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슬퍼서 더 아름다운 섬…전남 고흥반도 소록도·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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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3.05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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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식 찾으러 떠나는 길에 비가 내렸다. 목적지는 고흥반도. 5시간을 내리 달려 소록도에 도착했다. ‘가도 가도 천리’라는 그 길인데, 고속도로와 4차선 국도로 편히 왔다. 비는 잦았는데, 섬은 안개에 싸여 있다. 자그마한 해변가에 널따랗게 만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해안선에 편린 같은 조각섬들이 보인다. 오히려 궂은 날씨가 운치를 더한다. 소록(小鹿). 섬 모양이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고흥군이 8경 중 2경으로 꼽아 관광 코스로 내세운 곳. 그런데 소록을 들여다볼수록, 속 편히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섬 입구 도로안내판을 보니 ‘국립소록도병원’이라 쓰여 있다.

 

해안가와 나란히 난 소나무 길을 걸어 병원 쪽으로 갔다. 예전 이 길은 수탄장(愁嘆場)이었다. 한센병 환자와 가족이 한달에 한번씩 얼싸안지도 못한 채 그저 눈길로만 상봉하던 곳. 병원 입구 ‘추모비’엔 1945년 해방되자 자치권을 요구하다 학살당한 원생들에 관한 기록이 간략하게 정리됐다. 그해 8월 84명이 죽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과 착취에 시달린 한센병 환자들의 수난사가 섬 곳곳에 새겨 있다.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외부인에게 개방된 곳은 병원 뒤편의 중앙공원이다. 2만㎡(6000평) 규모. 반송, 백목련, 함박꽃나무, 호랑가시나무, 금목서, 아기 동백꽃, 당종려나무가 곳곳에 심어졌다. 작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수목원의 느낌이다. 장소의 내력 때문에 ‘슬픈 아름다움’ ‘아름다운 슬픔’ 같은 형용모순을 불러일으킨다. 환자 위안장으로 가꾸어오던 산책지였다. 30년대 중반 대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과 대만에서 나무를 들여왔고, 완도 등지에서 기암괴석을 가져왔다. 강제 동원된 환자들은, 이 노동으로써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을까.


외나로도 봉래산 중턱에 빽빽이 들어선 삼나무 군락.
소록도를 말하는 건 ‘시’다. 초입엔 유명한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가 서 있다.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제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제67호)은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곳. 벽에 걸린 시들은 아픔을 직설로 드러낸다. 환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툭하면 감금, 감식, 체벌의 징벌을 받았다. 감금실 안에는 환자 김정균이 쓴 ‘감금실’이란 제목의 시가 붙어있다.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시체 해부를 했던 검시실에는 지금도 수술대와 세척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관 절제 수술이 자행됐다. 이 수술을 하면 부부 동거를 허용했지만, 벌칙으로도 시행되었다. 4대 수호 원장의 명을 거역해 스물다섯 한창 나이 때 ‘단종 수술’을 당한 환자 이동은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라고 썼다. 환자들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오간다. 일군의 학생에게 이곳을 안내하던 한 남성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이곳은 당신이 사는 곳과 마찬가지로 환자들이 사는 집이다. 환자들과 소록도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는 말만 남겼다.


소록도를 나와 77번 국도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외나로도로 갔다. 고흥반도는 변산반도와 제주도를 섞어놓은 듯하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봄날이 오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나로도로 들어가기 전 나로1대교 준공기념탑 쪽에 올랐다. 포두면과 내나로도를 연결한 나로 1대교, 남해안의 해안 경관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고흥반도의 일출·일몰은 유명하다. 외나로도의 봉래산이 일출의 장관을 보기에 좋은 장소라기에 그곳에 짐을 풀었다. 전날 밤 일기예보는 ‘흐리고 한때 비’. 다음날 새벽 숙소 창밖을 내다보니 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봉래산 정상에서 한라산까지 보인다는데. 해가 뜰지 모른다는, 최소한 남해의 수평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산행에 나섰다.

 

일출 예정 시간 오전 7시7분. 7시를 넘기자 운무가 짙어지더니 비까지 내렸다.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을 보겠다는 기대를 접었다. 1시간가량을 얼쩡거리다 산 중턱을 보니 삼나무 숲의 실루엣이 옅게 드러난다. 수묵으로 그린 동양 산수화의 풍경이다. 선경이고 진경이다. 고흥군 예내리 산림 계원들이 20년대 심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주도해 만든 인공림이다. 안내판은 이 숲의 기능에 대해 “심폐기능 강화, 스트레스 완화, 항균 탈취, 진정 작용, 쾌적 효과, 알레르기 및 피부질환 개선, 면역기능 증대에 효과가 있다”고 썼다.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소록도 갱생원 감금실.
삼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푹신한 흙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이 운무에 갇힌 건지, 숲이 운무를 가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원시림의 기운과 나무 향이 가득했다. 하늘로 아득하게 곧게 뻗은 수직의 향방을 보자 무아(無我)의 기분에 다가서는 듯했다. 마을 주민들은 “한여름에 가도 서늘할 정도”라고 했다. 침엽수림에서 많이 뿜어져 나온다는 피톤치드가 흠뻑 느껴졌다. 최고의 삼림욕장인데, 사람의 때가 덜 타 더 좋았다.

 

소록도도 나로도도 나무를 빼곤 이야기하기 힘들다. 고흥반도의 섬들은 나무의 섬들이다. 내나로도의 나로도학생수련원을 둘러싸고 있는 상록수림도 볼 만하다. 바로 옆 나로우주해수욕장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상록 교목인 곰솔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리고 전설 하나. 봉래산에는 ‘용송’이란 이름의 조그만 소나무 군락이 있다. 100년 전 봉래산 계곡에 안식하던 용이 이곳 비경에 도취되어 승천하지 못해 소나무로 변했고, 봉래산 자락에 우주센터가 들어서자 소명을 다한 용이 2003년 태풍 매미 때 승천했다고 한다. ‘사족’에 웃음이 나왔지만 도취하고 오래 머무르고픈 비경임엔 틀림없다.


▲ 길잡이

*서울에서 간다면 최소한 1박2일 정도를 잡는 게 좋다. 당일치기는 무리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하루 다섯 차례 있다. 광주-고흥, 순천-고흥 간 시외버스는 하루 20~30분 간격 배차.

 

*소록도 나로도는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나로도 봉래면에서, 도양읍 녹동항에서 각각 나로도와 소록·금당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이 뜬다. 1~2시간30분 걸린다.

녹동 거북선호(061)844-7007. 나로도
금어호(061)833-6905. 용운호(061)833-7279.

 

*어린이와 함께 가면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을 들를 만하다. 관람료는 어른 3000원, 18세 이하 1500원, 6세 이하 무료. (061)830-8000

 

*고흥군청 홈페이지(www.goheung.go.kr) 메인 화면에서 130쪽짜리 고흥관광 책자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다. 나로도가 있는 봉래면은 삼치와 서대 음식점이 많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비슷비슷한 맛과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친절한 정도야 제 각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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