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초록 추억 움튼 ‘밀러의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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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6.02 12: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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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내 최초 충남 태안 천리포 수목원

꽃보다 초록이 좋은 때가 요즘이다. 성하의 초록은 짙푸르지만 요즘 나뭇잎은 형형색색이다. 사람에 비춰보면 오뉴월의 나뭇잎은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는 것과 같다. 푸르기만 한 게 아니라 노란 빛이나 붉은 빛을 띠기도 한다. 나무들도 어른이 되면 ‘색’을 숨기고 겉만 보여주는 사람과 비슷하다. 한여름엔 잎과 기둥으로 나무를 구별해야지만 지금은 나뭇잎도 제 색깔을 다 드러내면서 제 몸속에 어떤 색소가 들어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태안 천리포 수목원에 다녀왔다. 천리포는 1962년 설립, 70년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국내 최초의 수목원이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다 개장한 것은 아니고 단계적으로 문을 열고 있는데 올해 4월에는 작고한 설립자 민병갈씨가 생전에 자주 산책을 다녔다는 ‘밀러의 산책길’을 추가로 열었다.

일단 밀러에 대해 한마디만 짚고 가자. 미 해군 장교 출신의 밀러의 본명은 칼 페리스 밀러다. 밀러는 북한에는 수목원이 있는데 남한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1962년 황무지를 사들였다. 소금기가 많은 박토에 민둥산이었지만 70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어 식물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수목원은 이렇게 귀화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처음 만나는 길은 해송길이다. 발자국마다 감촉이 좋다. 두툼한 카펫을 밟는 것 같다. 원래 모래가 많은 땅에 나무의 껍질인 바크를 뿌려 만들었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길 옆으로는 태안 앞바다가 보인다. 바로 옆에 보이는 섬이 낭새섬. 수목원의 일부로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다. 일반인들에겐 개방하지 않는 구역이다. 솔숲길 끝자락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발코니와 나무의자가 놓여있는데 인기가 좋다. 차 한잔 마시며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해외 리조트 부럽지 않다.

지난주 수목원은 노란 목련이 한창이었다. “한 달 전에 이미 져버린 목련이 지금 피나”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울보다 남쪽이지만 기후가 서늘해서 2~3주 정도 꽃이 늦다. 게다가 노란 목련은 잎과 꽃이 함께 핀다. 언뜻보면 꽃인지 잎인지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저수지 옆에는 튤립도 만개했다. 그 너머에는 꽃산딸이 탐스러운 꽃을 매달고 있다. 꽃산딸의 꽃잎을 보면 네 개로 나뉜 잎 귀퉁이에 붉은 점이 하나씩 찍혀 있다. 마치 십자가와 비슷하게 생겨서 십자가나무라고 불린다. 인근엔 잎이 다 자라면 마치 우산을 펼쳐놓은 것 같아서 연인나무로 불리는 닛사가 새순을 내고 있었다. 수목원에서 잎이 가장 더디 피는 나무다. 가이드나 직원과 함께 수목원을 돌다보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얽혀있는 민병갈 원장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블루베리는 민 원장이 꽤 아꼈던 모양이다.

민 원장은 저수지에 새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줄 정도로 자상했지만 블루베리만은 욕심을 냈다. 새들도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폐어망을 씌워놓았다. 블루베리로 잼도 만들어 먹고, 술도 담가 먹었단다. 최수진씨는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에선 흔한 나무지만 한국선 보기 힘든 터라 블루베리를 볼 때마다 고향을 떠올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2002년 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블루베리는 꽃을 피우지 않았단다. 수목원 사람들은 블루베리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믿는다.

