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시집 ‘하늘의 맨살’ 펴낸 마종기와 마주한 김수이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5.25 14:18:06
  • 조회: 12001

 

ㆍ“쓸 수밖에 없어 진심 다해 시를 썼죠”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니 ‘바람의 말’이 들려온다. 정갈하고 온유하고 겸허하다. 연둣빛 오월의 햇살이 아침커피의 쓴 맛에도 부드럽게 스민다. 바람의 내력이, 맨살처럼 뚝 떨어져나가 떠돌아온 시인의 이산(離散)의 궤적들이 소리없이 한곳에 쌓인다. 태생지인 도쿄,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마산과 서울, 40여년을 의사로 일한 미국 오하이오의 병원, 여행지의 하나였던, 양들이 억센 풀을 먹다 잇몸이 다 헐어버리는 남미의 파타고니아…. 그 뒤편으로 “시체는 부스러지고 사랑도 헤어져” 버린 해부학 교실, “오백두 살”의 청년이 웃는 정신과 병동, 군부정권 하의 모진 고문의 캄캄한 방들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진심’이 아니고서는 시를 쓸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시인. 시력(詩歷) 50년의 “착한 당신”(‘바람의 말’)을 만나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갖고 갈 것이 없었다. “세상에 필요한 단 하루의 아침”(‘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에까지 소용이 될 진심 외에는. “나는 그저 쓰고 싶어서, 쓸 수밖에 없어서 마음을 다해 시를 썼어요. 남들처럼 길게 이야기할 만한 근사한 시론이 내게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름을 마련할 수 있겠다. ‘진심’이 그의 시론이다. 진심 앞에 어떤 수식어가 필요하랴. 이 시론은 당연히, 지극히 짧을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강력한 시론을 아직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진심’이 가장 필요한 직업(?)은 단연 시인과 의사이다. 시인과 의사는 본업이 같다.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내 것으로 앓아야 하는 것이다. 매일 피 흘리는 ‘육체’를 수없이 마주하는 일이 버거워 ‘기계’를 우회하는 진단방사선과를 택했지만, 의사-시인에게 내성은 끝내 생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 아픈 사람들과 함께 아파했고, 병원의 날카롭고 고단한 시간 속에서 잠깐씩 숨을 고르듯 시를 썼다. 시가 측은지심과 통증과 치유의 근원이 되었다. “어떻게 같이 아프지 않을 수 있나요? 나와 같은 사람이 고통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데요. 의사들이야말로 꼭 문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시인도 되지 않았을 그는 미국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실력 있는 의사로 널리 인정받았다. 한국문학에도 선명한 자취를 남겨 왔으니 두 개의 나라에서 두 몫의 삶을 성공적으로 산 셈이 된다.

 

“난 편법으로 문학을 했어요. 문학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고, 문인으로만 살지도 않았어요. 한국과 한국문단을 떠나 살기도 했고요. 오래된 죄책감이 내 마음속에 있죠. 역사와 민족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더러 받았고, 내 시를 한국문학에 넣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역사의 현장은 하나가 아닌 여러 곳이며, 시련의 역사일수록 현장은 바깥으로 넓어진다. 1966년 미국으로 떠나던 스물일곱 살의 청년에게는 군부독재가 시인에게 가한 난폭한 폭력이 각인되어 있었다.

 

비싼 의대 학비와 무거운 생계의 짐도 얹혀 있었다. 타국에서 변을 당한 동생의 운명도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에 산다는 사촌들과, 분단된 민족의 현실과 이어져 있었다. 동생의 이야기에, 시인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그도, 나도, 당황한다. 그러나 당혹감이 눈물을 막지는 못한다. 떠나간 후에야 비로소 “당신의 극치에 다다르”게 되는 삶의 가혹한 전율. 속수무책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 먼저 도착해 있을 각자의 육친을 생각하며 처음 만난 시인과 나는, 우리는 잠시 숨죽여 울었다. “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상처 4’) 그가 어떻게 상처와 고통을 견뎌왔는지, 시를 써 왔는지, 더 이상의 질문도 대답도 필요 없어진다.

 

고국을 떠나 그토록 그리워한 “그 나라 하늘빛”과의 거리가, 아무리 연민해도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고통 받는 환자들과의 존재적 거리가, 헤어져 지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간절한 거리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한결같은 진심이 없이는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끊임없이 살아내고 이룩하게 했을 것이다. 한국문단의 흐름에 기민하지 못한 대신, 이념과 스타일의 강박이 없는 자유로운 시를 쓰도록 독려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시인 자신이다. 한국을 떠난 것을 후회한다는 고희의 시인에게 나는 위로 대신 이렇게 서툰 해석을 돌려드린다.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 자리에 다시 ‘사랑’이 들어선다. 눈물이 흐르고, 어느새 따뜻해진다. 오월 아침 열시의 광화문 거리처럼 연녹빛으로 환해진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쓰인 시들이 지금 이곳의 삶속에 촘촘히 이주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간극이나 균열도 없다. 이 ‘균열의 부재’가 마종기 시의 현재형의 비밀이고, 읽히는 힘이다. 한국문학의 바깥에서 한국문학의 중심을 아우른 힘이다. 나는 아직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그의 시의 여정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으리라. 당분간은 그의 시를 행복하게 누릴 일이다. 며칠 전 나온 그의 열두번째 시집의 한 구절은 이러하다. “나는 안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내가 찾던 평생의 길고 수척한 행복을 우연히/넓게 퍼진 수억의 낙화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북해의 억새’, ‘하늘의 맨살’)


■ 마종기

1939년 도쿄 출생. 연세대 의대를 나와 66년 도미. 의사로 활동했다. 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하늘의 맨살>을 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 김수이

충북 제천 출생. 1997년 ‘문학동네’로 등단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정은 진화한다> <풍경 속의 빈 곳> 등의 평론집이 있으며, 현재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