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영화 ‘워낭소리’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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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레이디경향[http://lady.khan.co.kr]
  • 09.09.07 11:35:57
  • 조회: 432

 


여덟째 아들 최명진씨가 부르는 사부곡思父曲

올해 초, 한 편의 작은 독립영화가 전국을 휩쓸었다. 경상북도 봉화의 한 노부부와 그들과 함께 세월을 헤쳐 온 마흔 살 늙은 소가 주인공인 영화 ‘워낭소리’는 ‘독립영화’라 부르기 멋쩍을 정도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것.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평온했던 주인공들의 일상에 한여름 갑작스러운 폭우처럼 쏟아졌던 관심들. 그 수많은 시선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지금, 할아버지와 소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그냥 그렇게’ 묵묵히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이들 가족의 초대에, 얼른 봉화로 길을 나섰다. ‘뎅, 뎅, 뎅’ 울리는 워낭소리를 따라서.

   

영화 흥행 후 달라진 생활, 여전하신 부모님
영화 ‘워낭소리’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오래된 농촌마을의, 그 옛날 우리 부모님의 고단한 삶의, 어렴풋한 어린 시절 기억 속 한 장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논과 밭,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없이 평생을 헌신하는 소, 무심하기만 한 자식들,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인 손, 끝도 없이 쌓인 일거리, 느릿하면서도 고된 일상들. 아름답고 아련하다기보다는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오히려 씁쓸한 풍경이다.

 

실제로 찾아간 경북 봉화의 최원균(82) 할아버지 집은 그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개봉 이후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을 위해 세워진 각종 팻말과 안내문뿐. 말끔하게 프린트된 팻말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습이 낯설 정도다. 문 밖까지 마중 나온 최명진씨(39)가 우리를 반긴다.

 

“아버지는 밭에 나가 계신데, 오면서 못 뵈었나요? 지금은 아마 소 먹일 꼴을 베고 계실 거예요. 아침 7시 반에 소달구지 타고 나가셔서 여태껏 일하고 계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어제 폭우로 논둑 무너진 거 손보는 중이세요. 자식들이 ‘이제 농사 그만 지으시라’고 그만큼 부탁을 드려도 들은 척도 안 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렇게 일만 하세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하듯,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도 평생을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았다.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풀죽을 끓여 소에게 먹이고 아침 식사를 하고 밭으로, 논으로 나가 농사를 짓고 그리고 날이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소와 함께 일해 먹이고 공부시킨 아홉 남매가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틈만 나면 “그만 좀 쉬시라”며 성화다. 자식들 모두 제 앞가림 충분히 하고 있고, 9남매가 앞 다투어 물심양면으로 부모님을 챙겨드리는데도 “내 새끼들 먹을거리는 직접 챙기겠다”며 몸을 움직이는 부모님의 고집에 9남매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사실 영화 ‘워낭소리’가 개봉하고 한동안 9남매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자식들이 아홉이나 된다면서 어떻게 부모님을 저렇게 고생시킬 수 있냐”는 질책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효자·효녀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그만큼 정성을 다하는 편이었기에 한편으로는 무척 억울하기도 했다고 토로한다.

 

“처음 이충렬 감독님께서 먼저 보라고 영화 편집본을 주셨는데, 저희 남매들이 모여서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속상하기도 했고요. 큰형이 감독님께 전화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이 영화 나오면 정말 저희 손가락질당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영화 전개상 어쩔 수 없었다며 나중에 인터뷰 등을 통해서 꼭 진짜 모습을 밝혀주겠다고 약속하시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영화제에서 신인상 타시고 처음으로 했던 말도 ‘9남매께 죄송합니다’였어요. 차츰 나아지긴 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피해도 많이 봤어요.”

 

실제로 최명진씨의 막내누나는 요즘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남 울진에서 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해왔는데 영화 개봉 이후 많은 손님들이 발길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후덕한 인심과 손맛 덕에 꽤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하루 매출이 그 전의 절반도 안 된다. 손님 대부분이 뜨내기가 아니라 그 부부를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장사 잘되면 뭐 하나, 아버지 보약도 한 재 안 해주나 보네”, “쉬는 날 놀지 말고 친정 가서 일 좀 도와드려요”라며 말들이 많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나아지질 않으니 돈은 둘째치고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많이 느낀다고.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가 흥행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알려지면서 적잖게 유명세도 치렀다. 평일에는 30~40명, 주말이면 70~80명씩 찾아온 관광객들이 노부부가 땀 흘려 기르는 농작물을 망쳐놓는 것쯤은 부지기수. 특정 단체에서 귀가 어두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가 자신들의 영리에 맞게 도용해 쓰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외딴 곳에 떨어진 집에 낮이고 밤이고 불쑥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안에 떠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영화 제작을 맡았던 PD가 자신의 블로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생활 방해를 자제해달라’는 호소문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가 자주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데, 한번은 관광객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데 와서는 먹던 음료며 과자를 ‘드시라’며 두고 가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두 개를 꺼내서 권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놀러 오셨으면 조용히 둘러보시고, 자연스럽게 사진 찍고 가세요. 우리 아버지 남 먹던 음식 받아먹는 사람 아니니까 이러지 마세요’라면서 막 큰소리를 냈어요. 또 한번은 사진 찍는 분들이 오셔서 아버지가 사진 안 찍겠다고 하시니까 돈 만원을 주머니에 찔러주셨다지 뭡니까. 그러고는 돌아가서 인터넷에 ‘할아버지가 돈 받고 사진 찍어준다’는 글을 올린 거예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형이랑 그걸 보고 어찌나 기가 막히고 화가 나던지요.”

 

현재 최원균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과 소가 묻힌 무덤, 주변 밭과 논 등은 봉화군의 주도로 관광 코스로 개발될 예정이다. 주차장이 생기고 테마 공원도 들어서기로 했다. 이웃 할아버지들이 관광해설사로 나선다. 앞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는 일. 최명진씨가 가족을 대표해 한 가지만 부탁하려 한다. 부모님에게 예의를 갖춰달라는 것, 그리고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지 말아달라는 것. 영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얻은 것도 많고 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도 많다. 다만, 일부 잘못된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것을 사람들이 헤아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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