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농촌살이 행복하냐고요? 결코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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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9.14 10: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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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골로 내려간 웹디자이너…‘지리산 닷컴’ 운영 권산·이언화 부부

 

권산(46)·이언화(42)씨 부부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 산다. 부산 토박이인 부부가 구례에 온 것은 2006년 6월의 일이다. 이곳에서 부부가 뭘 하며 사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작은 텃밭을 가꾸기는 하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는 않는다. 남편은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을 운영하면서 스스로를 ‘이장’이라 부르고, 아내는 구례에서 생산된 우리밀로 빵을 굽고 가끔 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고 빵집을 차려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얼마전 책 <힐링브레드>를 펴냈다. 우리밀 통밀빵 조리법을 모은 책이다. 그의 블로그 월인정원(www.ecobread.com)에는 더 많은 조리법과 구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은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그저 시골생활을 예찬하지만은 않는다. 그보다는 농촌의 적나라한 삶과 물신주의 앞에 무너져가는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한다.
 
3년 전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권산·이언화씨 부부는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으로 지역공동체에 튼실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정체가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음성은 신중했다. “인터뷰를 한다면, 그건 지리산닷컴 홍보를 위해서일 겁니다.” 아내는 설명했다. 자신들의 삶이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농촌살이로 비치는 것이 싫어 그간 인터뷰를 거절해왔다고. 부부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지리산 자락에 움트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초가을날이었다. 부부와 만난 곳은 300년 된 고택 운조루 앞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 입구에는 ‘지리산닷컴’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작은 사무실 안은 여러 대의 컴퓨터로 꽉 차 있었다. 부부의 본업은 웹디자이너이다. ‘시골에서 웬 웹디자인?’이라 반문할 이들이 꽤 있겠지만, 오히려 이곳에서 이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상당하다. 그러나 이들이 지역의 일감을 계산에 두고 구례행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럴 정도로 셈속이 빠르지도 않다.

 

1980년대 미대를 다니며 알게 된 부부는 민중미술 현장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웹디자인을 배웠다. 자신들이 아마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최고령 웹디자이너’일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한 이들은 지금도 굵직한 미술 전시의 홈페이지 디자인을 한다. 구례로 내려온 지 만 3년이 지났는데도 다행히 아직까지 일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건 가능하다는 웹디자인 작업의 특성이 부부에겐 여러모로 보탬이 되었다. 구례가 아닌 서울에서 들어오는 일들이 부부의 생계를 꾸려가는 방편이 된다.

 
뭘하고 사냐고요? 농사는 텃밭 뿐이고 생계는 서울서 준 일감입니다자연과 사람, 소통이 있는 독립미디어 꿈꿔보지만…구례로 온 뒤 일을 많이 줄이기도 했고 일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서울에 있을 당시에는 5년 동안 200개가 넘는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부부는 일에 몰두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 낮밤이 바뀐 생활로 인해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이씨는 오른팔이 마비됐다. 물리치료도, 약도 소용 없었다. “육체적으로 막바지에 온 느낌이 들었어요. 몸에 새겨진 여러가지 것들이 치유되지 않으니 몸도 치유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다 더 땅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목도 가누지 못할 만큼 심각하던 몸은 요가를 하면서 호전됐다. ‘이 좋은 걸 주변 사람들과 나누자’고 생각하며 내친 김에 요가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먹거리에 관심을 돌린 것도 이때였다. 살림에는 문외한이던 이씨는 빵을 유난히 좋아해 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제빵교육과정을 수강하며 빵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다.

 

“요가를 하고, 제빵을 배우면서 먹거리에 대해 좀더 신경쓰게 됐죠. 백설탕, 밀가루, 트랜스지방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빵을 만드는 데 꼭 이 재료들을 쓰더군요. 우리밀로, 설탕 대신 꿀을 넣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선생님께 여쭸다가 ‘그건 빵이 아니다’라는 면박을 받았죠.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의문이 깊어졌습니다. 수입밀로 만든 통밀빵은 있어도, 우리밀 통밀빵은 없더군요. 그러던 차에 구례가 우리밀의 본산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권씨에게도 계기는 있었다. 젊은 시절, 시간이 날 때면 지리산 자락을 서성였던 그에게 2000년 초에 지리산 자락에서 지리산닷컴을 만들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구례에서 농사를 짓는 선배였다. 1990년대 말 지리산닷컴이라는 근사한 도메인을 사뒀던 선배는 권씨에게 지리산에 관한 포털사이트 역할을 하는 지리산닷컴에 관한 구상을 털어놓으며 운영을 맡아달라고 했다. 권씨는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선배는 “구례에서 직접 살아봐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고집을 피웠다.

 

“2005년 봄이었죠.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쳇바퀴 굴리듯 일을 하지 않으면 서울에서의 소박한 삶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서울의 삶은 싫든 좋든 소비의 삶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 구조를 거부하려 해도 끌려갈 수밖에 없지요.”(권산)

 

권씨의 결심으로 구례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정확히 1년 후, 부부는 구례로 이사를 했다. 1년간은 신나게 놀았다고 했지만 이들이 자연스럽게 구례와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지리산, 섬진강 자락 곳곳을 둘러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이 땅의 색을 익혔다. 부부는 서서히 구례에 스며들었다.

