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요리연구가 안정현 “한식은 촌스럽다는 편견, 이것 먼저 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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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9.07.30 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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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어머니께 요리점수 따려 독학
ㆍ그러다 손맛이 생기고 천직으로

 

프랑스의 한 관광가이드는 한국인들이 가장 ‘죽이기’(?) 쉬운 국민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한끼만 한식을 못 먹어도 곧바로 “김치 먹고 싶어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우리 음식에 대한 애착은 강하지만 정작 한식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은 드문 것도 사실이다. 국내 특급호텔의 한식당이 거의 문을 닫았고 대기업들까지 다퉈 식당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이태리, 프랑스 등 외국식당 프렌차이즈에만 관심 있다. 한식세계화추진단 자문위원으로 지난 5월 한·아세아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을 위한 오찬을 만든 요리연구가인 안정현씨(58)는 “우리가 한식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세계 시장에서도 한식의 품격과 문화를 자랑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씨는 ‘우리가 즐기는 음식예술’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며 5년간 13억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한식문화보급과 한식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8월에 뉴칼레도니아에서 개최되는 5개국 ‘미식의 밤’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그를 만나 한식의 세계화와 힌식의 매력을 들어봤다.

   

-최근에 ‘요리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세계적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이 식당(우리가 즐기는 음식예술)을 방문해 음식을 먹어보고 “이런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정말 놀랍다. 당장 파리 레스토랑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극찬을 했더군요.

“전날 밤에야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 다른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우리 점심 세트메뉴를 그대로 차렸어요. 음식도 음식이지만 접시에 장식한 청매화나 꽃가지 등의 디자인에도 후한 점수를 준 것 같습니다. 된장찌개의 역한 냄새나 야채산적의 고추장소스의 매운 맛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가니에르는 오히려 2년된 된장에 송이버섯을 넣어 1년간 더 묵힌 된장에서 숲의 향을 느낀다고 하고, 고추장소스가 오묘한 매력이 있다고 좋아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식의 편견을 깰 필요를 느꼈어요.”

 

-지난 5월5일에도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식체험행사에서도 비빔밥 시연 행사를 해서 워싱턴포스트 등 음식전문기자들은 물론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미국명사들에게서도 호평을 받았는데요.

“비빔밥은 정말 한식의 보물같아요. 그 어떤 재료와 섞여도 맛을 내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그 나라의 식자재를 활용해 비비면 되니까요. 나물 등 야채가 들어가는 비빔밥은 건강을 중시하는 서구에선 웰빙음식으로 여겨져 다들 좋아하더군요. 이번 한·아세아 정상 행사에서도 각국에서 가져온 나물들을 다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화합을 상징해 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메뉴를 바꿨습니다.”

 

-그런데 왜 한식이 아직 세계화가 안되었을까요. 이웃나라인 중국 요리는 세계를 석권했고 일식은 가장 고급스러운 요리로 대접받지 않습니까.

“한식의 본질과 외국에 있는 한식당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 음식은 콩나물무침 하나를 봐도 알 수 있듯 공정 과정이 복잡하고, 그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고 식자재도 상대적으로 비싼 편입니다. 또 코스요리에서는 ‘메인 접시’가 어떤 것인지 얼른 구별이 되지 않아요. 갈비찜, 잡채, 비빔밥이 줄줄이 나오는데 어느 것이 메인인지 잘 모르죠. 일본을 대표하는 스시처럼 한식을 대표하는 단품(單品)요리를 부각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또 우리는 찌개 등 음식을 한그릇에 담아 여럿이 나누거나 심지어 같이 숟가락 담그기도 하는데 서양 식습관으론 매우 불결하게 느껴지나봐요. 무엇보다 외국의 한식당들이 음식이며 인테리어가 한식에 어울리질 않아요. 규모도 작고 지저분하고, 음식도 수준 이하니까 현지의 외국인들이 한식당에 가서도 한식의 맛과 문화를 전혀 못느끼죠. 물론 우리 국력이 일본처럼 강해지면 한식도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을지 모르지만….”

 

-정부는 농림수산식품부 안에 한식세계화추진단을 꾸리고 떡볶이, 비빔밥, 김치, 전통주를 4대 주력식품으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떡볶이의 경우 ‘떡볶이연구소’도 만들고 국내외에서 페스티벌도 열고 책자도 만들었는데 떡볶이가 대표상품이 될 만합니까.

“서양인들이 떡볶이의 찐득찐득한 식감을 싫어해서 쉽진 않을 듯해요. 우리에겐 익숙한 쫀득똔득한 질감이 그들에겐 굉장히 이질적이고 불편하죠. 또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 매운맛 범벅이라 소스나 곁들이는 재료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론 다양한 전이나 부침개가 누구의 입맛에도 잘맞아 훨씬 세계화하기 쉬울 것 같아요.”

 

-정부에선 이렇게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는데 정작 국내에선 한식당이 인기가 없습니다. 특급호텔에서조차 한식당 찾기가 힘들고 설렁탕, 김치찌개집이 한식당으로 여겨지고요.

“일식당의 코스요리는 아무리 비싸도 시비를 안 걸고 최근엔 재벌기업들이 경쟁하듯 이태리식당 등 양식당을 열지 않습니까. 한식은 무조건 싸구려란 생각을 하니까 투자도 하지 않고 직접 사먹지도 않아요. 우리가 한식을 우습게 알면서 외국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바란다는 게 비정상이죠. 한식당은 종업원 구하기도 참 힘들어요. 양식당에 근무하는 건 자랑스러워하면서 한식당에서 일한다면 촌스럽게 여겨지나봐요.”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든 일을, 그것도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까지 계속 합니까. 응용미술가이고 양초공예가로 명성도 날렸고 ‘솜씨와 정성’이란 혼례음식전문점으로 돈도 벌었으면서….

“누군가 할 일인데 제가 하는 거죠. 제가 대구의 ‘보수적인’ 사업가 집안의 며느리여서 일년에 제사를 12번 지내고, 어른 생신이 돌아오면 사흘 잔치를 하고, 자정이 넘어서도 손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제가 음식을 차려 들어가면, 엄한 시어머니는 음식마다 시험지 채점하듯 점수를 매겼어요. 친정어머니 욕먹이기 싫어 독학으로 매일 요리를 만들다 손맛이 생기고 천직이 된 거죠. 계속 적자를 내면 노년이 빈곤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오기가 나서 계속 합니다. 우리 음식의 진정한 맛과 문화가 제대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다른나라 음식과 비교해 한식의 가장 우수한 점은 뭡니까.

“한식은 철학적이에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고 조리법도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이고 그 어느나라 음식보다 정성이 필요해요.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먹는 전과정에 바른 몸가짐과 예절이 담겨 있어요. 요즘 핵가족에 인스턴트식품 영향으로 어머니들이 정성껏 차려 어르신들과 함께 먹으며 배우는 밥상머리 예절 교육이 사라진 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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