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말했어요 “맛있어… 밥 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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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11.23 1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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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선천성 대사질환 하영이 위해 저단백밥이 개발됐다는데…

 

“엄마밥이 맛있어. 아빠밥이 맛있어?” 아버지 윤창민씨(40·CJ제일제당 하나로마트팀 팀장)의 질문에 딸 하영이(5)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밥”이라고 답한다. ‘엄마밥’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전분미로 평소 엄마가 지어준 밥이고 ‘아빠밥’은 아버지 윤씨가 근무하는 CJ제일제당에서 하영이 같은 선천성 대사질환자들을 위해 지난달 선보인 특별한 즉석밥(햇반), 저단백밥이다. 전분미밥은 맛도 없고 굳으면 가위로 잘라야 할 만큼 딱딱해진다.

 

하영이는 선천성 대사질환인 ‘페닐케톤뇨(PKU)’증 환아다. PKU는 신생아 6만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으로 현재 국내에서 200여명이 이 병을 앓고 있다. 체내에 단백질 분해효소가 없어 단백질 성분인 페닐알라닌을 먹으면 그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이 정신지체, 성장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단백질이 들어간 콩·고기·생선·달걀, 일반우유를 못 먹는다. 무엇보다 쌀에도 단백질이 들어 있어 보통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CJ제일제당은 하영이 아빠 윤창민씨의 건의로 저단백밥을 만들게 됐다. 지난 14일 윤씨와 그 가족들을 만났다.

 

-저단백밥을 먹은 후 아이의 반응은 어땠나요.

“하영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맛있어’ ‘밥 더 줘’라는 말을 했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딸에게 ‘맛있다’란 단어의 의미와 행복함을 선물해준 것 같아 정말 감사할 뿐이죠.”

 

-하영이가 PKU 환자라는 건 언제 알았습니까.

“하영이는 우리 부부가 결혼 9년 만에 4번의 시험관 인공수정 실패 끝에 얻은 쌍둥이 딸 중 언니예요. 퇴원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PKU라며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고 하더군요. 큰 병원에 가니 소변에서 쥐오줌 냄새가 나는 게 특징인 데다 희귀질환이라 수많은 인턴들이 몰려들어 신기한 듯 하영이의 기저귀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 겁니다. 국내 유일의 PKU 전문가인 순천향대병원 이동환 교수에게 가서 지금까지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동생이 훨씬 커서 연년생 언니같이 보이네요.

“태어날 땐 동생 하은이보다 몸무게도 400g 더 나가고 머리 둘레도 컸는데 확실히 발육이 느려요. 매일유업에서 생산한 저단백분유가 있어서 신생아기는 무사히 넘겼는데 이유식을 먹여야 할 시기가 되니 먹일 게 없어요. 이유식을 먹어야 치아, 두뇌도 정상적으로 발달하잖아요. 모든 식품의 페닐알라닌 함유량을 계산해 가며 먹여야 하는데 페닐알라닌이 없는 식품도 드물고 함유 여부를 표시해 놓은 제품도 거의 없어 제대로 먹이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럼 PKU 환자들은 무슨 음식을 먹나요.

“환자 가족들이 정보교환을 하고 ‘메디컬푸드’란 곳에서 일본 등 외국에서 수입해온 저단백 전분미, 식빵을 구입해 먹입니다. 손바닥만한 식빵 한 덩이가 4000원이고 일본 즉석밥도 한 개에 4000원이에요. 그나마 워낙 수요가 적고 어떤 때는 통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어떤 가정에선 잔여분이 없어 2주일 동안 아이를 거의 굶긴 적도 있습니다. 국내엔 저단백 밀가루가 없어 국수나 과자도 못 만들어줘요. 아이 먹일 게 없어 저단백제품이 풍부한 선진국으로 이민간 가족도 있을 정도예요. 반찬도 한 끼에 시금치 한 뿌리, 감자나 연근 볶은 것 정도만 먹이죠. 간장에도 콩단백질이 들어있어 무조건 소금 간을 해야 하니 음식의 다양한 식감이나 풍부한 맛의 개념을 모르는 게 안타깝죠.”

 

-어린 하영이가 음식 조절을 잘하나요.

“먹어선 안될 음식마다 ‘이거 먹으면 머리 아파’라고 학습을 시켜요. 단백질 조절을 못하면 금방 뇌로 들어가 지능장애를 일으킨다는 경고를 하는 건데 아직은 잘 따르고 지능도 괜찮습니다. 얼마전 갓 구운 식빵을 샀는데 하영이가 종일 빵을 들고 다니며 ‘아, 냄새 좋아’라면서 킁킁대기만 해요. 어린 게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거죠.”

 

-즉석밥 만드는 회사에 다니면서 저단백밥 개발 건의는 왜 이제야 했나요.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선뜻 말하기 힘들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하영이가 자라서 아빠를 원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마다 우수사원은 대표와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걸 알고 정말 열심히 일해서 드디어 올 2월에 우수 사원 6명에 뽑혔지요. 그때 대표이사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어요. 동료들이 적극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건의 뒤엔 어려움이 없었나요.

“그저 ‘알았다. 검토해보겠다’는 의례적 답변으로 끝날까 걱정했죠. 그런데 김진수 대표님이 ‘힘든 얘긴데 들려줘서 고맙다. 손익에 관계없이 만들어보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날 직접 지시를 해서 8개월 만에 첫 제품이 추석선물처럼 나왔습니다.”

