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가을이 익어가는 ‘포도 마을’… 충북 영동포도 첫 씨 뿌린 주곡마을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9.17 10:32:00
  • 조회: 12182

 

포도밭에선 겸손해진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교회, 포도원과 같은 낱말이 떠올라서만은 아니다. 나지막한 포도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려면, 누구든 몸을 수그려야 한다. 싱그럽고 달큰한 경건함.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포도덩굴 아래 세상과 그 바깥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안다.

 

“내 같이 키 작은 사람이 여기선 편하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 주곡마을, 홀로 몸을 곧게 편 채 가림봉지 안에 든 포도송이를 살펴보던 키 작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렇게 들여다보고 포도가 검푸르게 잘 익었으면 따고, 아니면 조금 더 익게 둔단다. 나머지 농부들은 목을 꺾은 자세로 포도 수확에 한창이었다.

 

보통의 키조차 포도밭 안에선 과잉이다. 중세 수도사들은 포도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데, 그게 다름 아닌 포도밭이었다는 게 우연은 아닌 듯했다. 순간 농부들의 모습에 중세 수도사들이 조금 겹쳐보였다. 주곡마을은 전국에서 포도밭 면적이 가장 넓다는 영동 내에서도 제일 먼저 포도농사를 시작한 곳이다.

 

대개 하우스 포도가 아닌 노지 포도다. 비닐 가림막이 없어 같은 포도밭이라도 경관이 훨씬 수려하다. 산 사이로 굽이굽이 휘감은 길 양쪽으로 푸른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59년에는 군내에서 제일 먼저 포도를 도입하여 마을 소득원의 주작목이 되어 영동명산 포도의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군내 일원에 보급되었다.”

 

50여년 전이다. 마을 이장 김홍재씨(62)는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였는데, 그때 포도를 처음 먹어본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 전에는 대부분 벼농사를 짓는 논이었단다. 그때만 해도 포도농사를 하는 집은 마을에 서너 집뿐이었다. 지금은 마을 140가구의 90% 이상이 포도농사를 짓는다. 특히 80년대 영동 일대에 ‘포도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포도재배 붐이 일었다. 이때 많은 이가 포도농사에 뛰어들었다. 주곡마을만 해도 포도밭이 49만5000㎡가량 된다. 김씨는 “올해는 장마철엔 가물고, 포도 따고부터는 비가 많이 와서 손해가 많다”고 했다. 마침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수확에 나선 농부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포도는 물을 많이 머금으면 갈라지게 되고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면서….

 

주곡마을 말고도 영동엔 포도밭이 지천이다. 주곡마을로 가는 길에 용화면에서 황간면으로 넘어오는 49번 지방도를 지났다. 특히 용화면부터 상촌삼거리까지는 인가도, 오가는 차도 드문 산속 길이다. 사면으로 거대한 산줄기가 겹겹이 병풍 같고 그 아래로 물이 굽이치는데, 주변이 죄다 포도밭이다. 주곡리에서 드넓은 노지 포도밭을 볼 수 있다면, 이 길에선 산 아래 오롯이 들어선 아늑한 포도밭을 볼 수 있다. 2006년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를 촬영했던 황간면 서송원리 명륜동 역시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다. 잘 모르는 이가 봐도 타고난 포도 재배지다.

 

영동은 어딜 가나 산이다. 많은 이에게 익숙지 않지만 영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지 지역 가운데 하나다. 민주지산, 덕유산, 추풍령, 마니산 등에 고즈넉이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낮밤 일교차가 크고, 강수량은 적다. 토질 또한 배수가 잘돼 포도 당도가 높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프로방스, 캘리포니아와 같은 세계적 포도산지와 유사한 자연환경을 갖춘 셈이다. 포도뿐 아니라 각종 과일 재배에 좋은 기후다. 길마다 포도·복숭아를 싣고 나르는 트럭이 가득했고, 읍내엔 청과상이 눈에 띄게 많았다.

 

포도는 8월에서 9월 초인 지금이 수확기다. 포도밭에서 만난 농부들은 저마다 밭에서 방금 딴 포도를 잔뜩 챙겨줬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 아직 벌건 게 덜 익어서…” “전날 비가 와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원래는 더 달고 맛있다는 뜻일 텐데,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양강면에서 만난, 올해 영동군에서 뽑은 ‘포도왕’마저 그런 소릴 했다. 자식새끼 세상에 내보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길잡이

용화에서 황간으로 넘어가는 도마령 길, 구절양장 산길이 춤을 춘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영동IC까지 간다. 영동읍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타고 약 19㎞쯤 내려가다 4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해 달리다 보면 ‘주곡 꿀 포도’라는 간판이 나온다. 그곳이 주곡리. 영동 읍내에서 15분가량 걸린다.

*중부고속도로를 탈 경우 무주IC에서 빠진다. 용화~황간을 잇는 49번 국도가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특히 용화면에서 상촌삼거리까지의 길은 깊은 산골 마을이다. 800m 이상의 험준한 산들이 주변을 둘러치고 있어 산세가 수려하다. 도마령 고개를 향해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오르면 중간에 전망 좋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위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마령 풍광을 굽어볼 수 있는 정자가 있다. 무주IC에서 용화 방면으로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49번 국도로 접어들어 황간까지 간다. 황간에서 영동읍 쪽으로 나 있는 4번 국도 쪽으로 좌회전해 달리면 주곡리가 나온다.

*영동 일대 관광을 겸할 수 있다.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물한계곡, 천태산 영국사가 자동차로 20~40분 거리다. 민주지산 자연휴양림(043-740-3437)은 소백산맥 줄기에 위치. 데크가 있는 캠핑장으로 유명하다. 데크들이 모두 숲 속에 자리잡고 있어 나무 그늘을 즐기기 좋다. 야영데크 사용비와 주차료, 입장료 포함해 성인 2명 기준으로 1박 1만원. 물한계곡(043-740-3205)은 삼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있다. 이 길에는 옥소폭포·의용골폭포·음주암폭포 등 폭포와 호수보다 물이 얕은 소(沼) 등이 많아 아름답다. 천태산 영국사(043-743-8843)는 신라 문무왕 8년에 창건한 천년 고찰. 이곳에선 천연기념물인 1300년 된 은행나무를 꼭 봐야 한다. 가을철이 되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노란 빛을 절과 주변 산에 뿌려 절경을 이룬다.

*영동읍내 영동시장과 영동경찰서 근처에 식당이 많다. 영동은 다슬기로 국을 끓이는 ‘올갱이국’이 유명하다. 뒷골식당(043-744-0505)은 올갱이국 전문점이다. 국물 맛이 개운하다. 올갱이 무침과 전골도 한다. 국밥 보통이 6000원.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