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한국서 가장 높은 성, 충북 보은 삼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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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11.24 14: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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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성벽에 올라서면 까마득한 벼랑 뚫린적 한번 없네

 

삼년산성을 보러 충북 보은에 갔다. 법주사도 둘러봤다. 법주사 하면 1970~80년대 충주를 거쳐 구불구불 이어지던 충청도길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년전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뚫린 뒤 보은도 한나절 코스로 충분하다.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요즘 보은은 교통 요충지다.

 

삼년산성 하면 이름조차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쓴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충북>에는 삼국시대 각축장이었던 충청북도에는 곳곳에 성도 많지만 삼년산성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단한 산성으로 드는 사람이 많다고 나와 있다. 한국에 수많은 산성이 있는데 삼년산성을 이처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막상 산성을 직접 봐야 실감 난다. 높이는 평균 15m, 최고 높이는 22m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폭은 8~10m다. 둘레는 1.68㎞. 두께는 보통 성곽의 두어 배는 되고, 성벽에 올라서면 까마득한 벼랑에 선 듯하다. 성 내부에는 절 하나, 관리사무소 하나뿐이었다. 전쟁 때만 사용했는데 요새란 말이 딱 어울린다.

 

누가 이렇게 큰 성을 쌓았을까. 이곳은 신라의 전진기지였다. 470년 신라 자비왕 때 완공됐다. 병사 3000명이 3년 동안 쌓았다. 삼년산성이란 이름은 여기서 나왔다. 당시엔 신라와 백제가 연합해 북의 고구려를 견제하던 시대다.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가장 국력이 약했다. 백제와의 국경에 삼년산성을 쌓았다. 먹느냐 먹히느냐? 삼국이 운명을 걸고 쟁패를 다투던 시기니 튼튼한 성을 쌓았을 게 분명하다. 보은군 정유훈 학예사는 “신라가 고구려의 산성 축조기술을 배워 이 산성을 쌓으면서 국방력을 키워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발돋움이 됐던 중요한 성곽”이라고 했다.

 

고대의 전쟁이란 진과 진의 대결이며 거점과 길을 확보하는 식으로 치러진다. 마치 바둑처럼 길목을 끊고 막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보은은 문경과 함께 교통 요충지였다. 바둑으로 치면 보은은 대마 같은 자리다. 보은 같은 골짜기가 무슨 요충지냐고? 신라에서 서울 가는 길을 생각해보자.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속도로다. 당시 신라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는 하늘재 정도였다. 하늘재는 지금은 오솔길 정도로 좁은 길이다. 이화령도 일제때 뚫렸다. 보은은 상주에서 청주로 가는 길목이었다. 문화유산해설사 이철래씨는 “보은에만 성터가 14개나 있다”며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속리산 법주사들머리 숲길.

게다가 삼년산성이 유명한 것은 성벽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문을 제외한 북문과 동문, 남문은 좁은 계곡에 성벽을 높게 쌓아 사다리를 놓고 출입했다. 동문은 문을 ‘ㄹ’자로 배치했다. 해서 쉽게 뚫을 수 없게 했다. 밖에만 돌을 쌓고 성 내부는 흙을 쌓아 만든 성이 대부분이었으나 삼년산성은 안팎을 다 돌로 쌓았다. 성에선 옥천까지 보인다. 당시엔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게 분명하다. 삼년산성은 뚫을 수 없는 방패였다. 한 번도 성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은 없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은 <삼국사기>에도 삼년산성만큼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다. 신라 진흥왕은 삼년산성에서 출병,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헌덕왕 때는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이 삼년산성에 진을 친 신라군에게 패해 진압됐다. 고려 태조도 삼년산성을 뺏으려다 크게 패했다. 해서 보은군의 이름도 삼년산성의 이름을 따 삼국시대엔 삼년산군, 삼년군이었다. 고려 때 보령으로 바뀌었다가 조선에 들어와서야 보은이 됐다.


■ 법주사 경내 풍경.
삼년산성은 1971년부터 아직도 복원중이다. 30%만 복원된 상태다. 해설사 이씨는 “복원을 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라고 했다. 70년대 초반 박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시찰하다 보은의 성곽 윤곽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물었단다. 문화유산해설사에 따르면 나라님이 관심을 보이자 1971년부터 서둘러 복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원형대로 복원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신라인들은 삼년산성에 쓰인 화강암을 동쪽으로 4㎞ 떨어진 탄부면 삼장리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서둘러 가져온 화강암은 색깔이 달랐다. 너무 하얘서 빛을 반사했다. 성 아래 보은군 사람들이 눈이 부셔 운전하기 힘들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슬쩍 페인트칠을 했다. 성을 쌓은 방법도 다르다고 했다. 원래는 우물 정(井)자형으로 엇갈리며 성을 쌓았는데 70년대 초반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복원된 산성의 성벽과 과거의 옛산성 모습은 달라보이긴 한다. 삼년산성에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는 아미지(蛾眉池) 옥필(玉筆), 유사암(有似巖)이란 암각도 있다.

 

산성과 30분 거리에 법주사가 있다. 법주사는 553년 진흥왕때 세웠다. 진흥왕이 누군가? 한강을 차지하고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운 왕이다. 순수(巡狩)란 임금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하늘에 제사하고, 정치·민정을 시찰하던 고대 풍습이다. 법주사는 삼국통일을 바라는 신라인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법주사에는 팔상전과 쌍사자석등, 철당간 등 볼거리가 많다. 팔상전은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이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사명당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높이가 22m나 된다. 여기서 잠깐,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떠올려보자. 황룡사탑은 높이가 80m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의 불교건축은 이미 신라 때부터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녹이 슨 당간도 이채롭다. 당간이란 법회가 있을 때 당(幢)을 달아놓는 기둥이며 당이란 부처의 공덕을 표시하는 불가의 도구다. 숱한 전란에도 법주사는 그닥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세속과 떨어져 있음을 뜻하는 속리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행깨나 한 사람들은 법주사 하면 ‘빤하다’고 생각한다. 빤한 여행지도 다시 찾아보면 다르다. 법주사는 70년대부터 이름난 관광지여서 입구는 떠들썩하고 시끄럽다. 주차장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야 법주사의 진가가 나타난다. 들머리의 전나무 소나무 숲은 울창하다. 푸른 숲 사이사이 불그레한 활엽수가 섞여있다. 법주사의 낙엽길은 요즘 참 걷기 좋다.

 

▲여행길잡이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보은IC에서 빠진다. 보은 방면으로 1㎞ 직진하면 전방 막다른 삼거리. 여기서 좌회전하면 보은읍 방향이다. 보은군청에서 1㎞떨어진 곳에 있다. 보은군 내에는 산성 이정표가 많지 않다. 외곽도로변에서 산성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삼년산성 입장료는 없다. (043)542-3384. 법주사는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법주사IC에서 빠지면 된다. 법주사 주차료는 시간에 관계없이 당일 4000원. 입장료는 3000원이다. www.beopjusa.or.kr (043)543-3615.

 

속리산까지 가는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속리산까지 가는 버스도 있고, 청주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속리산행은 하루 8편 이상 있다. 어른은 1만5100원. 청소년 1만600원, 어린이 7600원. 동서울터미널 www.ti21.co.kr.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리산까지 버스가 다닌다. 하루 여섯편 정도 있다. HTTP://CJTERMINAL.ALGIO.NET 어른 75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3800원. 법주사 단지 입구에는 산채식당과 옹심이칼국수집 등 음식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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