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탐라의 속살’ 사려니 숲길 "햇살은 부서지고, 바람은 잔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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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4.08 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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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려니 숲길에 다녀왔다. 올레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숲길이다. 올레길은 바다를 끼고 도는 데 반해 사려니 숲길은 중산간에 있다. 바닷길보다는 화려하지 않을지 몰라도, 제주도가 어떤 섬인지를 보여준다. 제주 특유의 중산간 숲을 볼 수 있다. 사려니 숲길은 난대림연구소의 연구림이다. 해발 300~700m 사이에 있는 난대림은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구간(비자림 인근)과 미리 신청을 해야 하는 볼 수 있는 코스(한남읍 인근) 두 개 코스로 나뉜다. 기자는 난대림연구소에서 가까운 삼나무 전시림을 택했다. 이 구간에는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삼나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진입로는 한남 쓰레기매립장 뒤편에 있다. 시멘트 포장길과 자갈길, 흙길이 섞여있는 좁은 길을 훑어 오르다보면 연구림 입구가 나온다. 개방된 코스는 모두 3㎞다. 천천히 둘러보면 2시간30분~3시간 걸린다.  들머리부터 삼나무가 울창하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닦아놓은 길이지만 제법 운치있다. 삼나무가 좌우로 빼곡했다. 길은 대체로 평탄한 편이었고, 숲과 공터가 번갈아 나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구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발길이 뜸한 구간이어서 흙바닥의 바윗돌에는 파란 이끼가 끼어있다. 숲길은 상쾌했고, 고요했다. 노루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더니 황급히 도망쳤다.

 
1㎞쯤 들어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삼나무 전시림이 나온다. 숲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구간이다. 삼나무 전시림은 1933년 일본인들이 아키타현에서 들여온 삼나무를 심은 곳이다. 당시 3년생 정도의 묘목을 심었으니 나이가 80년 이상된 거목들이 빼곡하게 차있다. “원래 한국에는 자생하는 삼나무가 거의 없어요. 1905년 일본인들이 삼나무가 잘 자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인 부산 성지곡유원지와 대신공원에 처음 들여왔죠. 그 삼나무들은 지금 대부분 없어졌죠. 제주도에는 1924년 제주시 쪽에 처음 삼나무를 심었습니다. 보통 삼나무는 80년 정도 되면 베어내 목재로 사용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삼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보여주기 위해 전시림으로 꾸몄죠.”


난대림연구소 정영교 박사는 “지금도 삼나무와 제주 자생종인 붉가시 나무를 심고 있다”고 말했다. 삼나무는 약간 붉은빛을 띠었다. 정 박사는 “베어내 보면 속이 붉고 아름다워서 가구 등으로 많이 쓰인다”고 했다. 어쨌든 이 숲은 삼나무 숲으로는 국내에서 오래된 숲 중 하나인 셈이다. 삼나무 숲은 촘촘했다. 나무가 높고 빽빽해서 한낮인데도 숲은 어두웠다. 햇살은 창같이 높은 나무에 갈라져 조각 조각 떨어졌다. 빛조각이 삼나무 기둥을 비춘 곳마다 거칠거칠한 표피가 드러났다. 참 단단해 보이는 잘생긴 나무들이다. 다 자란 삼나무의 높이는 30m, 직경은 1m 정도. 지금도 해마다 직경은 1~1.2㎝가량 굵어진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동물은 늙으면 찬밥이다. 해서 동물은 쇠하기 전 청년기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반면 나무는 늙을수록 기품있다. 가지가 부러지고 옹이가 많아도 쇠한 기운 대신 신비감을 준다. 하물며 한자리에 서서 100년 가까이 풍상을 겪은 나무들로 이뤄진 숲에선 묘한 숲의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숲길은 걷기 좋게 나무판으로 만든 관찰로가 놓여있다. 중간에 벤치도 있어서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라도 담아왔으면 앉아서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관찰로는 970m. 한 그루 한 그루 모두 짚어볼 만한 나무들 사이로 길이 열린다. 삼나무숲을 되짚어 나와 세심정으로 옮겼다. 세심정은 숲길 중간에 있는 정자로 사려니 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정자를 지나면 울창한 난대림을 만나게 된다. 삼나무 숲과는 정반대의 자연림인데, 곳곳에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산중턱에 꽃이 핀 동백은 하늘을 향해 꽃봉오리를 쳐들고 있다. 기존의 숲길과는 달리 고개를 숙이기도 해야 하고, 나무도 비켜가며 올라야 하는 울창한 자연림과 조림한 삼나무 숲이 번갈아 나온다.


10여분쯤 오르면 사려니 오름 정상(513m)이다. 사려니 오름에선 한라산을 등지고 성산 일출봉과 남원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려니 오름은 등줄기에 타고 있을 때는 오름 같지 않았다. 용눈이 오름이나 다랑쉬 오름처럼 봉곳하게 솟아있는 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려니 오름은 말굽형 분화구예요. 서북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오름이죠. 그래서 발굽 안쪽은 온화합니다. 사려니란 뜻은 살 만하다는 뜻이죠. 소생악, 사생악이라고도 불렸어요.”(정영교 박사) 오름에서는 숲을 내려다볼 수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숲의 형세와 윤곽을 볼 수 있는 자리다. 게다가 동남쪽 제주의 풍광 역시 잘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40년생 삼나무 숲이다.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전시림처럼 울창하지는 않지만 걸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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