 

■ 커뮤니티와 디자인의 접점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마을공동체에 속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보면 정말 몸이 모자랄 정도지만 바빠도 재미가 있어요.” 처음 내려와서는 살 집을 구하지 못해 구례읍 내에서 2년을 살았다는 부부는 읍내살이에 대해 서울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공동체 정서가 유달리 강한 시골에 산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로 이사하면서부터다. 젊은 부부가 마을에 들어오자 동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농사는 짓지 않고 아내는 밥 대신 빵을 만든다고 반죽을 조물락거리고 남편은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쏘다니니 연세드신 동네 어르신들의 이목이 집중된 것.

 

권씨는 올 봄부터 이곳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다. ‘지리산 장수마을’이라는 제호를 단 마을신문은 계절에 한 번 발행된다. 상사마을은 어느 곳보다 마을 청년회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청년회 산하 홍보위원회에서 대략의 방향은 정하지만 글과 사진, 편집, 디자인,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은 권씨의 손을 거친다. 컬러 인쇄에 산뜻한 디자인은 기존 마을신문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았다. 신문 제작을 위해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미는 그를 동네 주민들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때 좋은 인물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법. 창간호에서 마을 지도를 선보였던 그는 여름호에서는 살뜰한 상사마을의 모내기 풍경을 담아냈다. 그는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 구례군 전체에서 쓰는 피아골 단풍 사진 대신 아기자기하게 동네 사진을 집어넣었고, 마을 사람들도 모르던 마을의 역사를 살펴 이를 마을 지도 속에 복원하기도 했다. 마을 안에 살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살아있는 ‘커뮤니티 디자인’ 사례인 셈이다.

 

하나 아쉬움이 더 많다. 아직 그는 지리산에서, 상사마을에서 힘없는 개인일 뿐이다. 한여름이면 열기 때문에 앉아 쉴 수도 없게끔 유리로 마감된 버스정류소나 마을 지도의 틀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행정기관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과 협의해 좀더 마을의 색깔을 반영하는 정도뿐이다. “지자체에서, 마을에서 기본 방향을 정했는데 그건 틀렸으니, 하지 마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그게 싫다면 제가 지자체 단체장이 되는 수밖에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마을 주민으로서 제 발언권을 확대해가는 방법밖에 없지요.”(권산)

 

그래서 관(官)에서 손대기 전에 먼저 구례의 유명 문화재인 운조루의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획일적인 버스정류장에 다소 변화를 주고, 뜻있는 지인들과 함께 사진집 <구례, 하늘에서 내려다본 우리마을> 등을 기획하고 편집디자인 작업을 도맡았다.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지리산닷컴을 통해 텍스트화되고, 시각이미지로 기록된다.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 아니지만, 권씨가 지금 가장 힘을 쏟는 일은 바로 지리산닷컴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언뜻 개인 홈페이지처럼 보이는 지리산닷컴은 5000여명의 회원을 가진 커뮤니티. 아직까지는 2007년 10월 사이트 개설 이래 평일 아침마다 발송되고 있는 ‘지리산 편지’를 위주로 구성돼 있다. 그날의 편지와 관련된 상세한 이야기는 ‘큰 산 아래 이야기’에 실린다. 그날그날 지리산의 이미지, 편지에 함께 담길 글을 위해 그는 바삐 몸을 움직여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사진으로 이를 기록한다.

 

“궁극적으로는 구례뿐 아니라 지리산 권역을 아우르는 독립미디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직은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오프라인 쪽이 활성화되면 좀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네요. 조만간 사무실이 마련되고 나면, 거기에 지역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 지리산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만들어볼 작정입니다.”

 

자연과 사람, 소통을 모토로 내세운 독립미디어를 꿈꾸는 만큼 지리산닷컴은 그저 지리산의 아름다움, 한유한 전원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사진일지라도, 종국에 그는 빠른 속도로 물신화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 무책임한 관치행정을 비판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녹색농촌체험마을, 행복마을, 한옥마을 등 다양한 이름으로 2000년대식 ‘새마을운동’이 곳곳에서 이뤄지면서 지역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물신주의의 망령은 도시뿐 아니라 지역에도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제초제 없이 무농약으로 키운 우리밀의 한 해를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판매를 중개하면서 그는 한국의 식량수급 실태와 먹거리 안전을 우려했다.

 

그러나 무농약 밀가루가 이틀 만에 200㎏이 팔려나갔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제초제를 뿌리지 않을 테니 밀가루를 팔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권씨는 “돈이 되니 ‘이렇게 하라’고 지역 경제의 현안을 해결하는 일은 지리산닷컴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방식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지역에서 벌이는 이런저런 일들, 디자인 작업들이 과연 농민들에게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는지 말이다.

 

지리산닷컴은 결국 도시와 시골, 아니 200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다수가 따르는 삶의 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닷컴의 홈페이지 상단에 쓰여 있는 ‘행복하십니까?’는 도시에서 편지를 받아보는 이들에게만 던지는 화두가 아닌 것이다. “도시와 시골, 양쪽에 똑같이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맞는 것이겠죠.”

 

귀농·귀촌이 더 이상 화두가 되지 않는 시대, 부부는 비장한 결심과 각오를 다져 농사를 짓는 대신 자신들의 능력이 소용되는 일을 찾아 지역공동체에 뿌리를 내렸다. 웹보다 더 복잡다단한 관계의 망으로 얽힌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디자인을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삶과 디자인은 그렇게 현실 속에서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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