민 원장은 스스로를 청개구리라고 불렀다.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부모의 말을 어겼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부모가 저어했던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되고 싶다며 무덤을 만들지 말고 유해를 수목원에 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엔 직원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곳에 자그마한 무덤을 만들었다. 연못가 옆 산책로 청개구리 석상이 바로 민 원장의 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수목원 내에는 초가가 한 채 남아있는데 게스트 하우스로 쓰인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정부가 지붕 개량운동을 추진했다. 민 원장은 “이렇게 좋은 집을 왜 슬레이트집으로 바꾸느냐. 이 집을 지키겠다”며 거부했다. 초가는 2년에 한 번 정도는 이엉을 갈아줘야 하는데 600만원가량 들어간다. 민간수목원이 돈을 버는 곳도 아니고, 민 원장 사후 재정이 어려워 직원 월급이 밀린 적이 있었지만 민 원장의 뜻을 이어받아 초가 지붕을 갈아줬다. 그러다 2004년 태안군이 이 초가를 리노베이션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다. 1~2월에도 설강화라는 꽃이 핀다고 한다. 5월 말 6월 초에는 어떤 꽃과 나무가 좋을까. 수련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고, 붓꽃, 칠엽수(마로니에), 덩쿨장미, 의아리꽃 등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올해 개방된 ‘밀러의 사색길’을 가봤다. 생전에 산책을 즐겨했던 곳이다. 무논 옆으로 700m에 달하는 나무 산책로를 놓았다. 목련이 유명한 곳인데 꽃은 대부분 졌다. 그래도 머리도 식힐 겸 한 번 볼 만한 곳이다. 수목원이라면 에버랜드의 정원 같은 공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이나 캐나다의 부처드 가든은 실제로 조경미를 강조했다. 천리포 수목원은 테마파크의 세련된 꽃밭은 아니다. 수수하지만 많은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천리포는 수목원을 아는 전문가의 눈엔 보물이다. 2000년 국제 수목원학회에서 ‘세계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했다. 세계에서는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였다.


■ 여행길잡이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로 빠져 나와 32번 국도를 타고 서산읍쪽으로 간다. 서산읍에서 태안 만리포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40분쯤 달리면 나온다. 입장료 평일 7000원, 주말 8000원. 청소년은 5000원, 4000원. 5세 이상 초등학생은 3000원. www.chollipo.org

*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수목원 내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주중 8만원, 주말 10만원대(4인용)부터 주중 20만원, 주말 25만원대(25인용)까지 다양하다. 이용자는 입장료를 4000원(어른), 2000원(어린이)으로 할인해준다. 수목원 밖에 있는 생태교육관에도 숙박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객실에 따라 바다도 보여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2인실은 4만원, 10인실은 15만원이다. 대신 투숙객이라도 수목원입장료는 정상요금을 받는다. 숙박예약(041-672-9985)

* 태안 별미는 박속낙지탕. 원북면 원풍식당(041-672-5057)이 유명하다.

■ 전국 수목원 연락처

한국자생식물원 | 033-332-7069 |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 405-2
아침고요수목원 | 031-584-9769 | 경기 가평군 상면 행현리 산 255
유명산자생식물원 | 031-589-5487 | 경기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 산35번지
꽃무지풀무지 | 031-585-4875 | 경기 가평군 하면 대보리 143
경기도립물향기수목원 | 031-375-9748 | 경기 오산시 수청동 332-4
한택식물원 | 031-333-3558 |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산153-1
국립수목원 | 경기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51-7
평강식물원 | 031-531-7751 |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668
금강수목원 | 041-850-2635 | 충남 공주시 반포면 도남리 12-2 ·충청남도산림환경연구소 임업시험과
안면도수목원 | 041-674-5017 |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60-31·휴양림관리사무소(안면도수목원)
미동산수목원 | 043-220-5501 | 충북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 20번지·충청북도산림환경연구소
경상남도수목원 | 055-771-6500 |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482-1
기청산식물원 | 054-232-4129 |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덕성리 362
인천수목원 | 032-440-4952 |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산160 동부공원사업소
완도난대수목원 | 061-552-1544/1532 | 전남 완도군 군외면 대문리 산109-1
한국도로공사수목원 | 063-212-0652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848번지
여미지식물원 | 064-735-1100 |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2484-1
고운식물원 | 041-943-6245 | 충남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 산32-4
천리포수목원 | 041-672-9982 |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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