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소외된 사람들의 저항, ‘망명’을 발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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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6.29 11: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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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도언이 본 ‘라오라오가 좋아’의 구경미

우리사회 잉여인간의 비애 은근하고 집요하게 탐문
작가의 뛰어난 염력 돋보여

 

친구로서, 동료작가로서 내가 알고 있는 구경미는 일면 허랑해 보이지만 집요한 작가다. 그가 술에 기분 좋게 취하면 못 이기는 척 뽑아내는 '쑥대머리'는 건성으로 청한 사람을 무안하게 할 만큼, 단 한 대목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허랑해 보이면서도 집요하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그건 그가 맹목적인 신앙 같은 걸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그에게 신앙의 대상은 물론 문학이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에겐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염력 같은 게 있는 듯하다. 구경미는 그 염력으로 권력이나 관습이 조장해놓은,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적 질서에 균열을 낸다. 마치 TV쇼의 초능력자가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유리창에 금이 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껏 그가 내놓은 소설들은 이 균열의 기미에 확대경을 들이댄 결과물들이다. 첫 소설집 < 노는 인간 > 에서는 월 평균수입이 '88만원'도 채 안 돼 보이는 '백수'들의 실질적인 저항에조차 가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노를 풍자적으로 보여주었고, 첫 장편 < 미안해 벤자민 > 에서는 자본주의의 사회경제적 작동원리 속에서 갖은 수를 써가며 생존 혹은 연명해가는 삶을 연민과 비애를 적절히 분배하며 통찰했다. 작년에 출간된 소설집 < 게으름을 죽여라 > 는 < 노는 인간 > 의 '시즌 2' 격이었다. 이미 발표된 세 권의 소설은 공히 백수와 양아치 등 잉여된 존재들이 처한 현실적 무기력과 소통 부재의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노골적으로 집요하게 탐문해왔다.

 

그렇다면 이번 소설 < 라오라오가 좋아 > 에서 이런 집요함은 어떻게 유지되거나 변주되는가. 소설 속에는 마흔여섯살의 건설회사 소장이 등장한다. 그는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인데, 그렇게 된 데에는 임기응변 능력이 가히 "성수대교 붕괴 수준"인 것이 한몫 했다. 그는 라오스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알게 된 '아메이'라는 현지의 젊은 여자를 통해 소통과 존재증명을 모색한다. 소장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아메이와 동행하게 되고, 그녀를 아직 미혼인 처남에게 소개한다. 소장이 아메이에 대한 사적 감정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아메이는 결혼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소장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고 밤을 함께 보내는 '사고'를 친다. 그러곤 충동적인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이 소설의 서사적 얼개는 도피 과정에서 이들이 겪는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이들은 '처남'에게 쫓기면서도 일본의 온천마을에 여행을 가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지만 통장 잔액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부터는 승합차에서 먹고 자는 핍진에 내몰린다. 결국 아메이는 낭만도 신념도 없는 도피생활을 끝내고 남편에게 돌아간다. 물론 소장의 병적일 만큼 집요한 라오스 동행 제안을 물리치고 말이다. 젊은 연인과 헤어진 소장은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그토록 원했던 라오스행을 홀로 감행한다.

 

소설 속 소장은 현실적 욕망을 성공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구경미의 다른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은 '루저'로 분류된다. 그는 자신의 고국에서 자의반타의반 추방을 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고국에서 이방인의 의식을 갖는 그는 이 추방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추방을 '망명'의 컨텍스트로 읽는다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 이르러 루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항으로서 '망명'을 발명했고, 나는 그것을 이번 소설의 변주를 이끌어낸 키워드로 간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슨 이유로 '망명의 발명'을 하면서까지 루저의 삶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기질적으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끌려요. 그들의 삶을 통해 물질이나 속도 위주로 가고 있는 일상적 가치에 의문을 표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드는 범박한 의문 한 가지. 왜 소장은 하필 소통과 위안의 대상으로 외국의 젊은 여자를 택했을까. 그것도 이름조차 생소한 라오스의 여자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해서 한국 사회에 편입되는 여자들은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들이 많은데, 의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여자를 등장시켜 그녀들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싶었어요."  시종 남자와 여자가 모텔과 여관을 전전하지만 소설 속에는 그 흔한 섹스신 한 번 나오지 않는다. 불륜의 서사도 아니고 로맨스는 더더욱 아니다. 통속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뭔가가 좀 심심해 보인다. 작품 해설을 쓴 평론가 심진경은 구경미 소설의 이런 특질을 예리하게 가리키며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소설"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미지근한 소설이라고 말할 때의 미지근함이란 좋은 의미에서의 '은근함'을 가리킬 것이다. 은근함이란 타자로 하여금 물리게 하지도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지도 않는다. 타자와 나를 물리게 하지도 않고 지치게 하지도 않는 전략, 이게 정말 중요하다. 집요한 사람에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은근함일 테니. 구경미의 소설은 이를테면 이 미지근하고 은근한 힘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비구름 같은 것이다. 이 비구름은 소나기도 아니고 장마도 아닌 가랑비를 품고 있는 비구름일 텐데, 놀라운 건 우습게 보이는 이 가랑비에 능히 한국문학 독자들의 속옷이 흥건히 젖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구경미의 염력이다.

 

■ 소설가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 펴낸 책으로 소설집 <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 < 악취미들 > < 랑의 사태 > , 장편소설로 <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 , 경장편소설 < 미치지 않고서야 > 등이 있다.

 

■ 소설가 구경미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 노는 인간 > < 게으름을 죽여라 > , 장편소설 < 미안해 벤자민 >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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