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100m 한국기록 31년의 ‘짐’ 내려 놓은 서말구씨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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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6.24 15: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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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육상강국? 선수들이 신바람나게 하라

 

“통 관심도 없더니 왜들 그렇게 찾소? 진즉 날 찾아와 비법을 물었으면 기록이 더 일찍 깨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내가 기자 있는 곳까지 와서 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이오. 이것도 신기록인 셈이지.” 지난 10일 부산역 광장에서 만난 서말구 전 한국 육상대표팀 총감독(55)은 김해에서 부산역까지 왔다며 싱거운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가 동아대 재학 중이던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100m 한국기록(10초34)은 31년 만인 지난 7일 깨졌다. 제64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100m 예선에서 김국영 선수(19·안양시청)가 10초31로 골인하며 31년 만에 0.03초를 앞당긴 것이다. 김 선수는 준결승에서 10초23으로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신기록을 세운 김 선수보다 더 궁금한 이는 31년간이나 ‘마의 10초34’ 기록을 간직해온 원조 ‘총알 탄 사나이’였다.

 

- 김국영 선수의 신기록 소식에 ‘시원섭섭하다’고 하셨더군요.

“솔직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속이 시원합니다. 하루빨리 그 짐을 벗고 싶었는데 혼자 너무 오랫동안 지고 있었어요. 기록은 모래 위에 새겨 파도에 사라져야 하는데, 그동안 바위에 새긴 것처럼 좀처럼 깨지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젠 내 기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니까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도 들지요.”

 

- 왜 31년 동안이나 기록이 깨지지 못했을까요.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했고 선수들도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닌 것처럼 육상도 무조건 달리기보다는 효과적인 훈련이 중요합니다. 육상선수뿐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은 근성이 부족해요. 내가 선수 때 별명이 ‘독한 놈’이었어요. 운동은 독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거든요.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죽기살기로 달렸다’고 하지만, 정작 훈련하다 죽을 고비를 맞아 앰뷸런스에 실려간 사람은 없습니다.”

 

- 21세기는 베토벤처럼 진지·엄숙함이 아니라 모차르트처럼 경쾌·발랄한 시대라는데 ‘독한 근성’만 강조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

“무조건 운동만 하라는 건 아닙니다. 전지훈련차 자메이카에 갔을 때 만난 우사인 볼트를 보니 연습할 땐 정말 무섭게, 처절하게 해요. 누가 보지 않아도 코치가 지시한 대로 혼자서 100m를 수십번 달리더군요. 그에겐 그게 기쁨이고 즐거움인 거예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기쁨을 느끼려면 그전에 죽도록 최선을 다해봐야죠. 저는 선수시절에 원하는 기록이 안 나오면 너무 분해 벽에 머리를 박기 일쑤였습니다. 후배에게 진 선배는 그날로 은퇴를 하는 게 관례여서 선배일수록 더 연습을 많이 했어요.”

 

- 근성 외에 육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뭡니까.

“육상 단거리에는 순발력과 민첩성이 중요한데, 이건 타고나는 것 같아요. 반면 마라톤은 후천적 요인도 큽니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심폐기능이나 지구력이 강화되죠. 100m의 경우 24~26세가 선수로서 절정기지만 마라톤은 이봉주 선수처럼 마흔에도 달릴 수 있고 직장동호인들이 취미삼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 어떻게 육상을 선택했는지요.

“어머니가 마흔 넘어 낳은 막둥이라 제 이름이 말구랍니다. 어릴 땐 몸이 약했는데 학교 들어가 열심히 운동하다보니 건강해졌어요. 울산고 1학년 때 체력장 100m 달리기에서 12초1로 1등을 하니까 체육 선생님이 육상을 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고3 때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처음 100m 1위를 했고 그걸 계기로 75년 대학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혔죠.”

 

- 장재근 선수도 그렇고, 단거리 선수들은 얼굴이 갸름한 편인데 얼굴형이 기록과 연관이 있습니까.

“0.01초에 승패가 좌우되니 바람의 저항을 덜 받는 갸름한 얼굴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강호동씨 같은 얼굴은 마라톤은 몰라도 단거리엔 불리할 겁니다(웃음).”

 

- 야구복도 입으셨지요.

“84년부터 86년까지 3년간 프로야구 롯데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선수가 아닌 체력담당 트레이닝 코치였어요. 제가 부임한 첫해에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 기뻤습니다. 그 후 다른 구단에서도 육상 전공의 트레이닝 코치를 영입했어요. 미국, 유럽 등에서는 다른 종목에도 육상선수 출신을 트레이닝 코치로 기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3년간 야구선수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것도 제겐 큰 선물이었습니다. 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날린 유두열씨와는 지금도 가깝게 지내죠.”

 

- 한국 육상이 오랫동안 침체해온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쓸 만한 선수가 없어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축구, 야구 등 다른 종목으로 떠납니다. 축구스타 안정환 선수를 비롯해 전 종목 국가대표 선수 중 13.8%가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육상에 관심이 높아지고 경기가 늘어나면 훌륭한 인재들이 빛을 발할 겁니다. 대회가 자주 열리지 않으니까 그 대회에서 꼭 기록 세우겠다고 지나치게 연습하다 지치고 정작 본 대회에선 실력 발휘를 못합니다.”

 

- 육상강국이 되기 위한 비책이 있습니까.

“당장 11월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있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문제를 파악해 계획을 세워야죠. 우리나라는 모든 스포츠를 ‘국가 체육’으로 만드는 게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강압적인 훈련을 시켜 성적만 중시하니, 선수들은 지치고 감독들은 제왕적이 되죠. 조금만 성적이 부진하면 수시로 감독·코치를 교체하는데 누가 사랑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겠습니까. 학생들의 합숙훈련은 물론 국가대표들도 태릉선수촌에 가두지 말고 자발적으로 실력을 키우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 즐겁게 미치는, 신나서 연습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경쟁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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