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적의 상징물을 죽여라’ 나치·중국 ‘책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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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3.26 09: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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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성·정신없애 노예만들기…진시황 분서갱유와 닮은꼴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레베카 크누스 | 알마

역사에 더러운 얼룩을 남긴 독재자, 전체주의자, 극단주의자가 날파리처럼 여겨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다른 의견’이다. 이들은 다른 의견을 때려잡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다. 다른 의견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어디일까. 요즘엔 인터넷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20세기엔 수많은 책이 모인 도서관이었다. 이 악당들은 책을 불태우고 도서관을 파괴했다. ‘욱’ 하는 심정에 그랬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이들의 파괴는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2차대전기의 나치, 1990년대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쿠웨이트를 침략한 이라크,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 군이 모두 그랬다. 제노사이드(genocide·인종말살)가 익숙한 어휘고, 에스노사이드(ethnocide·문화말살)가 낯선 어휘라면,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의 저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리브레사이드(librecide·책의 학살)의 의미를 짚어보자고 제안한다.

 

책의 학살이 20세기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진시황은 책을 불사른 뒤 유학자들을 산 채로 묻었고(분서갱유), 이집트는 파라오가 바뀔 때마다 이전 파라오가 세운 도서관을 허물었다.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책은 적의 상징물이었고, 피통치자에게 자기 권리를 깨치게 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악당들도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 문화와 인간의 진보는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대규모로 끊임없이 기록을 축적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공동체는 이 기록과 분리될 수 없으며, 기록이 파괴되면 문화적 생존력도 약해진다. 1933년, 나치는 유대인 저자의 작품들과 ‘독일의 것’이 아닌 작품들을 불태웠다.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이 잔해에서 새로운 정신의 불사조가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의 예를 보자. 나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를 독일 영토로 병합하자마자 도서관과 박물관의 장서들을 독일로 빼돌렸다. 1938년 이른바 ‘수정의 밤’에는 7500개 유대인 사업장과 함께 1만6000권의 책이 파괴됐다. 폴란드의 도서관은 병영으로 사용됐고, 아이들은 이름 쓰기와 500까지 세기만 교육받았다. 나치는 피지배자의 지성과 정신이 고사해 ‘위대한 아리안족’의 노예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중국은 극우와 극좌가 번갈아가며 책을 죽였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중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책과 도서관을 파괴했다. 일본이 패하고 들어선 공산당 정부는 책을 죽이기 위한 정치 캠페인을 벌였다. 마오쩌둥은 58년 공산당 간부 회의에서 “진시황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그는 460명의 학자를 처형했다. 우리는 4만6000명을 처형했다”고 말했다.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들은 고전이 봉건주의를, 서구의 것은 자본주의를, 소련의 것은 수정주의를 부추긴다며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불을 놓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생각을 없애려면 사람을 불태워야지”라고 말했다. 리브레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통찰한 것이다. 루쉰은 “정치가들은 작가들을 혐오한다. 작가들은 반대의 씨앗을 뿌리기 때문이다. … 그들은 언제나 예술가와 작가들이 자신의 질서정연한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세기 전의 중국 작가가 얼마의 지원금으로 한 나라 대표작가 집단의 정신을 옭아매려 한 이들의 머리 속을 꿰뚫어 봤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나쁜 체제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얼마간 비슷하기 때문이다. 강창래 옮김. 2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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