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소박한 얼굴로 이야기를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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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10.02.18 13:00:09
  • 조회: 11541

 

ㆍ구름도 쉬어가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
ㆍ골목마다 촌스러운듯 개성있는 간판 눈길… 구석구석 돌아보는 재미 쏠쏠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은 ‘간판’으로 뜬 시골마을이다. 시골마을이 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먹거리·특산품으로 뜨고 생태관광으로도 뜨고 ‘1박2일’ 덕분에도 뜬다. 그런데 새로 정비한 간판이 사람들을 매료시킬 줄이야. 간판 제작을 기획한 대학교수도, 군청 공무원도, 마을사람들도 짐작하지 못했다. 옆집 할아버지네 숟가락 수까지 아는 시골 마을에서 선전하고 광고하는 간판이 무슨 대수일까. 대학교수들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공공 미술·디자인 차원에서 발제했고, 마을사람, 공무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간판을 바꿔달았다. 눈썰미 좋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여행 동호회 사람들 순례 리스트에 오르고, 여기저기의 발길도 잦아졌다.


저렴한 요금의 국제전화가 없을까?

이곳 간판의 매력은 뭘까. 지난 3일 백운면 원촌마을에 간판을 보러 갔다. ‘흰 구름이 머문다’고 해서 백운(白雲)인데, 정작 이날은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다. 간판 보러 왔으니 흰 구름은 없어도 좋았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 마을쪽을 봤다. 정작 간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큰길가로 들어가니까 올망졸망 모인 30여개의 가게 간판이 보인다. 소박하면서도 이쁜데, 촌스럽게도 보인다. 간판을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로 그저 낡고 오래된 가게에 붙어 있다.

 

시인 이문재가 ‘간판의 애무, 간판의 유혹, 간판의 범행’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간판을 보지 못하는 날이 죽는 날일 것이다. 간판. 나는 간판에게 관심이 없지만, 간판은 나에게 관심이 지독하다.” 또 누군가는 시인 유치환의 ‘깃발’에 빗대 간판을 두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고, “주변에 널린 악(惡)”이라며 말그대로 악담한 이도 있다. 도시 환경 오염 주범이 대기 가스뿐일까. 크게, 화려하게, 원색으로, 하루 종일 아우성치는 게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내걸린 간판의 속성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이곳 간판에 자꾸 눈길이 가고 관심이 간다. 전자제품으로 치면 경박단소다. 원치 않는 애무와 유혹, 또 속수무책의 범행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생존의 적나라함과 무한증식의 욕망으로 주변을 짓누르고 스스로도 죽고 마는 도시 간판의 운명이 떠오른다.

 

이곳 간판의 힘은 ‘이야기’고 ‘사연’인데, 간판만 들여다봐선 알 수 없다. 옛장터에 자리잡은 ‘육번집’으로 먼저 갔다. 30여년 전 딸딸이 전화기를 쓰던 시절 전화번호가 ‘6번’이어서 ‘육번집’이다. 돼지국밥을 시켰다. 전영수씨(72)가 주문을 받자마자 파와 양파를 그 자리에서 송송 썰고,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 육수에 넣고 끓인다. 전영수·김재순씨(68) 부부의 안방에서 국밥을 먹었다. 벽에 걸린 손자들 사진 옆에 걸린 빛바랜 흑백 사진에 눈길이 간다. “스물세살 때야. 가운데 ‘라지오’(라디오) 메고 있는 게 나여”라며 웃는다. 이들 삶의 소품들이 살갑게 와닿는다.

 

돼지국밥이 짬뽕맛이다. “양념 별 거 없어. 보통 사람 다 넣는 거야. 오래 끓이면 짬뽕맛이 난다”며 좀처럼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채근하니까 “37년 동안 이 자리에서 음식 장사해서 아들 다섯 키워 내보냈어. 70년대에는 자장면, 짬뽕도 팔았지”라고 한다. 짬뽕의 DNA가 손맛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백운면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다. 주변에 광산도 산판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을 마치고 이곳으로 와 허기를 채우고, 취기를 올렸다.

