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아프리카 학생 서울대 수시 합격시킨 지리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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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11.13 13: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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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이들 꿈이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최근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온 한 학생이 서울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룬 켄트 카마숨바(20)가 다니는 곳은 유명 외국어고등학교나 서울 강남의 소문난 학교가 아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시골 학교다. 서울대 합격도 뉴스였지만 이역만리에서 온 켄트뿐 아니라 전교생을 장학생으로 키우는 이 학교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외고의 존폐 논란이 이는 등 고교 과정이 대학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리산고는 별스럽게 다가왔다.

 

■ 전교생이 한솥밥 식구

경남 산청군 단성면 호리 523번지의 지리산고. 홍시 될 날을 기다리는 주홍빛 감나무가 가로수처럼 유난히 많은 마을의 한쪽에 들어서 있다. 학교는 작고 단출했다. 폐교된 2층짜리 초등학교 분교를 건물로 쓴다. 학년별 1개반으로 전교생 53명이 한솥밥 식구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교사는 모두 11명.

 

“안녕하십니까?” 운동장과 화장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찌들거나 우울한 표정이 아니었다. 눈동자는 반짝였고 발그레한 볼에는 생기가 넘쳤다. 아이들은 새벽 6시에 일어나 학교 마당에서 간단한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멀리 천왕봉을 바라보며 청명한 공기를 머리 속과 가슴까지 채워넣는다. 다같이 아침식사 후 수업을 시작한다. 오후 5시30분 정규수업이 끝나면 야간 자율학습이 있다. 대신 학원이나 사교육이라는 단어는 듣기 힘들다.

 

아이들은 신나 있었다. 3학년 켄트가 명문대에 합격하면서 기가 살았다. 2학년 원현지(17)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켄트 선배는 한국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새벽 2시 넘어서도 도서실에 있었어요”라고 자랑했다. 엄마와 단둘이 부산에 살던 현지는 지리산고에 입학하면서 집에서 떠나왔다. 중학교 때 집에 불이 나면서 살림이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전화기 멀리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신다. 집안 형편 때문에 딸을 먼 곳 학교에 보냈다는 마음에 안타까워하지만 현지는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학교가 정말 좋다. 현지의 꿈은 뮤지컬 배우. 사실 연기, 노래, 춤 등을 배우기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다. 관련 학과는 실기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할 생각도 하고 있다.

 

지리산고는 경제적 여건 때문에 학업을 지속하기 힘든 학생들을 뽑아 교육한다. 설립자인 박해성 교장이 경남은 물론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학생을 추천받고 직접 선발하고 있다. 수업비, 기숙사비는 물론 교복, 참고서까지 학교에서 부담한다. 학생에게선 단돈 1000원도 받지 않는다. 대신 매달 1만원씩 기부하는 500여명의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박해성 교장은 “후원자 중에 부자는 안 계세요. 모두 넉넉한 분들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마음 편히 공부하지 못한 한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고 계시죠”라며 고마워했다. 매달 1000만원가량 운영비가 들기 때문에 모자란 400만~500만원을 모으기 위해 박 교장은 만날 바쁘다.

 

■ 꿈을 찾아 온 아이들, 꿈을 보태는 어른들

지리산고에는 켄트와 마찬가지로 꿈을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 학생들이 더 있다. 2학년에 다니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몽(19)과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누르술탄(17)이다. 지난해 3월 입학해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켄트와 함께 따로 수업을 받는다. 교실에서 만난 아몽과 누르술탄은 수줍어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기분 좋아했다. 서울대 합격 덕분에 요 며칠 언론의 취재에 시달린 켄트는 몸살이 난 듯 목도리를 감싼 채 “감기에 걸렸어요”라며 같은 교실에 앉아있었다.

