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죽음의 공포에 되돌아갈까 매 순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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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5.24 14: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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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오은선씨가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며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지난달 27일, 시청자들은 집 안방과 사무실에서 이 순간을 지켜봤다. 정상에 선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도 그대로 전달됐다. 이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본 이들은 ‘도대체 저기까지 올라간 카메라맨은 누구야’ 하며 궁금해했다. 산악인 오은선씨의 등정 성공은 그렇다손치더라도 그 뒤에서 무거운 촬영장비를 짊어지고 정상에 오른 이는 어떤 사람인가.


50여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10일 귀국한 정하영 KBS 카메라감독(44)은 조금 피곤해보였다. “체중이 6㎏ 정도 줄었고, 정신이 좀 멍한 상태”라고 했다. TV 인터뷰에서는 여유롭게 웃어보였지만 실은 “매 순간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무서움을 떨치려고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갖다댔다”고 털어놨다. 세계 최초의 HD 카메라 생중계는 사실 한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에서 비롯했다.


“고비요? 사실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한 그 순간부터 정상에 이를 때까지 ‘차라리 여기서 그만두고 되돌아갈까’ 한 순간도 갈등하지 않은 때가 없었어요. 8000m 근방에 이르러선 ‘나는 촬영을 하려고 여기에 왔다, 왔다’고 되뇌일 정도였습니다. 거의 탈진상태였으니까요.” 안나푸르나 정상(8091m)을 10m 남겨둔 지점부터는 오은선씨의 한 발 한 발을 카메라에 담고 정상 풍광을 찍는다는 콘티를 짰다. 그런데 그 기억마저 잊어버릴까봐 계속 반복해 생각해야 했다. 그만큼 정신은 점점 아득해졌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자기 몸도 주체하기 힘든 상태에서 4㎏짜리 산소통과 물, 소형카메라와 배터리, 간식 등을 합쳐 7㎏을 이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정상에서 셀프카메라로 자신의 모습도 비추고 멋진 방송용 코멘트도 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은선 대장은 무산소 등정을 했어요. 그런데도 걸음이 빨라 쫓아가기 힘들었습니다. 베이스캠프를 떠나 캠프1, 2, 3, 4 지점을 오르는 동안 오 대장이 잠깐 쉴 때 저는 그 틈을 타서 따라잡거나 조금 앞질렀죠. 매번 다시 뒤처지기는 했지만. 오 대장은 평지에선 명랑소녀 같은데 산에선 냉철해요.”  캠프2에서 캠프3으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눈사태가 두번 일어났다. 다행히 무사했지만 눈사태와 크레바스(빙하 속의 깊은 균열)를 만날 때는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정상 공격팀이 캠프4를 출발한 건 지난달 27일 새벽 2시(현지시간).

 

“전날 거의 잠을 못 잤어요. 정상에 오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하산할 때 몇 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로프를 잡고 내려오다가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어요. 주위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죠. 물만 겨우 마시고 16~17시간 동안 오르고 내려오다 보니 정신없었습니다.”  정 감독이 고산 촬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7월. 엄홍길씨의 낭가파르밧 등정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때는 촬영은 고사하고 42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서 3일간 고소증으로 몸져 누워 민폐만 끼쳤다. 그해 10월 엄홍길씨의 칸첸중가 등정에서 처음 촬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간 KBS 동료 2명이 사고로 세상을 뜨고 2000년 칸첸중가에서는 낙빙에 셰르파가 숨져가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지금까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그는 엄홍길, 오은선씨의 8000m 이상 고봉 등정에 모두 9번 동행했다. 그러면서 언제가 한번은 꼭 정상에 함께 올라 생중계 방송을 하리라 마음 먹었다. 지난해엔 오은선씨와 함께 안나푸르나의 7600m 지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번 등정에 앞서 가장 마음 쓰인 이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와 중·고등학생 두 딸이었다. 지난해 10월 훈련을 겸해 안나푸르나에 다녀왔을 때는 “어머니, 이제 다신 안 갈게요”하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노모는 이번 등정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마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귀국날 “우리 아들 살아 돌아왔구나” 하며 껴안으시고 눈시울을 적셨을 뿐이다.


정 감독은 수중 촬영도 전문가다. 그동안 <동강> <산호의 꿈> <섬진강 밑물> 등 자연다큐멘터리를 찍어왔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도 카메라를 들고 한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8000m 고산과 수중 촬영을 겸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카메라 감독이기도 하다. 93년 KBS 공채 19기로 입사한 그는 2004년 국민체육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체육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운이 좋아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신의 세계’처럼 맑았고, 새하얀 산등성이는 마음 속의 먼지까지 털어내주는 듯했다.


“높은 산에 올라갔다 오면 마음으로는 도인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속을 썩여도 ‘허허’ 웃고, 동료들의 짜증스러운 말도 잘 들어주고…. 그런데 한 달을 못갑니다. 그만큼 힘드니까 스님들도 계속 수행하는 거겠죠.” 목숨까지 걸고 산에 오른 이유를 묻자 정 감독은 “내가 맡은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싱거웠다. 그는 “대상이 산이었을 뿐,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기 목숨을 거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제 단순히 산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안데스의 사람들’을 카메라에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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