 

-다른 환아들에게도 굉장히 희소식이었겠군요.

“그렇지 않아 속상합니다. 출시를 앞둔 추석 무렵 회사에서 시제품을 환아 가정에 한 상자씩 선물로 주려고 환우 명단을 보고 전화를 하니까 한 어머니가 보내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 아들은 이미 전분미밥에 익숙해있고 그 밥값조차 마련하기 버겁다고요. 사실 저단백 햇반이 개당 1800원이지만, 한 달이면 아이 하나에도 15만~20만원이 드니 저소득 가정에선 부담이 될 겁니다.”

 

-정부나 식품회사에 건의나 제안은 안해봤나요.

“이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50번 넘게 복지부장관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e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요. 각 식품회사에도 페닐알라닌 성분 표시를 제대로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너무 지칠 땐 동반자살도 생각해봤어요. 획기적 정책이나 대단한 예산 지원보다 ‘관심’이라도 기울여줬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연말이면 곳곳에서 멀쩡한 보도블록 뒤집어 새 걸로 교체하는데 그 돈이면 1년 동안 전국에 200여명뿐인 PKU 환자들 밥 걱정은 안해도 돼요. 또 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부에서 저단백 밀가루를 만들어주면 아이들에게 국수나 스파게티도 먹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밥’은 먹도록 해주는 게 진정한 복지국가 아닐까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기적처럼 저단백밥이 나왔는데 혹시 대표님이 바뀌거나 제가 퇴사하면 생산이 중단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또 하영이가 앞으로 학교나 직장에서 잘 적응할까도 걱정스럽죠. 음식을 나눠먹는 기쁨도 모르는데 왕따까지 당할까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준 것만도 감사하죠.” 그 사이, 아이들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 희귀병 부모들 눈물겨운 투쟁 ‘보험적용’ 이끌어내

“여보,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이 이미 고통받은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소?” 영화 ‘로렌조 오일’에서 절망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는 로렌조 아버지의 말이다. 이 영화는 로렌조라는 다섯살 난 아들이 부신백질이영양증(ALD)이란 희귀병에 걸리고, 의사들마저 치료를 포기하자 부모가 나서 치료약을 찾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은 마침내 효과적인 새로운 처방을 발견해냈다.

 

로렌조는 2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처음 진단과 달리 의료인이 아닌 부모가 개발한 ‘로렌조 오일’에 힘입어 30세까지 부모 곁을 지키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로렌조 오일’은 현재 전 세계 의사들이 처방하고 있으며 초기에 투약 받은 아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각종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들의 투쟁이 눈물겹다. 아이를 간호하느라 심신이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비나 약값이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심각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린다.

 

최근엔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비싼 치료약 때문에 고통을 겪던 희귀 난치병 환아의 부모들이 3년여에 걸친 눈물겨운 노력 끝에 정부로부터 ‘보험 적용’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내 사랑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몸속 에너지원에 이상이 와 장기가 파괴되는 미토콘드리아근병증을 앓는 딸(4)을 둔 조주연씨(39·경기 남양주시) 등 환자 가족 30여명은 2006년부터 아이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치료제 ‘데카키논’과 ‘엘칸’의 보험 적용 촉구 탄원서를 청와대와 복지부 등에 제출하고 서명운동을 벌여 이 같은 성과를 이뤄냈다. 그 사이에 환아 10여명은 눈을 감았다. 희귀병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작은 물방울도 계속 떨어지면 언젠가 돌을 뚫는다는 심정으로 아이 간호와 의료정책 변화를 위해 끈질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 만들면 손해…생명줄 잇는 ‘착한기업’은 있다

‘착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만들수록 손해이고, 손익분기점을 넘길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희귀병어린이들을 위한 분유나 즉석밥을 만드는 것은 물론 이들을 위한 캠프와 육아교실까지 마련하는 기업들이다. 매일유업은 10년 전부터 선천성대사 이상 유아를 위한 PKU분유 등 8종의 특수분유를 만들어 일반분유 가격으로 판매해왔다. 또 여름이면 가족캠프를 열어 PKU 어린이들에게 맞는 식이요법을 지도하고 레크리에이션, 전문의들과의 질의응답, 환아 극복수기 발표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남양유업도 난치성 소아간질치료용 액사 특수조제식 ‘케토니아’를 개발·보급하고 있다. 또 저체중아나 미숙아를 위한 특수분유, 알레르기성 질환 및 설사로 고통받는 아기들을 위한 분유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제품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분유는 제조시스템상 한 번에 최소 2만개씩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 특수제품은 생산 후 실제 공급되는 양을 제외한 90% 이상이 폐기된다. 또 제품별로 제한하는 아미노산이 달라 설비를 세척하는 데만 종류별로 4~5시간 걸린다.

 

하지만 이런 금전적 손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람으로 돌아온다. 저단백 햇반을 개발한 CJ제일제당 홍보팀 이은영 과장은 “환아 아버지인 윤창민 팀장이 사내 게시판에 감사의 글을 올린 후 ‘감동적이다. 힘내라. 우리 회사가 자랑스럽다’ 등의 격려성 댓글이 폭주했다”면서 “임직원들 사이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을 공유하고 사원들의 자긍심을 높여 이미 금전적 손해는 만회하고도 남은 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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