 

건너편 ‘희망건강원’ 간판도 담백하다. 지붕 위에 철판으로 염소와 담쟁이를 만들어 달았다. 주인 주영미씨(44)는 서울에서 귀농했다. 얼마 전까지 마을 ‘간사’를 하며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구석구석 안내했다. 주씨가 강조하는 것도 ‘이야기’다. “간판만 보고 사진만 찍고 가면 마을을 제대로 못 보는 거죠.” 원촌마을이 뜨다보니 다른 지자체에서 시찰을 오곤 한다.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게 우리 간판의 핵심인데,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치수와 글씨체 같은 디자인만 베껴간다”고 했다. 간판만 봐선 알 수 없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이곳 할머니들은 40~50년 전 야트막한 산이나 언덕을 넘어 시집왔다. 전봉준 장군이 백운면 오정마을에서 서당훈장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백운면 주민자치센터는 ‘마실길’을 만든다고 한다. ‘신광재 가는길’ ‘고개너머 백운마을길’ ‘내동산 도는 길’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주씨가 “여긴 볼거리, 체험거리가 별로 없다. 골목길, 논두렁도 걸어보라”고 권한다.

 

간판만 찍고 갈 게 아니라 샅샅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큰길가 ‘백운농협’과 ‘열린마트’ 사잇길 초입에 자전거 모양의 ‘자전거 코스, 산책길’ 입간판이 서 있다. 소가 여물을 먹고 있는 낡은 대형 축사, 수백년 된 듯한 고목 옆을 걸었다. 논두렁 옆 전봇대에 묶어둔 자전거도 보인다. 겨울 날씨 때문일까. 이 모든 풍경이 낡은 흑백사진의 한 장면처럼 정지된 느낌이다. 시든 담쟁이 덩굴이 얽힌 낡은 시멘트 집 지붕과 흙담벼락에 ‘담쟁이 길’이라는 이정표가 붙었다. ‘개조심’이라고 쓰인 대문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더니, 마당에서 개가 짖는다. 백운초등학교 옆 주민자치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도 구경했다. 방과 후 아이들은 컴퓨터와 서가 사이를 오가며 법석이다. 사서 김명주씨(39)가 커피 한잔을 건네 얻어마셨다. 한적한 시골 풍경과 예쁜 간판이 이곳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원촌마을 주민들은 기꺼이 외지인들에게 ‘이야기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이 아니라 삶의 진솔한 이야기, 우리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대의 삶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 말이다.

 

또 하나. “간판이 40, 50년대처럼 생겨 갖고, 해줄라면 하고 말라면 말지 그랬지요. 적막한 마을에 이게 특이하다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 좋긴 허죠. 그래도 먹고사는 게 달라진 게 없어요. 30년 살고 장사했는데 비슷비슷 허요.” ‘덕태상회’ 정옥순씨(61)의 말이다. 갈수록 소외되어가는 시골 마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게 ‘간판’이다. 이곳에 들른다면 구경거리, 사진거리 너머의 ‘삶’도 살펴보면 좋겠다.

 

-길잡이-
*백운면 :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 호남 고속도로로 가다 전주에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로 바꿔 타 진안 IC에서 들어가면 된다.진안읍에서는 30번 국도를 타고 남원·임실 방향으로 가도 된다. 인근 백운면 운교리에는 1850년쯤 지어진 물레방앗간도 있다. 인근 마령면 계서리 계남정미소(http://www.jungmiso.net/)는 공동체박물관이다. 주민들 삶과 밀접한 전시를 주로 한다. 둘러볼 만한 곳인데, 지금은 휴관 중이다. 미리 전화해 시간만 맞으면 주영미씨가 안내도 기꺼이 해준다고 한다. 대중교통편은 안 좋다. 서울호남센트럴시티에서 하루 두번 진안으로 운행한다. 희망건강원 (063)432~4880. 진안궁청 문화관광과 (063)430~2227, 백운면사무소 (063)432~4567, 작은도서관 (063)432~2260.

 

*데미샘 :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다.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다. 백운면 신우너리 팔공산(1151m) 북쪽 기슭의 상추막이골에 있다. 데미샘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샘 주변은 단풍나무와 산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을 오색단풍이 절경이다. 선각산 자연휴양림과도 이어져 있다. 체험의 숲, 명상의 숲이 잘 꾸며져 있다. 전북 산림환경연구소 (063)222~9003

 

*마이산 : 매년 100만명가량이 찾는 마이산에 올라도 좋을 것 같다. 마이산 중턱 인공호수, 저연석 80여기를 쌓아올린 돌탑이 볼거리다. 마이산 주변은 홍삼 재배지기도 하다. 토종 흙돼지가 맛있다. 마이산 남부출입소 주변에 ‘초가정담’ 등 흙돼지 요리집이 몰려 있다. 새끼돼지찜인 ‘애저찜’도 진안의 명물인데, ‘금복회관’이 잘한다고 소문났다. 마이산 도립공원 (063)433~3313, 초가정담 (063)432~2469, 금복회관 (063)432~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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