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물이 스미자 생명이 움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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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6.09 14:10:06
  • 조회: 11042

사람이 떠나간 곳에 자연이 찾아왔다. 30여년간 폐경된 논과 밭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 때문에 고인 물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물이 고이자 생명이 움텄다. 네가래, 수련 등 수생식물이 올라오고 개구리 울음소리에 백로와 해오라기가 찾아왔다. 자연 스스로 습지화가 진행 중인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일대 오베이골 습지다. 개발 만능 시대를 관통했던 오베이골이 사람의 손길을 막아낸 것은 원자력발전소 덕분이다. 1981년 영광 원전 용수로 쓰기 위한 저수지가 운곡마을에 들어섰다.

 

닥나무를 재배해 한지를 만들어 오베이골을 통해 내다 팔던 운곡마을 사람들은 오베이골을 넘어 고향을 떠났다. 원전은 발전소 용수의 수질관리를 위해 운곡저수지 주변에 철조망을 쳤고 사람들의 접근은 쉽지 않았다. 고인돌도 오베이골을 지켜줬다. 오베이골 너머에 집중된 2000여기의 고창 고인돌이 지난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오베이골 주변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공교로운 일로 개발을 막아낸 오베이골 습지는 고인돌 유적지와 운곡마을을 잇는 쥐겁재길만이 사람의 발길을 허용한다. 무심코 걷다간 원시 밀림 같은 비경에 습지를 발견할 수 없다.

 

나무 사이를 빼곡히 메운 칡넝쿨 사이로 언뜻 보이는 습지에서 개구리들의 요란한 구애 소리가 들려온다. 뻐꾸기, 꾀꼬리, 직박구리의 협주도 끊이질 않는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나 했더니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다. 운곡저수지와 습지 점이지대에선 씨알 굵은 붕어들의 자맥질 소리가 들려온다. 덩치 큰 왜가리와 해오라기지만 한 입에 삼키기 버거운지 자맥질 소리엔 관심 없다. 동틀 무렵 자욱한 안개 너머로 고라니 한 마리가 연못가에 나와 타는 목을 적신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DMZ를 10여년간 조사한 경력의 전북대 김창환 교수는 지난 2009년 5월부터 5개월간 오베이골 습지 일대를 기초 현장 조사했다.

 

버드나무군락, 괭이사초군락, 갈대군락 등 다양한 식물 군락과 조류, 나비류, 수서곤충 등 500여종의 동식물 서식이 확인됐다. 계절별 정밀 조사가 실시된다면 멸종위기종 2급인 삵과 같은 희귀 동식물들의 서식도 파악할 수 있다는 평가다. 생태자원 중 습지는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습지는 육상생태계와 수상생태계의 전이공간을 창출해 다른 자연 공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동식물들의 서식공간을 만들어낸다. 지난 20일 국토해양부는 4대강의 6826만㎡의 생태습지에서 855만㎡의 습지를 파괴하고 1074만㎡의 대체습지를 조성하는 생태하천계획을 발표했다. 사람이 떠난 곳에서 자연 스스로 습지를 만들어내는 오베이골의 모습은 정부의 생태하천계획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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