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호밀밭의 파수꾼’과 ‘개밥바라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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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3.09 09:44:46
  • 조회: 720

 

ㆍ자신만의 세계를 위한 ‘청춘의 열병’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많은 청년이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누구는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누구는 사회로 나간다. 또 누군가는 제도권을 벗어나 울타리 없는 세상에 던져지기도 한다.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가슴 속의 꿈과 좌절의 비율도 다르겠지만 모든 젊음에 깃든 공통점은 불안정성이다. 기성사회의 벽은 높기만 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가치관은 반항과 환멸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운명을 가진 존재인지, 뭘 원하는지 혼란스럽다. 성장이 지니는 이런 특성 때문에 청년기의 독자적인 내면을 다룬 성장소설이란 영역이 생겨났다.

 

성장소설은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다른 말이다. 여기서 교양은 지식과 기술을 익히거나 기성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모습으로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 즉 주인공이 그 시대의 문화적·인간적 환경 속에서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에 이르는 사이에 자기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유럽에서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의 영향을 받아 신분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인간의 존재 방식을 탐구하면서 시작된 교양소설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그 전형을 선보였다.

 

문학사에는 수많은 성장소설이 존재한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이란 상투어를 유행시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비롯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J M 바스콘셀루스),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등은 손꼽히는 성장소설들이다. 우리 작품 가운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성장소설로 분류된다. 성장소설은 자칫 그 성장이 주류사회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에서 보수성을 띠기도 한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저항의 정신만이 기득권을 질타하고 무뎌진 윤리의식에 균열을 낼 수 있다.

 

타협하지 않는 저항정신 깃들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년작)이 여러 성장소설 가운데 명저로 꼽히는 이유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저항정신 덕분이다. 뉴욕에 사는 부유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인 16세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청춘기의 불가사의한 내면과 혼란스런 선택을 독특한 관점과 삐딱한 문체로 담아냈다.

 

작품은 펜실베이니아의 저명한 사립학교인 펜시고등학교에 다니던 홀든이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퇴학 당한 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겪는 사흘 동안의 방황이 전부다. 퇴학 통보를 받은 홀든은 지하철역에서 산 1달러짜리 싸구려 사냥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면서 기숙사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과 시시한 잡담을 하거나 작문 숙제를 대신해 주다가 불현듯 짐을 싸서 뉴욕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그리고 열차에서 만난 수녀들에게 거짓말을 늘어 놓고, 옛날 여자친구와 연극을 보다가 싸우는가 하면 호텔에 투숙해 창녀를 불렀다가 엘리베이터 보이와의 싸움에 말려든다. 대학생이 된 옛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바에서 술을 마시고, 부모가 외출한 걸 확인하고는 몰래 집에 들어가 여동생 피비를 만난다. 그리고 집에서 독립해 먼 곳으로 떠가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의 퇴학 사실은 부모에게 알려지지만 그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소설은 정신병원을 나온 그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에서는 홀든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거지와 그가 세상에 대해 품은 불온한 생각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반면에 그가 이전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불만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정과 학교에서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맥락은 원경으로 밀려난다. 맨해튼 시내를 방황하는 그는 앞날보다 센트럴파크의 연못에 사는 오리가 추운 겨울날씨에 혹시 얼어죽지 않을까를 염려한다. 끊임없이 투덜대고 반항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세상을 욕하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순수함, 세상의 얼토당토 않은 폭력 앞에서 겁을 먹는 장면, 학교와 집을 멀리 하면서도 한때 미워한 친구들을 떠올리고 먼저 죽은 남동생 앨리와 집에 남은 꼬마 여동생 피비를 그리워하는 모습 등은 겉으로는 거칠게 굴 망정 속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홀든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주류사회 지향하는 청소년의 모험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에덴의 동쪽>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이 가졌던 반항적 정서를 빌어 왔다. 홀든이 왜 그렇게 반항적인 아이가 됐는지를 작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성공한 유대인 아버지, 교양 있고 예민한 어머니 사이에서 부유하게 자라면서 주류사회를 지향하는 청소년이 겪는 정신적 모험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만하다. 홀든이 속한 계급의 아이들은 사립 기숙사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집안 출신의 친구를 사귀고, 아름답고 자존심 강한 여학생과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다음 전문직에 안착함으로써 부모 세대의 안정된 삶을 이어가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어른들의 세계인 것만도 아니다. 홀든이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들, 이를테면 굉장한 미남으로 여자를 잘 꼬드기는 스트라드레이터나 지저분한 이빨로 혐오감을 주면서 늘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애클리 같은 아이들도 반쯤은 어른들의 세계에 동화돼 있다. 홀든은 학교를 떠나기 전 병상에 누워 있는 역사교사 스펜서 선생을 찾아가 작별인사를 나누고, 뉴욕에서는 옛날에 다니던 학교에서 투신자살한 급우를 안아올렸던 영어교사 앤톨리니 선생에게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들 역시 홀든의 세계에서 언저리에 머물 뿐이다. 홀든이 진정 좋아하는 사람은 몰래 집에 갔을 때 자기 용돈을 전부 털어 주고, 가출하겠다고 선언하자 기꺼이 따라나선 어린 여동생 피비밖에 없다.

