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아이들 ‘동화 보는 눈’ 어른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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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12.08 11: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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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제운 박사 ‘한국 전래동화의 새로운 해석’

 

“육식동물인 호랑이는 왜 그렇게도 집요하게 ‘떡’을 요구했을까?” “나무꾼의 어머니는 먼 길을 온 아들에게 시원한 물 대신 왜 하필 뜨거운 ‘죽’을 끓여 주었을까?” “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심청이는 왜 ‘맹인’ 잔치를 열었을까?” 교훈으로 가득 찬 전래동화를 읽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스라해졌을 즈음 다시 들여다본 전래동화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노제운 박사(고려대)는 이러한 의문점을 품고 전래동화를 뜯어봤다.

 

이번에 나온 노 박사의 <한국 전래동화의 새로운 해석>(집문당)은 전래동화를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설문 결과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나무꾼과 선녀> <심청> <콩쥐 팥쥐> <흥부 놀부>가 분석 대상이다. 이 동화들은 공교롭게도 친족의 기본 구조 3가지를 망라한다. 즉 ‘형제자매 동기간’(<흥부 놀부> <콩쥐 팥쥐>), ‘혼인관계’(<나무꾼과 선녀>), ‘친자관계’(<해와 달이 된 오누이> <심청>)이다. “어린이가 가족을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가족은 어린이의 성장과 삶을 결정짓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필연적이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 줄거리는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라캉의 표현으로 ‘상상계’(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유아단계)에서 ‘상징계’(언어·법 등 사회적 체계를 아우르는 어른들의 현실)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상상계의 핵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위협적이고 가학적인 어머니에게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어머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라며 꼬드겨서 어머니를 토막 살해하고 어머니 옷을 입은 호랑이는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어머니’로 상상되는 어머니의 모습에 다름없다. ‘떡’은 단순한 음식이라기보다 어머니만 가질 수 있는 거룩한 ‘모성’이다. ‘호랑이 어머니’를 따돌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 동아줄을 타고 승천하는 오누이의 상황은 표면상 죽음이지만, 비로소 어머니와 작별해 당당하게 한 사람의 몫(해와 달)을 맡는 과정이다. 역시 죽음으로써 ‘어머니의 대리인’인 심봉사와 작별해 왕후가 된 심청도 그렇다. 사회와 학교가 <심청>을 권장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효’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지만, 정작 아이들이 <심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무력한 아버지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던 심청이 아버지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만인 앞에서 아버지의 미숙함을 깨우치고, 이를 맹인 잔치라는 향연을 통해 만천하에 알리는 승전담”에 아이들이 통쾌한 승리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반면 <나무꾼과 선녀>에서 나무꾼은 “뜨거운 것을 먹지 말라”는 선녀의 당부를 어기고 어머니가 준 호박죽을 받아먹다가 말에서 떨어져 영영 선녀와 자식들이 있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저자는 “교사와 부모들은 각색본의 주제를 통해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상 아이들이 긴장을 해소하고, 마음을 두는 곳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내밀한 데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주체로 서는 과정이다. 그것은 저자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해직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의 누나인 저자는 “동생을 가둬두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지난 몇해 동안 세상에 초연한 듯 무심하게 살아온 내 자신의 나태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오누이처럼 결국 튼튼한 동아줄의 임자는 노종면”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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