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소설가 은희경 “무거운 문학 벗고 가벼워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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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8.18 09: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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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4년만에 장편 펴내

한 원로 작가와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뜬금없이 그가 물었다.


“그런데 요즘 은희경은 뭐한대?” 요즘 소설가 은희경(50)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1년에 한 권씩의 책을 낼 정도로 부지런한 그녀가 평소보다 조금 긴 쉼표를 찍고 있다. 신경숙, 공지영과 함께 ‘여성 작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은희경이었다. 신씨와 공씨가 요즘 서점가에 나란히 이름을 장식하고 있어 그녀의 소식이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은씨는 2007년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펴냈지만 장편소설은 2005년 <비밀과 거짓말>이 마지막이다. 태풍이 데려온 비구름이 장대 같은 비를 쏟아내던 날,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은씨는 근황을 묻는 기자가 무색하리만치 새로 시작할 일들에 대한 말을 쏟아냈다.

 

“오는 9월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커뮤니티에 새 장편소설을 연재하기로 했어요. 4년 전부터 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잘 안 풀려서 고생했습니다. 이 소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연재를 결심했어요.”지난 4년 동안 은희경을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15년간 스스로 쌓아올린 작가로서의 무거움이었다. 그래서 그의 요즘 화두는 ‘가벼움’이다. “작가로 데뷔한 지 15년 됐는데, 제 자신이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문학은 기본적으로 무거우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가르치거나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이미 성취한 것들을 깊게 천착하는 단계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제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썼던 그 서툴고 불안하고 미숙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 은희경의 ‘첫 소설’은 힙합을 좋아하는 17살 소년의 이야기다. 은씨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남자들의 소년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목은 ‘소년을 위로해줘’. 남자다움을 강요하고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에 대한 반대로서의 ‘소년성’에 관한 글이다.

 

“아들이 즐겨듣는 힙합 노래를 듣고 제가 경직돼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정제되지 않은 형식으로 쏟아내는 걸 듣고 진실된 힘과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소설은 굉장히 정제된 스타일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요.” 새로운 문학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한 은씨의 뒤척임은 지난 몇년 간 그녀가 꾸준히 발표해 온 단편들에서도 그 징후를 읽을 수 있다. 그동안 은희경 소설의 키워드는 냉소와 위악이었다. 특유의 삐딱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순과 인생의 비의를 심각하지 않은 문장으로 예리하게 드러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쿨하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시선은 많이 둥글어지고 덤덤해졌다.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최근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세상의 비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고독하게 자신의 좌표를 찾아 헤맨다.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로써 애써 ‘쿨’하려고 했다면, 이제 긴장과 두려움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그녀의 관심사는 ‘페어’, 즉 공정함으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한 쪽이 덜 사랑하면 갈등이 일어나죠. 그때 쿨할 수는 없거든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려면 내것을 유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필수적으로 고독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과 똑같이 인정하고, 상대방이 채워줄 수 없는 존재 본연의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페어’의 뜻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1995년 서른여섯살에 등단해 그 해 첫 장편 <새의 선물>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스타가 된 은희경. 지금도 문학에 대한 사랑에 신열을 앓으며 새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문학이 왜 저한테 고맙냐면, 문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기 때문이에요. 답이라면 그대로 하려고 굉장히 경직됐을 텐데 문학은 질문이기 때문에 삶이 훨씬 유연해질 수 있어요.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고 사고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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