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깊은 우애로 만든 이심전심의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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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8.31 13: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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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이상이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에서 찰떡같은 궁합을 이뤄내는 것을 ‘앙상블’이라고 한다. 한데 이것은 양보의 미덕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치고 나갈 때와 받쳐줘야 할 때를 적확하게 꿰뚫어야 최상의 앙상블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음이 통(通)하는 것.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나다 해도 피차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열번 스무번의 리허설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미묘한 음악적 조화를 ‘이심전심의 앙상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3)과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20)가 처음으로 앙상블을 펼친다. 날렵한 고음과 육중한 저음을 대변하는 두 현악기의 ‘이중창’도 특이하거니와, 각자 솔리스트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김수연과 성민제가 어떻게 ‘한 팀’이 됐는지도 궁금했다.

 

둘은 20대 초반 연주자들 가운데 각자의 악기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스타들. 지난 17일 정오, 서울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가뿐하게 나타나 바나나주스와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성민제는 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키가 2m에 가까운 더블베이스를 차량에 싣고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다. 10분쯤 늦게 허겁지겁 나타난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세살 위의 김수연은 ‘동생’이 땀을 식힐 틈을 잠시 줬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연주자의 우애는 뜻밖에도 깊었다.

 

“유럽에서는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협연이 별로 낯설지 않아요. 특히 현대음악 쪽으로 올수록 두 악기의 만남이 잦아요. 제가 뮌스터음대 다닐 때 바이올린 선생님이 더블베이스와 협연을 자주 하셨거든요. 그때 제가 겨우 아홉살 때였잖아요. 그런데도 두 악기가 같이 연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생긴 모습도 그렇고 음역도 확연히 다른, 양극단의 악기잖아요.”

김수연은 말 끝에 “더블베이스는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뛰어난 연주자가 아니면 솔리스트로 나설 엄두를 내기 힘든 악기”라고 했다. 옆자리의 성민제를 슬쩍 바라보면서 “(한국 출신으로 첫 번째 솔리스트의 길을 걷는) 민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은 연주자”라고도 했다. “앞으로도 잘하는지 누나가 지켜볼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깔깔 웃기도 했다. 둘의 입에서 “누나”와 “민제”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맞아요. 현대음악으로 오면 더블베이스가 반주 악기에서 솔로 악기로 위상이 높아지죠. 윤이상 선생님도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앙상블을 위한 곡을 썼어요. 물론 온몸을 다 쓰는 악기여서 다루기 힘든 건 분명해요. 하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음역이 8옥타브나 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커다란 더블베이스와 연주자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상당히 볼 만하죠. 바이올린에 비한다면, 남자의 굵은 목소리라고 할 수 있죠.”

 

‘남자의 목소리’라는 대목에서 김수연은 또 한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뮌스터에서 궁핍한 유학생의 딸로 태어난 김수연은 아홉살에 뮌스터음대 예비학생으로 입학해 21세에 졸업했다. 학비는 한 푼도 들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공교육 시스템이 발굴해 키워낸 연주자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함부르크 음악장학재단은 1750년산 ‘카밀리우스 카밀라’ 바이올린을 “서른살까지 사용하라”며 대여해줬다.

 

지금도 김수연은 그 애기(愛器)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만약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는 ‘김수연’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뮌스터음대를 마친 김수연은 뮌헨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으로 진학했다. 국내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성민제도 지난해 여름, 그 학교의 같은 과정으로 유학을 떠나왔다. 그래서 둘은 뮌헨음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올해 초 발매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반 ‘Ich Liebe Dich’에 반주자로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둘의 우애는 단순한 선후배를 뛰어넘어 ‘의남매’ 수준으로까지 느껴졌다. 성민제는 “누나한테 배고프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타국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의 호소일지도 모른다. 김수연은 “민제를 집으로 불러 된장찌개를 끓여준다”고 했다. “얘가 두부를 굉장히 좋아해서 꼭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원한다”며 타박을 주기도 했다. 성민제가 “두 번밖에 안 해줬잖아”라고 투덜대자 “넌 왜 설거지를 제대로 안하냐”며 다시 한번 타박을 안겼다.

 

성민제는 최근 ‘크라이슬러 인 스타일’이라는 제목의 새 음반을 녹음했다. 오는 10월에는 유럽의 5인조 더블베이스 앙상블인 ‘바시오네 아모로사’의 일원으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김수연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설립한 ‘크론뵈크 아카데미’의 엄격한 오디션을 최근 통과했다. 그는 “앞으로 1~2년 그곳에서 더 공부할 것”이라며 “기돈 크레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같은 명장들의 마스터클래스뿐 아니라, 안드라스 시프의 피아노 수업도 들을 것”이라고 했다. 한층 다행스러운 것은 뮌헨음대 시절의 은사였던 안나 추마첸코가 크론뵈크 아카데미로 적을 옮겼다는 것. 김수연은 추마첸코의 추천을 받아 거장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오디션을 앞둔 상태이기도 하다.

 

‘랑데뷰’라는 제목의 이번 콘서트에는 한국계 미국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조이 로가 함께 참여해 솔로와 듀오, 트리오 편성을 오간다. 김수연과 성민제가 듀오로 협연할 곡은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푸냐니 스타일의 프렐류드와 알레그로’. 한층 더 기대되는 레퍼토리는 마지막에 연주할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4계’를 트리오로 편성한 곡이다. 그밖에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파르티타 2번’(김수연),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과 ‘마르티니 스타일의 기도’(성민제, 엘리자베스 로) 등도 연주한다. 오는 9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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