 

그런 아이의 모습만이 홀든, 나아가 샐린저가 형상화할 수 있는 세상의 선함과 순수함이다. 그래서 홀든은 피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위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런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시키는 한국의 성장소설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2008년작)이 있다. 집필 당시 예순이 훨씬 넘은 작가는 자기 주변에서 ‘발견’한 어린 독자들을 위해 50년 전인 1960년으로 시계를 돌려 자전적 체험에 기댄 성장소설을 썼다.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 유준은 ‘한국의 홀든’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뭔가에 사로잡혀 청춘의 열병을 앓고 있으며, 이미 존재하는 가치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소설은 월남 파병을 앞둔 준이 혹독한 군사훈련을 마치고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서울역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청춘의 방황을 일단락하는 군생활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사흘의 유예된 시간 속에서 준의 과거가 그의 친구인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의 시점과 교차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준과 친구들은 서울의 한 명문고 학생들이다. 준은 산악반에 들어가 상급생 인호를 만나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의 주변에는 미술을 하는 정수, 문예반원인 동재와 영길이, 음악다방을 들락거리는 상진이 등이 있다. 이들은 마치 작은 어른인 양 행동하면서 책을 찾아 읽고, 시와 소설을 끼적거리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세상과 철학에 대해 논한다. 수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준에게 선생이란 육모방망이를 끼고 다니면서 자신을 수시로 두들겨 패는 1학년 담임이거나 세상이 바뀐 뒤에(5·16 군사혁명) 허탈감에 빠진 2학년 담임 같은 이들이다.

 

준은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한다. 준의 부모는 전쟁과 분단으로 많은 걸 잃었다. 그들은 이북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인텔리였지만 남한에 내려와서는 손대는 일마다 번번이 낭패를 보는 어리숙한 피란민일 따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세가 더 기울고, 가난에 찌든 영등포의 노동자 집단주택에 살면서 어머니는 자신들이 이웃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하지만 준이 볼 때 그건 허위의식일 뿐이다. 공부를 잘해 좋은 학교에 진학한 자식에 대한 기대만이 준의 어머니를 지탱하는 힘이다.

 

창조적 가치 위해 학교교육 거부

평생 은둔생활을 한 작가 샐린저를 모델로 만들어진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준은 인호와 함께 학교를 무단 결석한 채 도봉산에서 비박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온돌을 놓고 텐트를 친 뒤 식량을 공수한다. 남는 시간은 명상과 독서를 하면서 보낸다. 산을 내려온 이들은 유급을 당한다. 그러나 그 뒤에도 문예반실에 숨어 들어가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다방에 모여 앉아 있거나 정수의 화실에서 죽치거나 해질 무렵 소주와 두부김치를 벗삼는다. 더러는 대학에 진학하고, 몇명은 진짜 연애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인호는 퇴학당하고 준은 자퇴한다.

 

뭔가 다른 가치, 아마도 문학에의 꿈을 향해 방황하던 준은 자신과 친구들의 탈선마저도 ‘명문 고교의 어린 신사들 모임, 세상 어느 사회에나 있는 엘리트 놀이,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절대로 자기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기로 결심한 그는 담임 선생님 앞으로 다음과 같은 자퇴이유서를 쓴다.

 

“저는 고등수학을 배우는 대신 일상생활에서의 샘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주입해 주는 지식 대신에 창조적인 가치를 터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학교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합니다. 어른들은 모두가 신사의 직업을 우리 앞에 미끼로 내세우지만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되는 길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 나갈 것입니다.”

 

그후 준은 인호와 더불어 호남선 완행열차에 무임 승차하는 것으로 무전여행을 시작한다. 기차 안에서 충청도의 약재상들을 만나 숙식을 해결하고, 남원·부산·제주·경주를 돌면서 영길 및 정수 등과 합류해 길 위를 떠돌면서 시간을 보낸다. 여행의 끝에 더이상 자신이 어리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된 준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가하다가 잡혀간 감방에서 만난 ‘대위’라는 별명의 부랑노동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따라 고기잡이배, 공사 현장 등지를 찾아다닌다. 그곳 어디쯤에서 그는 개밥바라기별을 본다. 새벽녘 동쪽에서 뜰 때는 샛별로 불리지만 저녁에 보일 때는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은 뒤 개가 밥을 기다릴 때쯤 나온다고 하여 개밥바리기별로 불리는 금성이다. 같은 별이 처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두 작가의 이후 삶의 궤적을 아는 독자로서는 그들의 삶을 되짚어가면서 작품을 볼 수밖에 없다. 황석영은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유신시절 전라도에서 민중문화운동을 하면서 대하소설 <장길산>을 썼고, 민주화 이후에도 방북과 망명·투옥으로 이어지는 긴 세월을 보낸 뒤 성숙한 작가로 안착했다. <개밥바라기별>에 나타난 저항의식은 이후 그의 문학세계를 가늠하는 단초가 된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그러나 1953년부터 코니시 자택에서 운둔생활을 했고, 1965년부터 아무것도 집필하지 않았으며, 1980년부터 인터뷰를 일절 거부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50년대에 영화화를 제안했으나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며, 출간 50주년이던 2001년에도 세상의 기대와 달리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임스 딘을 스타 덤에 올린 <이유없는 반항>(1955년)을 낳게 하고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도 주인공 홀든의 이미지가 여러 번 반복되거나 패러디됐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2001년작)에 나오는 은둔작가 포레스터 역시 샐린저를 모델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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