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희미해지는 ‘신당동 떡볶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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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레이디경향[http://lady.khan.co.kr]
  • 09.11.06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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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젊은 세대들 소문 듣고 왔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평점은 보통’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 찾아간 곳은 신당동 떡볶이집.” DJ DOC의 ‘허리케인 박’ 노랫말에도 언급될 정도로 신당동은 ‘대한민국 떡볶이 1번지’로 손색이 없다. 풍족하지 않던 시절 신당동 떡볶이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1970년대 떡볶이 가게가 하나 둘씩 모여 조성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전통과 추억’의 거리로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거리마다 떡볶이 노점상이 넘치고 ‘죠스 떡볶이’, ‘조폭 떡볶이’ 등 유명 떡볶이집이 생겨나 경쟁이 심화됐다. 게다가 떡볶이 주 소비자인 10~20대의 입맛이 변하고 요구사항도 까다로워졌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더 이상 사람들은 ‘추억’만으로 신당동 떡볶이를 찾지 않는다.

 

■ 추억을 먹다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오후 2시. 100m 남짓되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한산했다. 골목 어귀에 세워진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라는 간판이 없다면 단순히 떡볶이 가게가 모인 골목쯤으로 보일 법하다. 골목을 따라 양옆으로 떡볶이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각자 큼직한 간판을 걸고 매스컴에 보도됐던 가게 사진과 기사들로 가게 유리를 가득 채웠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집은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다.

백발의 할머니가 다소 어눌한 목소리로 “고추장 뭐 쓰냐고?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고추장 비밀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고 하던 방송광고. 이 덕에 마복림(89) 할머니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고추장 떡볶이의 ‘사실상 원조’격으로 알려진 가게는 문을 연지 50년이 넘었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역사는 마 할머니로부터 시작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마 할머니는 동네 중국 음식점 개업식에서 자장에 빠뜨린 떡을 먹고서 춘장과 고추장을 섞은 양념을 고안했다. 그렇게 마 할머니는 당시 개천이 흐르던 신당동의 어느 다리 위에서 연탄 화덕으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1950~1960년대. 마 할머니의 떡볶이 맛은 점차 입소문을 탔다.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싼 가격에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식으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게는 번창했다. 다리 위 노점에서 시작한 가게는 살림집 한 구석으로, 다시 작지만 독립된 가게로 확장됐다. 1970년대 들어서 손님이 몰린다는 소문을 타고 신당동에 떡볶이 가게가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 조성됐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시작이 된 마 할머니는 더 이상 가게에 없다. 원체 고령인 데다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게 입구에 붙어 있는 ‘이제 며느리도 알아요’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맏며느리 전은경씨(66), 둘째 며느리 김선자씨(56), 셋째 며느리 이순자씨(56)가 변함없이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 둘째 며느리 김씨는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단골을 꼽았다. 김씨는 “학생시절에 맛본 떡볶이를 잊지 못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찾는 단골이 많다”고 전했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마 할머니 혼자 장사하던 시절에 하루 종일 혼자 가게를 본 마 할머니가 피곤에 지쳐 잠시 조는 사이 짓궂은 학생들이 떡볶이를 몰래 ‘쌔벼’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때 학생들이 어느덧 부모가 돼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는 단골이 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경수씨(46)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추억이 참 많다”면서 “학생 때 용돈을 모아서 오던 기억에 종종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떡볶이와 추억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2NE1의 <I don’t care>를 들으셨습니다. 여러분이 떡볶이 드신다고 저한테 신경 안 쓴다는 뜻이죠. 괜찮습니다. 나도 이게 편해요.” 느끼한 목소리의 디제이(DJ)가 입을 열자 테이블에서 웃음이 터졌다. 신당동 떡볶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억 DJ. ‘아이러브신당동’에는 아직까지 DJ가 존재한다. 김상우씨(39)는 현재 가게 공동사장이자 한때 신당동을 주름잡았던 DJ ‘허리케인 박’ 박두규씨(47)와 함께 DJ 박스를 책임지고 있다. 김씨는 신당동이 고향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20세 때 신당동을 떠났다. 그리고 5년 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일거리를 찾아서 왔다”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으로 다시 와서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신당동 떡볶이에 대한 추억이 많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몰려와 떡볶이를 먹었다. 당시에도 화덕에서 만든 떡볶이는 큰 인기였다. 점심 밥을 조금 남겨와 떡볶이에 비벼 먹었다는 김씨. “지금 떡볶이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건 당시 우리 때문에 생겼을 것”이라며 추억에 젖는다.

 

■ 희미해지는 추억
가게 구석에 자리 잡은 DJ 박스는 엘피(LP)판과 음악기기로 가득하다. 추억이 가득한 이곳에도 시련의 바람이 불었다. 신당동 떡볶이는 50년 가까이 변하지 않았지만 주 소비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10~30대는 피자나 햄버거 등 다른 간식에 길들여졌다. 입맛은 까다로워졌고, 요구사항도 다양해졌다. 게다가 신당동 떡볶이에 대한 추억마저 없다.

 

광진구에서 이곳까지 떡볶이를 먹으러 왔다는 서진숙씨(35)는 “맛만 본다면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다”면서 “고향(대구)의 신천 떡볶이가 훨씬 맵고 맛있다”고 시큰둥했다. 동행한 성정희씨(33)는 “즉석 떡볶이라 그런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서 “값에 비해 맛이 별로여서 다시 올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즉석떡볶이가 낯설고,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생겨나고 있다. 맛있는 떡볶이 집만 골라 다닌다는 최현진씨(25)는 “신당동에 추억이 있는 어른들은 모르겠지만 오로지 맛만을 보는 우리 세대에게 신당동 떡볶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면서 “종로나 강남의 노점 떡볶이나 홍익대 앞의 ‘조폭떡볶이’가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불친절’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여자친구와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찾은 이병민씨(22)는 “가게가 넓어서 그런지 손님에게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면서 “사람이 많은 주말엔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여자친구 최혜진(22)씨는 “유명하고 장사가 잘되니깐 그런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 상인들은 고객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다. 신당동 떡볶이 상회의 전미숙씨(43)는 “인건비가 비싸다보니 학생이나 조선족을 종업원으로 고용했다”면서 “이게 문제였다”고 시인했다.

 

넓은 홀을 주인이 다 관리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전씨는 “종업원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더 좋은 서비스 제공에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러브신당동’ 공동사장인 이윤근씨(54)는 “시대가 변하면 입맛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눈물 떡볶이(매운 떡볶이), 치즈 떡볶이, 해물 떡볶이 등을 개발해 손님의 입맛을 쫓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가게 메뉴를 보면 해물·자장·치즈 떡볶이는 물론 닭발 등 안주거리도 생겼다. 이씨는 “줄어드는 고객의 마음을 잡겠다는 상인들의 의지”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외면당하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더 이상 추억으로만 ‘대한민국 떡볶이 1번지’라는 명성을 이어갈 수 없다. 추억과 변화의 기로에서 지금의 명성을 이어갈지, 하나의 빛바랜 추억이 될지 ‘며느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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