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한국 발레단 기량 세계적 수준” - “러 발레 시스템 우리도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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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9.28 14: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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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동안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해 온 유리 그리고로비치(83)가 16일 오전 서울에 왔다.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최초 합동공연이자 국립발레단이 전막으로 처음 올리는 <라이몬다> 공연(오는 25~30일 서울 오페라극장)을 위해서다. 볼쇼이발레단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리고로비치와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51)이 한·러 발레 교류와 국립발레학교 설립 등 한국 발레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최태지 단장(이하 최)=유리 선생님이 안무하신 <라이몬다>를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공연하게 돼 기쁩니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공식적인 교류는 1991년 6월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볼쇼이발레단 버전의 <돈키호테>로 시작됐습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이하 유리)=볼쇼이발레단의 첫 내한공연은 그 이전인 88올림픽 때 이뤄졌지요.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발레의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이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국립발레단이 멋진 공연을 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최=국립발레단에선 유리 선생님의 작품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대에 올렸는데, 일본 발레단에겐 선생님의 작품저작권을 주지 않으셨더군요. 이번 공연은 2008년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볼쇼이극장의 아나톨리 익사노프 극장장이 발레단의 수준을 높이 평가해 성사됐지요.

유리=한·러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해 온 최 단장과의 인연도 11년이 됐습니다. 외국에서 무용 콩쿠르 심사도 함께했고요. 그동안 국립발레단원들의 기량은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최 단장의 발레단 운영 시스템을 배워야겠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발레단 시스템은 250~300년간 축적되어 매우 체계적입니다. 발레학교 졸업 후 발레단 무용수로 활동하고 다시 발레학교의 교사 또는 발레단의 트레이너 등으로 재배치되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한국도 이 시스템을 수용해야 합니다.

최=양국 단원들의 기량은 비슷하지만 볼쇼이발레단의 경우 발레학교 시스템을 통해 수준 높은 무용수들을 배출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 발레학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개인의 기량 향상에만 집중됩니다. 국립발레단은 자문회의를 중심으로 국립발레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발레학교 설립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유리=러시아뿐만 아니라 외국의 유명 발레단들은 부속 발레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국립발레단 전용극장과 발레학교가 없습니다. 발레학교는 지금의 러시아 발레단을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이끈 원동력입니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죠. 저는 최 단장님께 11년 전부터 한국의 발레학교 설립을 강조해왔습니다.

최=맞습니다. 중국도 러시아의 도움으로 발레학교가 세워졌고 그 결과는 세계적인 공연으로 입증되고 있지요.

유리=국립발레학교가 개설되면 모스크바 발레학교 안무 학부장인 제가 ‘70년’ 경력의 발레 경험으로 무조건 돕겠습니다.

최=우리 발레단을 가족처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리 선생님께서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실 때 어느 식당의 김치를 너무 좋아하셔서 한국을 방문하실 때마다 그 식당의 김치를 공수하며 가족처럼 흐뭇했습니다. 2008년 2월에 국립발레단원들에게 <백조의 호수>를 지도하셨는데, 도중에 사모님(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의 사망소식을 듣고 급히 러시아로 돌아가시던 때가 어제 같습니다.

유리=집사람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에 국립발레단과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발레단과의 첫 작업은 2000년 12월 <호두까기 인형>으로 시작됐고 최 단장의 제안으로 10개월 동안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등 3편의 대작을 잇달아 공연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제 안무작 가운데 어떤 작품이 국립발레단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최=<백조의 호수>입니다. 연출의 특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기존 4막 작품의 지루함을 벗어나 빠른 전개와 스펙터클한 춤의 언어로 2막을 구성하셨어요. 앞으로 유리 선생님의 <이반 대제> <사랑의 전설> 등을 공연하고 싶습니다.

유리=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들에겐 다른 외국발레단에서 발견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무대 위에서 느껴집니다. 최 단장은 단원들과의 ‘같은 고민’ ‘같은 생각’을 통해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겁니다.

최=지속적인 교류로 국립발레단의 열정을 지켜봐주십시오.

유리=저는 더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비밀인데… 최 감독이 제작한 <왕자호동>을 비롯 한국 정서의 작품을 볼쇼이극장에 올리고 싶습니다.

 

▲ 유리 그리고로비치
192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64~95년 볼쇼이극장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국민안무가’. 57년 첫 작품 <석화>로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란 극찬을 받은 후 수많은 작품을 안무하며 러시아 발레계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해왔다. 37세부터 볼쇼이발레단의 세계적인 명성을 이루며 ‘살아 있는 신화’ ‘20세기 발레영웅’으로 불린다. 요즘은 볼쇼이발레단 상임안무가로 활동 중.

▲ 최태지 단장
1959년 일본 교토 출생. 프랑스와 미국에서 발레 유학했고, 87년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로 특채됐다. 국립발레단장으로 96~2001년 활동하며 ‘해설이 있는 발레’ 시리즈와 해외유명 안무가 초청공연을 통해 발레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일구었다. 2004~2007년 정동극장장을 거쳐 2008년부터 다시 국립발레단장겸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 한국 발레의 새 역사를 위해 국립발레단 산하 국립발레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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