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거운인생/건강한실버] 노인의 성에 대한 편견은 인권침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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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사회학 박사 임춘식
  • 09.11.04 09:48:55
  • 조회: 1179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사랑에 열정적인 ‘만만찮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 조르바의 할머니는 팔순이 넘었음에도 토요일 밤마다 입술 단장을 하고 가르마를 곱게 타 늙은 육신을 꾸민 후 어린 처녀처럼 자신을 유혹할 남자를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조르바는 할머니를 놀려댔고 비밀이 들통난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간다. 자신을 끝장낸 조르바를 “영원히 저주 하겠다”면서 말이다. 조르바의 할아버지도 100세가 넘은 나이에 젊은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을 남겨 놓고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 노인이야말로 ‘순결주의’에 점령당한 ‘최후의 식민지에 사는 것이’가 아닐까. 우리나라 노인은 ‘깨끗하게 살다 조용히 죽기’를 강요받는다. 자식에게 외면당하는 정신적인 현대판 고려장, ‘원초적 본능’마저 참아야 한다는 ‘노인 순결주의’에 에워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외롭고 노인은 더 외로울 텐데 젊은이가 이성을 그리워하면 ‘사랑’이고 노인이 그러면 ‘주책’인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 현실은 조르바의 주변 상황과 동떨어진다. 노인에게 성적인 욕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거나, 설령 노인의 성적 욕구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욕구 충족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플라톤(B.C.427~347)의 ≪국가론≫을 보면,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 관계를 맺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마치 거칠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친 것처럼 거기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이 가련한 비극 작가처럼 우리의 늙은 부모와 조모는 성욕을 잃었고 바로 그 덕에 더 편안해졌을 것으로 젊은 사람들은 상상한다. 그리고 무성(無性)의 존재로 퇴화하는 것이 노인에게는 당위요 미덕이라고까지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더 나아가 성욕 뿐 아니라 일체의 탐욕을 노인들의 전형에서 제거하는 집단적 관성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2000년에 상영된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처럼 무욕과 인내의 존재여야 노인은 감동적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죽음 직전에 세상에 기부하거나 수십 년 ‘수절’하면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희생적인 노인, 이기심과 쾌락과는 철저하게 거리가 먼 노인이 숭배의 대상일 뿐이다.


소년의 욕심은 ‘야망’이고 노인의 욕심은 ‘노욕’으로 폄하된다. 그렇게 열정이나 욕망 대신 침묵과 희생이 노인들의 덕목이라고 믿는 세상의 관성은 노인들에게는 분명 압력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물리적 폭력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노인에 대한 성적 학대나 성적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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