자를 살게 한다. 필사적으로 복어를 배우는 행위는 죽음을, 예술을,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꼭 넘어가야 할 단계와도 같다. 이런 여자의 모습은 작가 조씨가 필사적으로 <복어>를 쓰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조씨는 “글쓰기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라며 “글쓰기가 나를 견디게 하고 나를 치유한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죽음 충동에 시달렸던 톨스토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등 죽음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언급과 그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가득하다.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를 새롭게 해 다시 나아가기 위함이다. 조경란은 <복어>가 스스로에게 ‘터닝 포인트’와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1인칭 시점만 고집하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의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전을 했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한다면 이 소설을 쓸 자격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분리된 두 사람이 내는 하나의 목소리처럼 소설을 쓰고자 했고, 어려운 일을 하나 해냈다는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글쓰기가 강물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흐르고 변화하면서 앞으로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죽음과 삶을 동시에 품고 있는 <복어>의 맛은 어떤 것일까. 소설 속 한 구절이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되어줄 것 같다.

 

“너는 내가 복어로 뭘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 가까이 갔어. 그리고 그것을 만져보지 않고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어. 그 이전에는 결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 왜냐하면 나를 압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 밤에. 복어의 뼈가 말했어. 온몸으로 밀고 가야만 하는 삶이 있다고. 복어의 눈이 말했어. 소중한 것이 사라지기 전에 똑바로 봐야 할 게 있다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어.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기다리는 거야.”(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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