 

축구와 걸그룹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아몽은 외교관이 꿈이다. 아몽은 한국에서 도움받은 것처럼 자신의 나라를 돕고 나중에 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누르술탄은 “가족과 헤어져 말이 통하지 않는 데서 지내는 것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무슨 음식이든 김치랑 먹어야 진짜 먹은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내전이 잦은 탓인지 군인이 꿈이던 누르술탄은 지리산고에서 공부하며 희망이 바뀌었다. 경영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돈을 많이 벌어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누르술탄과 아몽은 공부 외에 인상 깊은 일을 묻자 지리산국립공원과 동네 청소하기, 할머니들 어깨 주무르기 등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손으로 어깨 주무르는 시늉을 하며 “할머니들 좋아해요, 그래서 우리도 좋아요”라고 했다.

 

지리산고는 일반 인문계 특성화 고등학교로 다른 인문계 학교와 수업 내용이 같다. 그런데 특별한 한가지가 더해진다. 매주 금요일 오후는 봉사활동으로 채워진다. 몇명씩 조를 이뤄 활동한다. 입시나 취업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스펙’ 쌓기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봉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박 교장은 “우리 애들은 점심 때 맛있는 떡과 과일이 나오면 남겨뒀다가 봉사 다니는 어르신들께 갖다드려요”라며 은근히 자랑했다.

 

‘조금은 과장된 얘기 아닐까’ 싶어 오가는 학생들에게 살짝 물어봤다. “정말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별거 아닌데도 고맙다고 할머니들이 자주 우세요. 저희 볼 때마다 커피 끓여먹으라는 ‘커피할머니’(90)도 계신걸요.” 학생들은 매달 1000원씩 거둬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작은 정성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순환은 지리산고를 찾아오는 자원봉사 교수, 학생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서울대 2학년 이동원씨는 고향인 진주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노인요양시설에 근무 중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금쪽 같은 주말과 휴가를 고스란히 지리산고에서 아이들과 보내고 있다. 지난주 수요일에도 주말과 맞바꾼 짧은 휴가를 틈타 학교에 와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인데 학교와 기숙사만 오가니까 답답할 수 있잖아요. 친형, 친오빠처럼 만만하게 고민상담도 하고 영어 공부도 도와줘요. 가볍게 몇 마디 해준 조언을 메모지에 깨알같이 적어 책상에 붙여놓은 것을 볼 때면 흠칫 놀라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껴요.”

 

켄트가 서울대에 합격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지만 이동원씨도 한몫을 했다. 까다로운 서류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신경쓸 일이 많았다. 그는 “내 나름의 도전이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자신 또한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무명의 시골 학교’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진주 동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했어요. 재수생 시절에는 한 과목당 300만원짜리 과외를 받는 강남 재수생들과 경쟁하기도 했어요. 지역에서 공부할 때는 저 역시 소외감도 느꼈죠.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지나온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소외 받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 배움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죠. 이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배움이 무엇인지, 교육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 같아요. 여기 아이들은 문제집이 부족하고 휴대폰, MP3는 없지만 다양한 꿈을 꾸고 자신의 삶을 그려요.”

 

오후 4시30분쯤 학교 운동장에서 10여명의 아이들로부터 배웅을 받는 한 노교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남 고성에 살며 1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로 찾아오는 서강대 김열규 명예교수였다. 논술 지도를 마친 김 교수는 학생들이 숙제로 쓴 원고뭉치를 들고 나서는 길이었다. 하얀 원고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적힌 글 위로 제목이 보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기만 다녀가면 한 살씩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니 이 아이들은 참 행복합니다. 한국이 놓쳐버린 교육이 여기에 있어요. 요즘 교육은 주로 ‘대가리’ 교육 아닙니까. 가슴, 마음 교육이 없어요. 고등학교는 아예 대학의 노예가 됐죠.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간다면 인간은 없고 기계만 있는 사회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대중의 호기심을 ○○○아 찾아간 곳이었지만 지리산고는 담담히 배움과 나눔에 대해, 교육의 소중함에 대해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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