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낮과 다른 정취의 ‘고궁 야간투어’… 창덕궁은 5월 시범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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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4.21 14: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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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덕수궁의 밤 임금님 되어 고종의 애환을 느껴본다

 

봄날 밤 고궁에 가보자. 밤에 본 고궁은 낮에 본 궁과 다르다. 크리스토퍼 듀드니는 <밤으로의 여행>에서 “밤의 심연 속에 모든 희망과 순수가 있다”고 했다. 그는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밤이며, 그곳에서는 빛이 예외적인 현상이다. 낮의 빛은 밤의 어둠 사이에 있고, 우리의 태양은 끝없는 밤이 계속되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다. 하지만 우주의 밤은 척박하지 않다. 우주의 밤은 풍요로운 공간이다. 모든 것은 그곳에서 잉태됐고, 심지어 빛마저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현재 고궁 중에서 밤에 문을 여는 곳은 덕수궁이다. 밤의 덕수궁은 고요하다. 사람이 많지 않다. 삼각대를 든 사진작가와 답사팀들만 조금 보인다. 조명시설을 갖춰놓았지만 길은 어둑하다. 낮의 고궁은 신하들도 북적댔을 테지만 밤의 고궁은 임금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밤에 보는 고궁은 남다르다. 밤엔 임금의 고궁을 직접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의를 달 수 있다. 구한말 덕수궁은 풍전등화의 현장이었다고. 1895년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으로 경복궁 옥호루에서 낭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러시아 공사관과 바로 붙어 있는 곳이 덕수궁. 왕세자도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으로 옮겨왔다.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1897년 덕수궁으로 환궁했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맞다. 대한제국은 덕수궁에서 시작됐다. 고종은 덕수궁에 서양문물을 많이 받아들이려 했다. 석조전도 만들었다(현재 보수 중이다). 석조전은 콜로니얼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구미열강이 지었던 스타일이다. 해서 한국의 기후와 맞지 않게 발코니를 만들었다. 그런들 어쩌랴. 이게 바로 당시 역사의 산물이다. 재밌는 건축도 있다. 정관헌은 조선식과 서양식의 퓨전이다. 고종이 커피 마시던 일종의 별장 같은 휴게실. 커피에 독을 넣어 고종을 독살시키려는 음모도 있었다. 덕수궁은 1904년 화재로 많이 탔고, 대한문도 과거의 자리에서 33m나 아래쪽으로 옮겼다. 서울광장도 일부는 덕수궁의 내각터였다. 그 너머 환구단은 철거됐으니 이전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고궁의 밤길을 걸었던 고종은 밤이 고요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칠흑 같은 미래를 상징하듯 암담함과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해서 덕수궁의 밤을 아름답게만 느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일제는 1905년 덕수궁을 군인들로 포위하고 중명전까지 찾아와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옥새 날인을 끝까지 거부했다지만. 설사 욕된 역사의 현장이라도 오히려 낮보다는 밤에 느끼는 것이 낫다. 시끄러운 공간보다는 고요한 공간에서 역사를 곱○○○어보는 것이 낫다. 사색의 여유는 저잣거리에서 생기지 않는다. 서유럽의 유적지에선 밤 투어가 많다. 밤엔 풍광뿐 아니라 여행자의 기분도 달라진다.

 

조만간 창덕궁도 야간 투어를 할 모양이다. 올 봄 2차례 시범개방을 한 창덕궁은 5월 한 차례 더 시범개방을 한 뒤 올 가을엔 인센티브 관광객을 대상으로 10만원짜리 고급 심야 투어를 만들 계획이다. 다과와 음료, 공연이 포함된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한국 관광이 싸구려로 인식돼 외국인을 위한 고부가가치 상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인도 가능하다. 하지만 서민들도 큰돈 들이지 않고 문화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문화재는 국민들의 것이다. 덕수궁은 월요일 휴무다. 야간개방은 오후 8시까지는 입장해야 하고, 오후 9시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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