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트럭 몰며 짬짬이 공부해 ‘퀴즈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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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7.27 12: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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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사는 임성모씨(57)는 지난 1년간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면 집의 텔레비전 앞에 섰다. KBS <퀴즈 대한민국>에 채널을 맞춰놓고 화면 속 출연자들과 함께 퀴즈를 풀었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실제 방송사 스튜디오에 서 있는 것처럼 진땀 흘리며 긴장했다. 대망의 마지막 문제에 도달해 정답을 맞히면 혼자서 불끈 주먹을 쥐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지난 4일 방송된 <퀴즈 대한민국>에서 그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퀴즈영웅’으로 탄생했다. 중졸 학력의 트럭운전사라는 이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한두 해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트럭 운전이 운좋게 일찍 끝난 지난 7일 그를 방학동 집에서 만났다.


트럭운전기사 임성모씨는 지난 5년간 덥고 추운 낡은 트럭 안에서도 1~2분의 자투리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해 ‘퀴즈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6~7년 전에 우연히 <퀴즈 대한민국>을 봤어요. 나와 학력이 같은 열쇠 수리공이 퀴즈영웅이 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한동안은 TV만 봤지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공부 시작은 한 5년 전쯤인 것 같아요.”

- 처음에 막막하지는 않았나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날, 40여년 태우던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내 약점을 따져봤죠. 새벽 5~6시에 출근해 밤 10시쯤 들어오니까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적어요.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트럭에서 운전하다가 길이 막힐 때나, 거래처 납품하고 대기하는 시간 등 1분 1초를 아끼자고요.”

- 다른 출연자에 비해 뭐가 또 약점이던가요.

“본선 경쟁자들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로 나이가 젊어요.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부터 했어요.”

- 준비운동이라면.

“먼저 한자 3000자를 독파하고 사서삼경도 읽었어요. 전 세계 나라의 수도, 인구 수, 면적 등 기본사항을 익혔죠. 미국 대통령, 중국과 제정 러시아 황제 계보까지 외웠어요. 고등학교 지리부도 4종 교과서를 사서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은 뭐고, 높은 산은 뭐고 다 알아나갔습니다. 1년 6개월간 기초체력을 다진 거죠.”

33㎡(10평) 남짓한 그의 집. 화장실에는 세계지도와 신문에서 스크랩한 남미 정권 관련 표가 붙어 있었다. 종이박스로 만든 책상 머리맡에는 외워야 할 것들을 빼곡히 적은 큰 마분지가 매달려 있었다. 5년간 손때가 묻은 ‘표준국어 대사전’과 그간 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문제들을 직접 받아쓰기해 정리한 20여권의 노트도 눈에 들어왔다.

- 제일 어려운 문제는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엘리트 코스(정규교육과정)를 밟은 사람이 아니니까 퀴즈 초반에 나오는 문화 문제에 취약해요. 음악이나 연극·공연 같은 것들은 한번에 외운다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더 어렵더군요. 안 외워지는 것들은 수없이 반복해 외웠어요. 잠자기 전에도 한번씩 훑어보고요.”

-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집이 가난하고 시대적 상황도 불운했어요. 충남 부여가 고향인데 중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제대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18살 때 군대에 들어가 7년간 근무했죠. 그때는 군대도 지금 같지 않아 참 힘들 때였는데, 그래도 밥 세끼를 다 먹을 수 있어 좋았어요. 하사 월급으로 남동생 3명을 뒷바라지했죠. 동생들은 현재 초등학교 교감, 법무사이고 하나는 얼마 전 경찰관에서 퇴직했어요. 모두 잘됐죠.”

- 동생들이 잘 자리잡아 보람도 크셨겠지만 개인적인 만족감은 또 다르지 않나요.

“솔직히 살아오는 내내 참담했습니다. 막노동을 전전하면서 죽고 싶은 때도 많았어요. 고향 선후배들 중에 나와 엇비슷하게 공부한 이들 가운데 법조계에 가 있는 사람도 있어요. 시대적인 상황(그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고도 면접조차 볼 수 없었어요. 젊은 시절에는 자포자기해서 술과 노름에 빠져 막 살려고도 했죠. 결혼하고 마흔이 넘어 좀 정신 차렸습니다.”

- 퀴즈영웅이란 목표가 생긴 후에는 삶이 달라지던가요.

“사실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할 여유도 없이 공부만 했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는 2~3분도 그냥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3분은 별것 아니지만 5년 동안의 매일 3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잠을 더 줄이고 싶었지만 졸음운전을 하면 위험하니까 하루 5시간은 잤습니다. 주말엔 인터넷 다시보기로 모든 퀴즈 프로그램의 문제를 받아적었어요.”

- 중간에 관두고 싶은 때는 없었습니까.

“주변에서는 집념이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힘들었습니다. 트럭에서 공부할 때가 많았는데 워낙 낡은 차여서 여름에 에어컨도 없고 겨울엔 난방도 되지 않아요. 어느 때는 머리에서 쥐가 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유년시절의 고통, 청년시절의 쓰라림, 내 인생의 한을 풀고 승화시켜야 했습니다.”

- 당당히 퀴즈영웅이 되셨는데 중졸 학력으로 주목받는 것이 언짢지는 않은가요.

“(사회적 편견에) 내가 잔잔한 돌을 던진 셈인데 금세 잊혀지겠죠. 하지만 환갑이 다 돼가는 사람이 트럭 운전하면서 틈틈이 공부했으니까, 굳이 학벌을 따지지 않더라도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 상금은 어디에 쓸 생각입니까.

“아직 받지 못했어요. 상금이 4000만원인데 그중 2000만원은 이공계 장학금으로 나가게 돼 있고 나머지 2000만원에서 세금 22%를 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운전하는 5t 트럭이 17년 된 것이어서 너무 낡았어요. 새 트럭을 사고 싶은데 다른 퀴즈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 <1 대 100>의 우승 상금을 모두 합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은 두 퀴즈 프로그램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내 맘대로 다 되지는 않겠죠.”

- 퀴즈 프로그램은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데 ‘인생의 퀴즈’는 어떤가요.

“내 능력 밖의 일로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죠. 인간인 만큼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쉬지 않고 간다면 언젠가는 이뤄집니다.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한 걸 보세요. 마지막 순간 운명의 여신은 나의 손을 들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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